‘나쁜 엄마’ 라미란-이도현의 ‘나쁜 대물림’..잊잔들 잊힐리야!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05.25 12: 11

[OSEN=김재동 객원기자] “모르게 해주세요.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 지, 얼마나 사랑하는 지, 그리고 끝내 왜 이 사랑을 이렇게 아프게 묻어야 하는 지. 증오하고 원망하며 그렇게 마음속에서 지우고 지우다가 결국은 잊어야 한다는 그 마음마저 잊은 채 행복하게 해주세요!”
24일 방송된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 9회에서 이미주(안은진 분)를 떠나며 최강호(이도현 분)가 남긴 독백이다.
검사가 된 강호는 아버지의 원수를 특정했다. 고검장 출신 국회의원으로 차기 대권을 노리는 오태수(정웅인 분)와 살인 전과 무수한 우벽건설 송우벽(최무성 분) 회장. 오태수는 권력의 정점, 송우벽은 폭력과 금력의 정점이다.

그 위험한 이들을 상대로 한 복수의 여정에 사랑하는 미주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 강호가 미주를 떠난 이유다. 그런 강호로선 그저 미주가 자신을 미워하고 미워하다 끝내는 잊고 행복해 주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주로선 그 바람을 들어줄 수 없다.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태어나 함께 자라고 함께 사랑한 두 사람이다. 그 인연이 오죽 질길까. 그런데 이유도 모른 채 버려졌다. 떠나며 강호가 물었다. “그 이유 뭔지 알고싶어?” 미주가 되물었다. “알면 뭔가 달라져?” 강호가 답했다. “아니!” 미주도 답했다. “그럼 나두 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럴 때는 평생마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더욱이 둘 사이엔 예진(기소유 분)-서진(박다온 분) 쌍둥이까지 있지 않은가. 미주는 진작 깨달았을 것이다. 강호가 왜 떠났든 강호를 사랑하는 맘은 변치 않으리란 걸.
메모리카드에서 강호의 일기를 읽은 진영순(라미란 분)은 말했다. “내가 망가지면서 하는 복수는 복수가 아니야. 진짜 복수는 복수하려는 이유조차 생각 안 날만큼 깨끗하게 잊고 보란 듯이 잘 사는 거야. 너도, 나도, 그리고 당신도!”
그 말 끝에 진영순은 남편 최해식 관련 모든 서류와 강호가 남긴 메모리카드까지를 불싸질렀다. 두 모자의 평생을 사로잡았던 과거와의 결별 의식이다. 하지만 과거를 불지른다고 잊는 게 가능할까? 본인도 못한 그것을 이제와서 강호에게 강요한들 가능할까?
영순은 태중의 강호를 화가로 키우고 싶었다. 태어난 강호는 확실히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좋아했다. 하지만 정작 영순은 강호의 앞날을 판검사로 예정지었다. 남편 최해식(조진웅 분)의 죽음은 남편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힘있는 이들은 남편 탓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고통스런 진실보단 안락한 거짓을 선호한다. 하지만 영순은 그럴 수 없었다. 씻어내린다고 씻겨질 원통함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들 강호를 몰아부쳤다. “니 아빠가 왜 억울하게 죽었는지 그것 좀 가르쳐 달라고!”
강호로선 억울했다. 태어났을 때 이미 세상에 없던 아버지다. 그 해 묵은 엄마의 한풀이에 제 인생을 저당잡혀 살았다. 그렇다고 엄마를 마냥 원망할 수도 없었다. 자기 눈 앞에서 갈갈이 찢어버린 자신의 그림을 어느 새 한 장 한 장 이어 붙여 소중히 보관해 온 엄마였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깨달았다. 출석도, 시험도, 레포트 제출도 제대로 못한 놈이 과 수석을 했다. 엄마가 판사라는 이유로. 그 부당함에 놈과 치고 받았다. 놈이 합의 안해주면 사법시험을 치를 수 없지만 강호는 합의하고 싶지 않았다. 법은 그래선 안된다. 그 법을 가르치는 법학과에선 일어날 수 없는 불의가 행해졌다.
옥신각신 중에 달려온 엄마는 따귀도 때려가며 무릎 꿇고 빌 것을 강요했다. 여전히 엄마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물이 되기를 원했다. 이해도 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힘이 필요하다.
법대생 시절 아버지의 사건 수사기록을 보려했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찰은 유족에게도 수사기록을 보여주게 돼 있다. 하지만 볼 수 없었다. 직무유기가 분명함에도 형사는 “판검사 돼서 내 직무유기 영장 들고 와. 그럼 22년 전이던, 100년 전 수사기록이건 싹 다 보여줄테니까.”라고 말했었다.
법은 법대생 강호에게도 곁을 안줬다. 그렇게 힘없던 엄마는 평생을 억울했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인도 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강호가 법대에 온 이유다. 그리고 검사 임관이 되고서야 받아본 수사기록은 역시 조작돼 있었다. 그리고 정년을 한 달 앞둔 당시 담당 형사를 자신이 획득한 힘으로 협박해 그 억울함의 실체를 확인했다.
물론 진실이 믿기 힘들 땐 거짓말도 필요하다. 힘있는 오태수는, 송우벽은 힘없는 이들에게 진실이란 것을 쟁취하기가 얼마나 힘든 지를 모질게 각인시켰고, 기어코 거짓에 동의하도록 만들어왔다.
검사 임관식 때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가 되길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했지만 오태수는 그 선서를 배신했다.
정신연령 7살의 강호는 “하지마, 하지마. 이제 아무 것도 하지마!”라는 엄마의 당부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불 타 들어가는 자료들 속에서 ‘대검찰청 최강호’ 신분증만은 몰래 숨기는데 성공했다.
강호가 미주를 위해 올린 기도처럼, 진영순이 강호에게 한 당부도 헛수고에 그칠 모양이다.
“제가 진짜 복수하고 싶었던 건, 그들로 인해 철저히 망가져 버린 어머니의 삶,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평생을 나쁜 엄마로 살아야 했을 그 아픔입니다.”고 강호는 말했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묻혀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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