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승 투수에게 다른 팀 알아봐라? 예의 아니다” 대기록 만든 존중과 배려
OSEN 이후광 기자
발행 2023.05.25 11: 50

1844일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130승 고지에 오른 장원준(38). 그 뒤에는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의 특급 존중과 배려가 있었다.
장원준은 지난 23일 잠실 삼성전에서 2020년 10월 7일 SK(현 SSG)전 이후 958일 만에 선발 등판해 5이닝 4실점을 기록, 2018년 5월 5일 LG전 이후 1844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역대 11번째, 좌완 4번째 통산 130승을 달성한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개월 전 면담이 대기록의 밑바탕으로 작용했다. 이승엽 감독이 은퇴 위기에 몰린 장원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자리였다. 지난 24일 잠실에서 만난 이승엽 감독은 “장원준 정도 되면 구단이 거취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나 또한 베테랑 시절이 있었지만 본인이 결정을 내려야하는 부분이다. 장원준 정도 성적을 보유한 선수에게 은퇴를 종용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하는 건 129승 투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베테랑 좌완투수 장원준(38)이 5년 만에 개인 통산 130번째 승리를 맛봤다.두산 베어스는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즌 3차전에서 7-5로 승리했다. 경기 종료 후 두산 장원준이 이승엽 감독의 축하를 받고 있다. 2023.05.23 /cej@osen.co.kr

8년 연속 10승에 빛나는 장원준은 전성기 시절을 잊고 신인과 같은 자세로 이번 시즌을 준비했다. 호주 스프링캠프 때부터 후배들 못지않게 구슬땀을 흘렸고, 퓨처스리그에서는 권명철 코치의 투심 연마 제안을 받아들이며 38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신 구종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선발 등판에서 5이닝을 책임질 수 있었다.
5회초 2사 두산 선발 장원준이 삼성 구자욱을 땅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친 뒤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2023.05.23 /cej@osen.co.kr
이 감독은 “2015년, 2016년의 위력은 아니지만 공의 변화가 컸다. 처음에는 힘이 없는 줄 알았지만 이는 투심패스트볼이었다”라며 “불혹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 신체적, 정신적 변화가 온다. 20대 시절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전성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모든 게 급락한다. 본인의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연습방법, 자세를 찾으면 기량이 떨어지는 시간을 더디게 할 수 있다. 장원준이 변화를 줬다는 건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라고 박수를 보냈다.
장원준은 23일 승리로 이승엽호 마운드 플랜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 감독은 “이제 5월 말이다. 23일 경기는 시즌 첫 등판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모습을 보였다”라며 “그런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언제 그만둘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미국, 일본을 보면 40살 넘어서도 충분히 좋은 피칭을 하는 투수가 있다.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관록과 요령으로 타자를 이기는 선수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베테랑 좌완투수 장원준(38)이 5년 만에 개인 통산 130번째 승리를 맛봤다.두산 베어스는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즌 3차전에서 7-5로 승리했다. 경기 종료 후 두산 양의지, 장원준이 승리를 기뻐하고 있다. 2023.05.23 /cej@osen.co.kr
이 감독은 더 나아가 KBO리그에 있는 전체 베테랑들을 향한 격려의 메시지도 남겼다. 이 감독은 “어린 선수들만 갖고는 시즌을 치를 수 없다. 베테랑은 경기에 나가서 잘 치고 잘 던지지 않더라도 더그아웃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후배들에게 힘이 된다. 성적이 안 좋아도 캡틴, 리더가 될 수 있다”라며 “신구조화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선후배 유대관계가 좋지 않으면 좋은 팀이 될 수 없다. 반대로 베테랑이 중심을 잡아주면 좋은 팀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베테랑들이 오랫동안 1군 무대에서 뛰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장원준 또한 대기록 달성의 공을 이 감독에게 돌렸다. 그는 “감독님께서 면담 당시 내 생각을 먼저 물어보셨다. 그래서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기사에도 나왔듯 감독님께서 팀을 못 구해서 은퇴하는 건 너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올해 기회를 줄 테니 한 번 잘해보자고 말씀하셨다”라며 “늘 마음 한구석에는 선발 등판 의지가 있었다. 잘 안 돼서 그만두더라도 꼭 선발로 던지고 싶었는데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후회 없이 던졌다”라고 진심을 전했다.
/backlight@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