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는 철학의 부재를 고민해야 한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3.03.17 08: 31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눈물
[OSEN=백종인 객원기자] 일본시리즈 7차전이다. 홈 팀 라쿠텐 골든 이글스가 3-0으로 앞서고 있다(2013년 11월, 상대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지막 9회에 타임이 걸린다. 투수 교체다. 멀리 불펜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달려 나온다. 사람들은 눈을 의심한다. 바로 전날 160개를 던진 투수다. 바로 다나카 마사히로다.
미친 짓이다. 적어도 상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관중석은 다르다. 마치 메시아를 맞는 마음들이다. 모두 일어나 등장 음악에 환호한다. 당사자의 말이다. “굉장한 의기를 느꼈다. 이 장면을 준비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마운드에 올랐다.”
그를 올린 감독은 어떨까. 작고한 호시노 센이치다. “그 녀석이 없었으면, 이 자리도 없었다. 마지막 순간은 당연히 그의 몫이다.” 그 해 28연승의 신기록을 수립한 에이스다. 9회 3개의 아웃을 잡아내며 팀의 첫 우승을 지켜냈다.
헹가래 후 장내 인터뷰 때다. 기자가 물었다. “감독님 생애 첫 우승입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호시노 감독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다. “무슨 소리. 내 우승 따위가 뭐라고…. 줄곧 우리 팬들의 아픔을 달래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싸웠다. 이곳 어린이들,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안겨준 선수들을 칭찬해주셔야 한다.”
라쿠텐의 본거지는 도호쿠(東北) 지방이다. 당시는 대지진 2년 뒤였다.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재민들은 컨테이너나 가건물에서 TV중계를 봐야했다. 호시노의 말에 관중석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머리가 허연 노 감독도 엉엉 소리내서 함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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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민구단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가난한 시민구단의 에이스다. 히로시마 카프의 구로다 히로키가 FA를 앞두고 있다. 안 봐도 뻔하다. 원 소속팀은 잡을 여력이 없다. 돈 많은 요미우리나 한신으로 가겠지. 포기 상태였다. 본인도 모범답안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시장에 나가서 내 가치를 확인하고 싶다.”
그의 마지막 홈 경기였다. 오른쪽 관중석이 수상하다. 수백명이 15번을 새긴 카드를 들고 있다. 곧 떠날 에이스의 등번호다. 그들은 대형 현수막이 펼쳤다. 그리고 거기 적힌 문구를 합창한다. ‘우리는 함께 싸웠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 눈물이라도 되어주겠다.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我々は共に闘って来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 Carpのエース 黒田博樹.)
마운드의 주인공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묵묵히 듣기만 한다. 며칠 뒤다. 기자 회견이 열렸다. 15번의 결심이 발표되는 자리다. 무거운 입이 열린다. “내가 만약 다른 유니폼을 입고, 이곳에 와서 카프를 상대로 힘껏 공을 던진다면 그건 아마 내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FA를 포기하고 잔류하겠다는 말이다. 이른바 ‘평생 히로시마’ 선언이다.
1년을 더 뛴 뒤 미국으로 진출했다. 7년간 다저스, 양키스에서 활약했다. 뉴욕 시절에는 구단의 다년 계약 제안을 거부했다. 오직 1년짜리만 고집했다. 떠날 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반드시 힘이 남아 있을 때 돌아오겠다. 그래서 카프를 위해서 다시 한번 마운드에 서겠다.”
2014년 겨울. 원 소속팀 양키스는 물론이다. 그 밖에도 다저스, 파드리스, 레드삭스가 러브콜을 보냈다. 몸값은 1600만 달러를 웃돌았다. 하지만 의리남은 결심했다. ‘때가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복귀 조건은 4억엔이었다. ML 제시액의 4분의 1 수준이다. 히로시마가 비워 놓은 백넘버(15번)는 7년만에 주인과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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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의 골드글러브 수상 소감
세계적인 용품제조업체 M사에 비상이 걸렸다. 글러브 생산 라인의 차질 탓이다. 최고 명인 쓰보타 노부요시가 고령으로 퇴직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인수인계 작업에 문제가 생겼다. 유독 까탈스러운 VIP 고객 탓이다. 후임자의 시제품에 번번이 퇴짜를 놓는다. 매리너스의 외야수 스즈키 이치로였다.
하다하다 안되니까 시애틀까지 직접 들고 가야했다. 100개 이상을 만들어, 그 중 6개를 엄선했다. 그래도 반응은 싸늘했다.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한번씩 끼어 보더니, 못 마땅한 품평이 돌아온다. “글쎄. 이 느낌이 아닌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OK 사인까지는 몇 달이 더 걸렸다.
그 해(2008년) 골드글러브 시상 때다. 8년 연속 수상자의 소감이 특별했다. “만약 내가 올해 이 상을 받지 못했다면 기시모토 선생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책했을 것이다. 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플레이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새로운 글러브 제작자(기시모토 고사쿠)에 대한 인사였다.
그의 철저함은 잘 알려졌다. 이를테면 배트 보관법이 그렇다. 습도 조절이 가능한 시가 담배용 휴미더라는 장치에 넣어둔다. 그를 전담한 제작자 구보다 이소카즈 장인의 기억이다. “평생 그렇게 일정한 것을 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보통은 컨디션에 따라 무게나 길이를 조절하지만, 이치로 상은 자기 몸을 배트에 맞게 관리한다.”
훈련량에 대한 일화도 많다. 양키스 시절 동료였던 CC 사바시아의 회고다. “이치로가 쉬는 날은 1년에 딱 두 번이다. 시즌 끝난 다음날, 그리고 크리스마스 뿐이다.” 컨디션 조절도 마찬가지다. 경기전 식사는 늘 같은 메뉴다. 몇 년간은 아내가 싸주는 카레라이스였다. 또 몇 년간은 페파로니 피자였다. 맛이나 영양 때문이 아니다.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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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을 맞은 한국 야구에 요구되는 것
WBC 1라운드 탈락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바뀌지 않으면 점점 더 경쟁력이 뒤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부진의 원인에 대한 진단도 다양하다. 어떤 야구인은 투수력을 얘기한다. 볼 스피드에 너무 집착한다는 말이다. 제구력이나 번트수비, 견제, 게임 운영 등 종합적인 능력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알루미늄 배트가 퇴출된 영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발력이 적은 나무 배트를 쓰다보니 맞히는 데 급급하고, 파워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투수력이 과대평가된다는 주장이다. 균형적인 성장의 저해요소다. 또는 전임감독의 필요성, 대표팀 운용의 문제 등도 제기된다. 급기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어제(16일) 실행위원회를 열었다. 그리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경기력과 경쟁력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도 약속했다.
물론 필요한 일들이다. 맞는 말들이기도 하다. 시속 150㎞ 못지않게 제구력도 중요하다. 알루미늄 배트를 부활시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유소년 야구의 활성화, 경기력 향상, 대표팀 운영에 대한 특단의 대책도 당연하다.
맞다. 뛰어난 숫자와 기록은 중요하다. 단단한 경기력은 기본이다. 대스타의 등장도 기다려진다. 국제대회의 승전보도 절실하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이어야 한다. 좀 더 깊은 곳을 봐야 한다. KBO리그는 벌써 40년이 지났다. 어린 나이가 아니다. 충분히 성숙할 시기다.
외연 확장, 인프라 구축, 경제적 가치의 상승. 이런 것만으로 리그의 품질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존재의 본질, 프랜차이즈에 대한 역할,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 수반돼야 한다. 깊은, 그리고 높은 수준의 철학적 소신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게 리그의 품격과 품질을 결정하는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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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는 지독할 정도다. 병적으로 보일만큼 집착한다. ‘준비의 준비’라는 말도 있다. 게임 준비를 위한 훈련까지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말이다. 같은 선수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언젠가 고쿠보 히로키(전 일본 대표팀 감독)가 이렇게 물었다. “이치로 상은 어느 정도 기록을 목표로 합니까?”
그러자 돌아온 답변이다. “고쿠보 상은 숫자를 남기기 위해 야구를 합니까? 나는 마음 속에 연마하고 싶은 돌이 있습니다. 야구를 통해 그 돌을 빛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를 위한 준비까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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