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에 투수 몇 명 쓰는지..." 맞다. 그러나 대표팀은 달라야 한다
OSEN 한용섭 기자
발행 2023.03.15 06: 00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탈락이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낸 한국 야구 대표팀은 14일 귀국했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은 귀국 후 취재진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지난 13일 조별리그  중국과 최종전이 끝나고, 이 감독은 "팬들과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는데 제가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했다.
14일 귀국장에서도 "결과가 이렇게 나왔지만 선수들은 준비 잘했기에 선수들에 대한 비난은 자제해주시고, 내가 부족해서 나에게 모두 비난해 주시길 바란다"고 또 한 번 사과했다.

일본과의 경기 도중 한국 이강철 감독이 불펜과 통화를 하고 있다. 2023.03.10 /spjj@osen.co.kr

감독으로서 책임지는 자세, 이강철 감독이 대회 기간 보여준 모습이었다. 패배에 대한 잘못은 자신에게 있고,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고 자신이 책임지려 했다. 준비 과정이나 선수의 부진을 탓하지 않았다. 
이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잘했는데 자기 기량을 발휘 못 했다. 자기 볼만 던져도 충분히 좋은 결과가 나왔을텐데 나보다 그 선수들이 더 아쉬울 것이다. 이번에 경험을 쌓았으니까 다음에 아시안게임이나 APBC에 나가면 자기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부진했던 몇몇 젊은 투수들을 감싸기도 했다. 
이강철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3.14 / soul1014@osen.co.kr
그런데 마지막에 이 감독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몇몇 투수들의 혹사에 대한 질문이었다. 원태인, 김원중, 정철원은 공식 평가전과 WBC 대회에서 자주 등판해 많은 공을 던졌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투수가 자주, 많이 던지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투수 몇 명을 쓰는지 알아보시고 할 말을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반박했다. 단기전, 한국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서는 컨디션이 좋고 구위가 좋은 불펜 투수들이 매 경기 던지다시피 한다. 선발진과 달리 불펜진은 팀내 최고 좋은 투수 2~3명만 던지기도 한다. 패전조, 추격조 투수들은 한 경기도 등판하지 않고 끝나는 것이 태반이다. 
그런데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단일팀과는 달리 국가대표팀이 출전한 국제대회다. 
이번 WBC에서 일본은 4경기에서 투수 14명을 골고루 기용하면서 다카하시 히로토, 우다가와 유키, 유아사 아쓰키 3명만 2경기에 등판했다. 세 명은 불펜으로 2경기에 등판했지만 각각 2이닝을 넘기지 않았다. 수 개월 동안 준비한 계획대로 투수들이 제각각 자신의 임무를 잘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2경기 등판한 투수가 6명이었고, 3경기를 던진 투수도 3명(원태인, 김원중, 정철원)이나 된다. 김원중은 대회 직전 공식 평가전 2경기까지 포함해 7일 동안 5경기에 등판했다. 소속팀에서 선발인 원태인은 평가전부터 불펜으로 3경기를 던지고, 중국전에는 선발로 던졌다. 특정 투수가 자주 등판한 쏠림 현상이 있었다. 대표팀에서 구위가 좋은 투수들이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쉽다. KBO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잘 던지는 투수 15명을 뽑았다. 소속팀에서 선발 혹은 필승조, 마무리 투수들이다. 패전조가 없는 전원이 필승조다. 그러라고 태극마크를 달아줬다. 이 감독의 말처럼 대표팀 투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열심히 했고, 태극마크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스트라이크 조차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볼넷을 남발하고,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난타 당하기도 했다. 준비는 열심히 했겠지만,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국제대회 뿐만 아니라 리그 경기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과정이 아닌 결과를 내야 한다. 투수들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일부 투수들은 컨디션이 엉망인 것이었다. 
일본전 3회말 무사 1,2루에서 한국 정현욱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김광현을 비롯한 야수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3.03.10 /spjj@osen.co.kr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서 이상 기온, 쌀쌀한 날씨와 비로 인해 투수들이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었다. 비행기 기체 결함으로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몇 시간을 대기하며 36시간 만에 귀국하는 고행길도 있었다. 어려운 과정은 알지만 핑계는 될 수 없다. 
한 수 아래인 호주에 실망스런 경기력으로 패배하면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패배한 호주전, 일본전 투수 운영에서 이 감독은 스스로 잘못했다고 인정했다. 교체 타이밍이 늦었고, 투수 기용에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게 강조하고 수 차례 언급했던 '호주전 올인'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본전까지 생각하느라 투수 운영이 꼬였다. 
수많이 다양한 의견으로 나뉘는 팬들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명이나 핑계, 어떤 탓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줬던 이 감독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아쉽다.
감독의 위치는 항상 가장 어려운 자리다. 성적이 안 좋을 때는 더욱 그렇다. '혹사'라는 말에 심기가 불편했겠지만 적절한 대처가 아니었다. KT 감독으로서 한국시리즈를 치른 것이 아니라,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팀 감독이었지 않나. 끝까지 참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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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 9회 대표팀 선수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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