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장동윤 등에 업힌 ‘녹화사업’ 희생자 추영우의 선택은?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03.14 10: 20

[OSEN=김재동 객원기자] ‘녹화 사업’이란 말이 있다. 지금 MZ세대로선 낯선 용어일 것이다. 전두환 정권하에서 자행된 녹화사업이란 ‘좌경사상으로 붉게 물든 학생을 푸르게 순화하는’ 사업을 뜻한다. 즉 민주화 운동에 나선 대학생을 강제징집해 프락치로 만들어 학원가와 노동현장에 투입하는 공작이다.
지난해 11월 23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론 내리고 18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과정에서 총 2,921명의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 공작 관련자 명단도 처음 확인했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친구와 동료, 선후배를 배반하도록 강요하는 반인권적인 일이 공권력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며 "피해자들은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한 후 다시 사회와 격리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지적했다.

KBS 2TV 월화드라마 ‘오아시스’의 최철웅(추영우 분)이 바로 이 녹화사업의 피해자다. 최철웅은 데모 현장에서 체포된 후 집에 연락도 못한 채 징집돼 전방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오만옥(진이한 분)에게 고문당하며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는다. 엄마 강여진(강경헌 분)의 옛 연인 황충성(전노민 분)의 명령 때문이었다.
대학으로 돌아왔지만 철웅의 대학생활이 예전과 같을 순 없다. 대부분의 녹화사업 피해자들처럼 겉돌고 불응한다. 이에 오만옥은 철웅 주변의 학생들을 무작위 검거하며 압박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오만옥이 철웅을 놓아주는 모습을 한 여학생이 목격하게 되고 동료 운동권 학생들은 이두학(장동윤)과 술 마시고 귀가하던 최철웅을 학교로 끌고 가 심문한다.
학생들은 추궁한다. 탈출 중 다리를 삐끗한 철웅이 남들 다 잡히도록 어떻게 도망갈 수 있었는 지. 철웅은 억울하다.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다. 물고문 당하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누군가의 이름을 발설한 적이 없다. 오만옥이 그렇게 잡고 싶어하는 언더 써클 선배에 대해서도 입 한 번 뻥긋한 적 없다. 오만옥이 권총을 머리에 들이댔어도, 전방으로 끌고 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도 있다고 협박했음에도.
마침 두학이 찾아왔다. 수십명 학생 호위대를 뚫고 머리가 터져가며 최철웅을 구하러 왔다. 두학과 함께 벗어나는 철웅의 뒤통수에 “부끄럽게 살지 말자”는 언더 선배의 말 비수가 꽂힌다. 돌아 선 철웅은 포효한다. “부끄럽게 살면 안 되지. 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했어. 내가 진짜 프락치였다면 여기 느그들 다 이자리에 없었어!” 하지만 어제의 동지들이 건네는 시선엔 온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 답답함을 두학에게도 풀어본다. “형 나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 한 사람도 안 팔았어. 걔네가 때리고 협박했어도..” 두학은 “업혀!” 한 마디만 하고 등을 내밀었다.
두학은 늘 그랬다. 늘 철웅을 챙겼다. 그래선지 그 등에 업힌 철웅은 문득 고향이 생각났다. “여수 한번 같이 안갈랑가? 영화도 보고 정신이도 보고. 나보다 오정신(설인하 분) 보고 싶지?” “너 내려라이!” 발끈하는 두학이 재밌다. 그 등에서 내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저그 까지만” 어리광도 부려본다. 그 멀어지는 소리에서 겨우 숨을 트는 철웅의 안도가 느껴진다.
이 에피소드에서의 철웅은 2화까지 구축된 캐릭터와는 결을 달리한다. 성장했고 발전했다. 당연하다. 기영탁(장영준 분)을 살해했다. 그 죄를 두학에게 떼넘겼다. 평생 올곧았던, 독재정권과 싸우려던 아버지는 그 일로 국회 꿈을 접었고 그 후유증 탓인지 작고했다. 대학에 들어와 사회주의를 배우면서 몸에 배인 계급의식도 털어냈다. 할아버진 독립투사였고 아버지는 민주투사였다. ‘독재타도’는 마땅하다.
2화까지 보여진 이기주의자·보신주의자라면 오만옥의 협박에 쉽게 굴종했을 것이다. 물론 끝내 투사이고 지사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양심을 팔지 않을 정도로는 단단해졌다. 두학에게 제 죄를 떠넘긴 비겁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두학의 말처럼 프락치 일도 종쳤다. 데모 참여도 종쳤다. 철웅의 선택지는 이제 공부밖에 없다. 법대생이 공부해서 할 일이라곤 사법고시겠고, 두학이 원했으니 검사도 될 모양이다. 그런 시절을 거치면서 철웅은 과연 어찌 변해갈런 지가 궁금하다.
“20대에 혁명에 피 끓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고 30대에 혁명에 젖어 있으면 사회인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이기적이었던 10대, 투사적이었던 20대를 거쳐 맞을 철웅의 30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어쨌거나 철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캐릭터다.
이에 반해 두학은 시종일관형 캐릭터다. 철웅과의 관계를 놓고 보더라도 기영탁 폭력으로부터의 구원자였으며 기영탁 살해사건의 대속자였으며 낙동강 오리알된 처지에서의 도피처였다. 고향 뒷산만큼이나 뜸직하게 제 자리를 지켜낸다. 여수 앞바다처럼 넉넉하게 품어낸다. 이 브로맨스의 향방이 드라마의 지향점이 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리고 드는 의문 하나. 강여진의 첫사랑 황충성은 왜 그렇게 집요하게 최철웅을 물고 늘어질까? 겉으로는 강여진의 후원자 행세를 하지만 정작 내처진 원한을 속으로 곱씹는 것은 아닌가? 그러다 막장스럽게 최철웅이 자신의 아들이면 어쩌려구? 물론 사족이다.
어쨌거나 13일 방영된 3화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최철웅이었다. 공권력이 자행한 반인권적 녹화사업의 희생자로 동지학우들로부터도 버려진 그가 두학의 등에 업혀 어리광부리던 그 마음을 끝까지 간직할런 지, 혹은 외면할런 지가 마냥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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