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길고 짦음에 가로막힌 한국 여자 축구, 일본과 격차 극복은 언제?[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3.07.27 16: 15

1981년 6월 7일,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데뷔 무대에 올랐다. AFC(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선수권대회(현 여자 아시안컵) 조별 라운드 대만전(0-1 패)이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A매치였다. 9년 3개월이 흐른 1990년 9월 6일, 한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첫선을 보였다. 상대는 일본으로, 1990 베이징(北京) 아시안 게임을 앞둔 평가전이었다. 정치적·정책적 배경 아래서, 아시안 게임 출전을 위해 부랴부랴 만들어진 한국 A대표팀에, 참패(1-13)는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었지 않았나 싶다. 여명기의 추억거리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랠 수 있을 듯도 한 데뷔전이었다.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뀌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국 여자 축구는 상당히 성장했다. 국제 무대에서도, 더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2010 트리니다드 토바고 FIFA(국제축구연맹) U-17 여자 월드컵에선, 일본을 꺾고 우승 축배를 들었을 정도다.
그러나 일본의 비약을 보면 어쩐지 더딘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일본은 이미 전 세계 여자 축구 최고 무대인 월드컵에서도 주인공 역을 연기했다. A매치 신고식을 치른 지 30년이 된 2011년, 독일 월드컵에서 히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구촌 축구팬을 깜짝 놀라게한 등정이었다. 한국은 어떤가. 30여 년의 세월은 야속하기만 했다. 월드컵 본선 마당을 세 번(2003 미국, 2015 캐나다, 2019 프랑스) 밟으며 가장 높이 오른 고지는 16강이었다. 2015 캐나다 대회 때 딱 한 번이었다. 나머진 두 대회에선, 그룹 스테이지 관문을 뚫지 못했다. 승리의 기쁨도 단 한 번(2015 대회 스페인전 2-1) 누렸을 뿐이다.

FIFA 랭킹(2023년 6월 9일 기준)은 다소나마 위안을 줄지 모르겠다. 한국(17위·1840.27점)과 일본(11위·1916.68점) 사이엔, 그다지 큰 차가 나지 않는다. 국제 대회 성적이나 역대 전적(4승 11무 18패)에서 크게 뒤지는 면을 생각하면, 오히려 희망을 품을 법한 격차다. AFC에 국한한다면, 호주(10위)→ 일본→ 중국(14위)에 이어 4위에 자리한 한국이다.
16강 꿈 무산 위기 한국, 현실과 꿈 괴리 실감… 일본, 결선 라운드 진출 확정
2023 호주-뉴질랜드 FIFA 여자 월드컵 막이 오르기 전, 한국은 꿈을 부풀렸다. 8년 만의 녹아웃 스테이지 진출, 나아가 은근히 8강 진출을 넘봤다. 한국 여자 축구 사상 최고의 전력을 갖춘 데서 비롯한 당연한 야망이었다.
그런데 ‘첫판 패배 징크스’가 재현되며, 꿈을 접어야 할 위기에 내몰렸다. 16강 결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선, 이기거나 적어도 비겨야 할 1차전(그룹 H) 상대인 콜롬비아(25위·25일)에 외려 발목을 잡혔다(0-2 패). 세 번의 본선 마당 1차전에서, 번번이 빠졌던 허방을 또다시 짚었다.
최약체로 꼽히는 모로코(72위·30일)를 논외로 한다면, 조별 라운드 막판에 만날 독일(2위·8월 3일)은 넘어서기 힘든 난적이다. 월드컵 최초의 2연패(2003 미국~2007 중국)를 이룬 바 있는 독일은 미국(1위)과 함께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여자 축구 강국 중 강국이다.
한국이 모로코를 꺾더라도 독일에 지면 16강 티켓 획득은 난망이다. 역시 독일을 넘기 힘든 콜롬비아긴 해도 모로코를 물리칠 가능성이 무척 커, 16강 진출권을 넘길 수밖에 없다.
반면 일본(그룹 C)은 승승장구의 기세다. 2연승 가도를 나란히 달린 스페인(6위)과 함께 일찌감치 결선 라운드에 올랐다. 7득점 무실점, 쾌조의 진군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비되는 형세는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 결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축구 전문 통계 사이트인 후스코어드닷컴이 선정한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 베스트 11에서, 두 나라는 극명한 희비쌍곡선을 그렸다. 일본은 스페인, 미국(1위·그룹 E)과 더불어 최다 지분(2명)을 차지했다. 반면, 한국은 한 명도 낙점받지 못했다(표 참조).
4-3-3 시스템으로 구성된 이번 베스트 11에서, 일본은 DF 엔도 준(9.31점)과 MF 미야자와 히나타(8.72점)가 반열에 올랐다. 왼쪽 윙백으로, 수비수 중 최고 평점을 받은 엔도는 잠비아전(22일) 최우수선수(Player of the Match·후스코어드닷컴 선정)로 뽑힌, 승리(5-0)의 주역(1골 1어시스트)이었다. 미야자와는 선제 결승골 포함 2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높게 평가받았다.
한편, 1라운드 최고의 선수는 브라질(8위)의 아리 보르지스였다. 파나마(52위)전에서, 보르지스는 선제 결승골을 비롯해 3골을 터뜨리는 발군의 활약상을 펼쳐 단연 돋보였다. 브라질의 쾌승(4-0)을 이끌어 낸 보르지스는 10점 만점을 받았다.
세월의 장단은 두 나라, 곧 한국과 일본 여자 축구 사이에 꿈과 현실의 괴리를 다시금 실감케 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 남은 길에서, 한국이 결코 굴하지 않는 정신력을 떨치며 반전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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