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와 ‘평행 이론’으로 엮인 로드리게스, 과연 울분을 감격으로 승화할지[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3.07.17 06: 30

“그(디에고 마라도나)는 항상 하늘에서 나와 동행한다.”
41년을 훌쩍 건너뛴 ‘평행 이론’은 과연 어떤 결말로 재현될까? ‘황금빛 소년(El Pibe de Oro)’을 향한 동경과 존경의 마음이 물씬 배어나는 위와 같은 헌사(獻辭)가 빚어낼 결미는 어떤 모습을 띨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한 시대를 풍미한 불세출의 월드 스타였다. 3년 전 하늘로 가며 끝낸 60년간(1960~2020) 삶의 여정에서, 세계 축구사에 그 누구라도 넘보기 힘든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지난해 눈을 감은 ‘축구 황제’ 펠레(1940~2022년)와 비견할 만한 ‘축구신’이었다.

[사진] 로드리게스가 마라도나의 죽음이 알려진 뒤 그의 대형 벽화 밑에 앉아 슬퍼하는 모습ⓒ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런 마라도나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한순간의 충격과 ‘닮은꼴’ 궤적을 그린 한 선수가 2023 호주-뉴질랜드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 월드컵(7월 20일~8월 20일) 개막을 앞두고 조명받고 있다. FIFA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마련한 비하인드 스토리인 다큐멘터리 시리즈 ‘All Roads Lead Down Under’를 통해서였다.
초점을 모은 주인공은 야밀라 로드리게스(25)다. 2022 콜롬비아 CONMEBOL(남미축구연맹) 코파 아메리카 페메니나 득점왕에 오른 빼어난 골잡이로서, ‘리틀 디에고’로 불리는 존재감에 절로 눈길이 간다. 물론, 둘은 한 조국으로 엮여 있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애칭인 ‘라 알비셀레스테(La Albiceleste: 하양-하늘)’의 영광을 위하여 열정을 불사르는 공통분모로도 묶인다.
둘은 또 하나의 공약수로 함께하는 ‘운명’이다. 신의 얄궂은 희롱으로 말미암아 재연된 41년 만의 평행 이론이다. 왼쪽 허벅지에 ‘디에고 문신’을 새겨 넣을 만큼 ‘마라도나 숭배’의 염(念)을 감추지 않는 로드리게스에게 불어닥친 신의 장난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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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FIFA 여자 월드컵에서, 평행 이론은 어디까지 이뤄질지 궁금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마라도나는 일순 충격에 빠졌다.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만치 첫 우승을 꿈꾸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되는 비운에 맞닥뜨렸다. 약 16세 4개월이던 1977년 2월 27일(이하 현지 일자)에 A매치(대 헝가리)에 데뷔하고, 3개월여 뒤인 6월 2일 A매치(대 스코틀랜드) 첫 골을 터뜨리며 일찌감치 대기의 편린이 엿보인 마라도나의 탈락은 뜻밖이었다. 마라도나 발탁을 기정사실화했던 일반적 예상은 보기 좋게(?) 어그러졌다.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 개막이 눈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로드리게스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본선 무대인 프랑스로 떠나기 하루 전, 로드리게스는 국가대표팀 탈락의 통보를 받았다. 어린 시절, “남자 같다(Butch). 여자가 설거지나 하지, 웬 축구냐”라는 조롱을 딛고 열정을 불사른 로드리게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불운이었다. “최악이었다”라는 말에서, 얼마나 비통했을지가 엿보인다.
마라도나는 충격을 딛고 마침내 축구 역사에서 첫손을 다투는 위대한 선수로 올라섰다. 네 번의 월드컵(1982 스페인~1994 미국)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 1회(1986 멕시코)와 준우승 1회(1990 이탈리아)의 높은 고지로 이끌었다. 조국에 월드컵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안긴 멕시코 대회에선, 골든볼(MVP)을 안았다. U-20 월드컵(1979 일본)과 월드컵에서 모두 골든볼을 차지하는 신기원을 열었다. 단 두 번 쌓인 이 같은 금자탑은 36년 뒤에, 마라도나의 맥을 이은 또 다른 ‘축구신’인 리오넬 메시(36)가 다시 이뤘다(2005 네덜란드 U-20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로드리게스는 2022 코파 아메리카 페메니나에서 쌓인 울분을 폭발시켰다.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하며 한을 풀었다. 조별 라운드(B) 우루과이전 해트트릭을 비롯해 페루전 1골, 그리고 3·4위 파라과이전 2골 등 모두 6골을 터뜨렸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가 6경기를 치르며 넣은 13골 가운데 절반 가까이(46.2%)를 로드리게스가 거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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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게스는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남미 예선을 겸한 대회를 한결 뜻깊은 무대로 만들며 쌓이고 쌓인 슬프고 분한 감정을 한껏 씻어 냈다. 월드컵 본선행 티켓 획득의 주인공 역을 빼어나게 연기했다. 호주-뉴질랜드 무대에 곧바로 오를 수 있는 3장 가운데 마지막 티켓이 걸린 3위 결정전에서, 혼자 북을 치고 장구도 쳤다. 0-1로 뒤지던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동점골(후반 33분)에 이어 마지막 골(후반 추가 시간 1분)까지 뽑아내는 눈부신 연기를 펼쳤다.
“우리가 지면 세상이 무너지리라 생각했다. 비록 고통을 겪긴 했어도, 그런 상황을 극복할 힘이 없으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다. 월드컵 진출의 꿈이 비로소 현실로 구현됐을 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1년 전의 기쁨으로 가득 찼던 그 순간을 되돌아본 로드리게스는 이제 자신의 영웅을 따르려고 한다. 좌절의 아픈 경험을 겪고 나래를 활짝 펴고 날아오른 마라도나가 후세에 남긴 전설을 밟아 가려는 마음으로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의 막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는 갈망도 깃들어 있다.
오른쪽 다리엔 어머니를, 또 왼쪽 다리엔 마라도나를 각각 새긴 로드리게스가 이번 월드컵에서 어떤 궤적을 그릴지 궁금하다. 로드리게스의 말처럼,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나를 보았는가? 전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 있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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