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 이병헌, 신민아와의 ‘나중’ 기약...김혜자와는?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5.15 16: 21

[OSEN=김재동 객원기자] 동석(이병헌 분)의 기억에 옥동(김혜자 분)은 평생 말이 없었다. 말을 하는 대신 빤히 쳐다보거나 소처럼 눈만 꿈벅꿈벅 거리기 일쑤였다.
‘당신 아들 이렇게 맞고 사니 속 좀 아파보시오’란 심보로 의붓 형들에게 두들겨 맞은 상흔을 보여줘도, 한번 터진 성질에 의붓 형들을 줘패고 의붓 아버지 장롱을 뒤져 서울로 튈 때도 그랬었다.
14일 방영된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소제목은 ‘동석과 선아 그리고 영옥과 정준’이다. 두 쌍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임팩트 있었던 건 ‘동석과 옥동’의 이야기다.

살아오면서 동석은 항상 궁금했다. ‘엄마는 도대체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한 번이라도 아들이라고 살갑고 애틋하게 생각한 적 있을까?’
짐짓 잊고 지내던 옥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선아(신민아 분) 때문이었다. 이혼 후 양육권마저 뺏긴 아들 열이에 대해 애면글면 죽고 못사는 선아를 보면서 들기 시작한 생각이었다.
선아는 그런 동석에게 자신만 남겨두고 자살한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후회를 전했다. “아빠는 날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했는데 왜 사랑하는 딸을 두고 혼자 차를 바다로 몰았을까? 나를 사랑했지만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는 게 힘들었었나 보다. 그럼 힘들었다고 말이나 해보지. 내가 안아라도 줬을 텐데. ‘아빠 옆에 내가 있어’ 없는 애교도 떨었을 텐데. 내가 왜 안물어봤을까? 왜 그러냐고, 왜 화가 나냐고, 뭐가 아빠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물어볼 걸.”
선아는 아들 열이 옆에 있기 위해 서울에 남았다. 여전히 혼자일 땐 우울증이 도지지만 “윗도리, 아랫도리..” 등등 동석의 만물상 녹음 소리를 들으며 빠져나오는 중이다.
선아를 두고 혼자 제주로 내려온 동석은 선아와의 ‘나중’을 기대한다. ‘나중’이란 걸 평생 믿지 않다가 선아 때문에 믿게 됐다. 제주서 선아와 수리하던 집을 마저 수리해 살며 선아를 기다릴 작정이다.
장을 찾은 날, 동석은 인권(박지환 분)의 순대국집에서 옥동과 춘희(고두심 분)를 만나고 동석이 만난다는 여자가 궁금한 옥동을 위해 춘희가 대신 물어온다. 동석은 마지못해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5살 남자아이 있고 여기서 집 지어서 살림 살고 싶은데 서울에서 산다기에 보냈다”며 “사람 일은 모르니까 오면 다시 만날 수도 있다”고 내뱉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그 뒤에서 “그래도 만나는 여자 있어 다행”이라는 춘희를 향해 옥동은 자그맣게 “그럼!”이라고 맞장구친다.
엄마 옥동과의 조우로 기분이 상한 동석이 장사하는 자리로 옥동이 다시 찾아온다. 생전 안하던 짓이다. 어이없던 차에 5천 원 짜리 입성 하나 골라 만 원을 두고 간다. 다시 동석의 성질이 터진다. 옷가지 몇 개를 옥동에게 던지며 “이거 가지고 나 장사하는데 다시는 오지 맙서. 나 엄청 참고 있으니 건드리지 맙서.”
그 행패를 보다못한 춘희가 “니 어멍 낼·모레면 죽는다. 땅 치고 후회할 날 반드시 올거다”고 질타하자 “돌아가시면 땅 치고 후회할 테니 살아 생전 보지 말고 아는 척도 맙시다.” 악다구니로 대꾸한다. 그러도록 옥동은 남의 일인양 외면하고 딴청을 피운다.
정준(김우빈 분)과 함께 선아와 고치던 집에 돌아온 동석은 선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밝히며 ‘나중의 꿈’을 기약한다. 옥동에게 부린 행패는 말갛게 잊은 듯 해맑게 장난까지 쳐가며.
동석에게 선아와의 ‘나중’은 확실히 기대할 만하다. 이전 두차례의 만남에선 해독불가였던 여심(女心)을 이제는 충분히 이해했고 선아 역시 자신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동과의 ‘나중’은?
춘희가 내뱉은 옥동의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를 노환에 의한 것이 아니다. 날 잡아놓은 병환(암)에 의한 죽음이다. 선아로 인해 바뀌기 시작한 동석이지만 동석이 옥동을 이해하기 전임은 확실하다.
“누가 낳아달랬냐고! 낳아놓았으면 제대로나 키우던가. 뒤통수 따갑도록 ‘첩 년 자식’ 소리나 듣게 하고. 자식이라고 언제 품에 안고 하소연이라도 한 적 있어? 소 닭 보듯 언제나 멀뚱멀뚱.. 그랬으면 본인이라도 잘 살기나 하던가. 늘그막까지 텃밭 채소나 장에 팔아 연명할 거면 도대체 첩살이는 왜 했냐고?”
동석의 원망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어머니 옥동을 이해한 바탕에서 나온 원망은 아니다.
처음부터 옥동이 말없는 캐릭터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바다에서 죽은 동석의 아버지와 누나가 살아있을 때, 가족의 테두리가 유지되고 있을 때조차 그랬다면 과연 춘희 같은 속 깊은 친구가 여전히 곁을 보살피고 있을까?
혹시 하소연 따위 말 따위 엄살로 풀어낼 수 없는 절망이, 풍비박산 난 희망이, 그녀의 말문을 닫고 반응을 둔감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치타에 목 물린 새끼를 바라보다 남은 새끼를 이끌고 돌아서는 다큐멘터리 속 어미 사슴처럼 본능으로 살아내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섬살이다. 남편, 딸 잡아먹은 바다가 끔찍해서 물질 못하는 여자가 어린 자식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뭐가 있을까? 그래서 듣는 ‘첩 년’ 소리는 첩이니까 당연하고, 의붓자식들에게 맞는 동석이 안쓰럽지만 굶어 죽지 않고 학교 작파하는 것보단 낫겠고, 그렇게 자란 동석이 제 어미 질색하는 것도 당연하고.. 다만 동석이 여자 얻어 사람 구실 하고 사는 걸 보면 좋겠는데 마침 여자가 있다니... “그럼!”이란 맞장구는 옥동에겐 커다란 안도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옥동이 세상을 뜬 후 춘희가 동석에게 그 삶을 전해줄 때 동석은 과연 옥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는 여전히 못하더라도 연민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연민은 곧 회한이 될 것이고...
어찌보면 풍수지탄(風樹之嘆)은 모든 자식들의 업보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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