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지휘자로 자리매김한 벤투, 카타르서도 최상의 화음 빚어낸다[최규섭의 청축탁축(淸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2.03.27 06: 34

관현악은 목·금관 악기, 현악기, 타악기 따위로 함께 연주하는 음악이다. 이런 관현악곡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곧 오케스트라(Orchestra)다. 오케스트라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 무대에서 쓰이던 낱말로서, 그 어원은 연극장 앞의 ‘춤추는 마당’이라는 뜻이다.
오케스트라의 생명은 많은 종류의 악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최상의 화음을 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오케스트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가 중요시되는 까닭이다. 바로 그 역을 수행하는 실체가 지휘자다.
축구는 11명이 한 팀을 이루는 스포츠다. 11명이 얼마만큼 한마음 한뜻을 이룰 수 있느냐와 그 팀이 지닌 힘은 비례한다. 축구는 단체 스포츠 종목이 요구하는 강한 응집력을 유달리 더욱 강조한다. 절대 가치라 할 만치 하나 됨을 추구한다.

그 역을 맡은 존재가 감독이다. 감독은 단순한 전술·전략가 또는 조련사가 아니다. 현대 축구에선, 더욱 많은 역을 맡고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11명이 겉돌거나 유리(遊離)하지 않고 하나가 돼 팀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정신적 지주 역을 훌륭하게 연기해야 함은 현대 축구 감독의 숙명이다. 사령탑에 앉은 감독이 곧잘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비유되는 배경이다.
한국에도 자신에게도 훌륭한 선물 안긴 벤투, 그 결실을 계속 올리기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 사령탑은 파울루 벤투(53, 포르투갈) 감독이다. 다시 말해 한국 축구 관현악단 –A대표팀- 이 하나 된 합주로 최상의 화음을 빚을 수 있도록 힘쓰는 지휘자가 그다. 3년 7개월 동안 여러 악기 파트 – 공격, 허리, 수비 – 의 조화로운 합주에 온 힘을 쏟은 그의 노력은 요즘 눈부신 발자취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한국 축구에 10연속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를 안겼다. 한국 축구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단 한 번도 허물어지지 않은 금자탑을 세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 10회 연속, 대단한 기록이다. 브라질(22회·1930~2022년)→ 독일(구 서독 포함·18회·1954~2022년)→ 이탈리아(14회·1962~2014년)→ 아르헨티나(13회·1974~2022년)→ 스페인(12회·1978~2022년) 등 5개국만이 이룬 전인미답의 경지다.
또한 12년 만에 최종 예선 무패 고지에 올려놓았다. 물론 1위로 등정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최종 예선 B조에서 선두(4승 4무)로 아시아 관문을 뚫었던 달콤한 추억을 12년 만에 되살렸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A조 4승 2무 2패)과 2018 러시아 월드컵(A조 4승 3무 3패) 때 계속 이란(5승 1무 2패→ 6승 4무)의 벽에 가로막혀 번번이 2위로 아시아 관문을 넘은 한국이었다. 이번엔 이란에 통쾌하게 설욕(1승 1무)하며 무패(7승 2무) 1위로 아시아 최종 예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의 빼어난 지휘력은 한국 축구 위상에도 선한 영향을 미쳤다. 2018년 8월 22일 그가 한국 A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한국의 FIFA 월드 랭킹은 57위(2018년 8월 16일 기준)였다. 4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의 FIFA 랭킹은 수직 상승했다. 29위(2022년 2월 10일 기준)로 물경 28계단을 뛰어올랐다(표 참조).
이 위상은 곧 또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1월 21일 막을 올릴 카타르 월드컵 본선 조 추첨(4월 2일 새벽 1시)을 앞두고 발표될 예정인 FIFA 랭킹에서, 한국은 몇 계단 더 올라가리라 전망된다. 지난 24일 AFC(아시아축구연맹) 1위인 이란(21위)을 꺾었기(2-0승)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선 조 추첨에서, 한국은 포트 3에 편성될 게 확정적이다. 그만큼 예선 라운드를 넘어 결선(16강) 라운드에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자신에게도 풍성한 수확을 선물했다. 2004년 스포르팅 클루브 드 포르투갈(스포르팅 CP) 유스팀에서 처음 사령탑에 앉은 그는 2010~2014년 포르투갈 A대표팀을 지휘했다. 그 뒤 4년 만에 두 번째로 다시 잡은 A대표팀 지휘봉이 한국이었다. 그리고 43개월간 한국 A대표팀을 이끌면서 괄목할 만한 기록을 쌓아 가고 있다.
먼저 한국 A대표팀 사령탑 최다승(단일 기간 기준)의 결실을 올렸다. 28승(10무 4패)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A대표팀을 이끌며 세웠던 종전 기록 27승(5무 7패)보다 한 걸음 더 올라섰다. 승률에서도 그가 78.6%로 슈틸리케 감독(74.4%)에 앞선다.
특히, 최다승 기록이 그동안 한국을 괴롭혀 온 이란을 상대로 세워져(2-0 승) 한결 뜻깊다. 한국은 2011 카타르 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을 연장 접전 끝에 꺾은(1-0 승) 이래 11년 2개월이 넘도록 승리와 인연이 없었다(3무 4패). 두 골 차 승리는 2005년 10월 친선 경기(2-0 승) 이래 16년 5개월 만에 맛본 무척 달콤한 과실이었다.
참고로, 통산 재임 기간을 기준으로 하면 A매치 최다승 1위는 함흥철 감독(타계)이다. 1970년대에 한국 A대표팀을 지휘한 함 감독은 첫 번째 재임 기간(1974년 10월~1976년 5월) 때 25승을, 두 번째 재임 기간(1978년 3월~1979년 3월) 때 18승을 각각 거둬 통산 43승을 쌓았다.
벤투 감독은 홈 경기 무패 기록도 이어 가고 있다. 2018년 9월 7일, 한국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데뷔 무대(고양 종합운동장)를 치른(2-0 승) 그는 홈에서 20경기째 패배를 모른다(15승 5무). 반면, 어웨이에선 4패(13승 5무)를 당했다. 2019년 1월 25일, UAE(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 8강전서 카타르에 당한 패배(0-1 패)가 첫 쓴잔이었다. 당연히 승률도 홈(87.5%)이 어웨이(70.5%)와 통산(78.6%)을 압도한다.
또한 역대 한국인 사령탑 가운데 월드컵이 끝나고 다음 월드컵 때까지 지휘봉을 놓치지 않은 첫 감독이라는 값진 기록마저 수립할 게 확실시된다. 10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대기록을 세운 한국이지만, 그동안 월드컵 개최 주기인 4년 동안에 걸쳐 지휘한 감독은 없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은 예년과 비교하면 가장 안정된 걸음을 옮겼다. 지휘자 벤투 감독의 역량이 입증된 대목이다. 카타르 본선 마당에서도 그가 지휘력을 한껏 발휘해 한국이 편안한 여정을 밟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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