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A 12.15’ 흔들리는 느림의 미학,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오!쎈 잠실]
OSEN 이후광 기자
발행 2021.04.16 10: 04

유희관(35·두산)의 느린 공은 이제 더 이상 KBO리그에서 통하지 않는 것일까. 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2경기 연속 난타를 당했을까.
유희관은 지난 1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KT와의 시즌 3차전에 선발 등판해 2이닝 5피안타 1볼넷 1탈삼진 3실점 난조로 조기 강판됐다.
시작부터 위기였다. 1회 선두 배정대에게 뜬공 타구를 유도했지만, 1루수 양석환이 이를 잡았다가 놓치며 안타가 됐다. 이후 ‘천적’ 강백호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흔들린 가운데 수비 도움에 힘입어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다. 3루수 허경민의 황재균의 안타성 타구를 환상적인 호수비로 낚아챈 뒤 2루에 송구하며 미처 귀루하지 못한 주자를 잡아낸 것.

15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2021 신한은행 SOL KBO 리그’ 두산 베어스와 KT 위즈의 경기가 진행된다.2회초 동점 허용한 두산 선발투수 유희관이 아쉬워하고 있다. / soul1014@osen.co.kr

그러나 더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3-0으로 앞선 2회 유한준(2루타)-장성우에게 연달아 안타를 맞고 첫 실점한 뒤 계속해서 심우준(3루타)-배정대에게 연속 적시타를 허용했다. 3-3 동점. 조용호를 2루수 땅볼로 잡고 간신히 이닝을 끝냈지만, 3회 홍건희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조기에 경기를 마쳐야했다.
첫 등판이었던 9일 대전 한화전에 이어 또 다시 신뢰를 주지 못했다. 일시적인 난조라 보기도 어려울 정도의 투구 내용이었다. 특유의 정교한 제구는 사라졌고, 타자들에게 ‘느림의 미학’이 완전히 간파 당한 모습이었다. 노시환에게 맞은 3점포 두 방의 악몽이 지워지기도 전에 5피안타-3실점을 헌납하며 평균자책점이 12.15(6⅔이닝 9자책)까지 치솟았다.
경기종료 후 두산 유희관이 아쉬워하고 있다.  / soul1014@osen.co.kr
유희관은 공이 느리면 프로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깬 장본인이다. 빠른 공 없이 오로지 제구력과 완급조절로 지난 2013년부터 무려 8년 연속 10승을 해내며 이강철, 정민철, 장원준 등 정상급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꾸준히 로테이션을 소화한 결과 개인 통산 100승까지 단 3승이 남았고, 지난 시즌이 끝나고 두산과 1년 최대 10억원에 FA 계약을 맺는 성과도 냈다.
대체 그런 유희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전날 만난 김태형 감독은 “희관이가 안 좋아졌다고 볼 순 없다. 그만큼 타자들이 대처를 잘한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하며 “이제는 타자들이 실투를 놓치지 않는다. 작년부터 피안타가 급증한 이유다. 그만큼 희관이가 더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제구력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두산 입장에서는 유희관이 흔들릴 경우 특별히 내놓을 대안이 없다. 유희관의 자리는 다른 투수로 채우면 되겠지만, 유희관에게 부여할 보직이 마땅치 않다. 지금과 같은 제구라면 롱릴리프로 써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고, 좌완이라는 특수성에도 느린 구속으로 인해 불펜은 더욱 힘들다. 결국은 본인이 특유의 칼제구를 회복해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2015년 18승을 비롯해 8년 연속 꾸준함을 과시한 유희관이다.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8년 연속으로 어떤 성과를 낸다는 건 힘든 일. 아무리 운이 좋았다고 해도 10승은 결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또 매년 제구 난조로 인한 위기 속에서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던 ‘느림의 미학’이다. 다가오는 3번째 등판에서는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backligh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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