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유정호, 극단적 선택 시도 심경 "불안·공포에 약 달고 살아.. 우발적 아니었다" [전문]
OSEN 임혜영 기자
발행 2021.02.23 14: 16

유튜버 유정호가 극단적 선택 시도 이후 팬들에게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유정호는 지난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유정호tv’ 커뮤니티에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유정호는 “어제 일로 걱정 끼쳐드려 너무 죄송하다. 순간적인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 기대거나 숨을 돌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라고 말문을 연 후, “SNS를 해오면서 여러분들께 모든 제 삶을 보여드리며 살았다.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기에 제가 약한 모습을 보일너랑  수가 없었다. 여러분을 친구로 생각했기에 제 어두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적으려고 한다”라며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힘들고 우울하고 가슴 아픈 일들을 겪는 분들을 많이 만나봤다. 그럴 때마다 저는 도움을 드리면서 ‘살면서 일생의 히든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거고 곧 이제 내리막길이 나올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강한 사람인 듯, 슈퍼맨처럼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도움을 줬다. 정신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했기에 감정 이입이 되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의 봉사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만난 이후 유정호는 마음의 병이 더욱 심해져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다고 고백했으며, “사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제게 마음의 상처를 내며 남을 도와왔던 일이다. 학교 폭력을 당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가난하고 약하다는 이유로 침을 뱉고 폭력을 당했을 때도 죽으려 시도했다. 꼭 커서 어릴 때 나처럼 당한 아이들이 없게 도우는 사람이 돼야지 했다”라며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와 현재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불우이웃을 돕게 된 계기를 털어놓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지켜야 할 게 생기니 한없이 처질 수밖에 없었던 저희 아버지 뒷모습이 다시 한번 생각이 난다.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약을 달고 살아, 맨정신에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걱정되는 미래와 불안감에 단 한 번의 우발적인 (시도가) 아니라 정말 힘들었다”라고 자신의 현재 몸과 심리상태에 대해 설명한 후, “제가 한 10년간의 기부와 봉사는 후회하지 않는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다만 꽃 피는 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올 때 이 글을 보는 당신과 내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덧붙이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를 본 팬들은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잠시 누군가를 도와주는 건 쉬고 가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 등 응원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이하 유정호 심경 전문
어제 일로 걱정 끼쳐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순간적인 극단적인 게 아니라 너무나 저도 어디 기대거나 숨을 돌릴 수가 없었던 거 같습니다. Sns를 제 일평생을 해오면서 여러분들께 제가 나이가 들어가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지고 가정생활을 하고 거의 모든 제 삶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며 살았습니다.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고 또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을 게시해 왔기에 더더욱 제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 왔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친구로서 대하기로 했기에 제 어두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적으려 합니다. 여러분들께 자세히 말씀드려야 예의고 우정이라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다 우울한 일은 있고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생기기 마련인 것 저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 상담사 일을 하고, 가정폭력, 소아암, 소년소녀가장, 미혼모분들 등 전부 치료비를 돕거나 수술비를 도와드릴 때 사연을 듣게 됩니다. 힘들고 우울하고 정말 가슴 아픈 일들을 겪는 분들을 많이 만나기에 사람이 힘들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분들 정말 많이 만나봤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도움을 드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살면서 인생의 힘든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거고 곧 이제 내리막길이 나올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 잘 될 거라고. 나는 강한 사람인양. 슈퍼맨처럼 다 아픔을 이겨낸 것처럼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도움을 주어왔습니다. 마치 정신과 선생님처럼요. 
옛날 한 뉴스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자살률이 제일 높다는 기사를 보고는 역시 정신적으로 하는 일이라 많이 힘드시겠구나 하다가 그래도 삶을 포기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못 했었습니다. 저도 정신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했었기에 어려운 이웃들의 속사정에 함께 힘들어하고 아파해주는 것이 같이 감정이입이 되어 밤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힘들기도 당연히 했지만 삶을 포기한다고까지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거든요.
2년 전 미혼모분이 자기 아픈 아이를 팔아 저를 속인 일과 아버지가 딸에게 너 아프니까 그거 빌미로 유정호 좀 뜯어먹자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요. 그때 이해가 가더라구요. 왜 정신과 선생님들이 많이 힘드신지. 환자는 돈을 내고 마음의 치유를 받으러 병원을 가는데. 저는 제가 열심히 어머니랑 화장품 만들어 수십 일을 고생해 남았던 돈으로 수백 킬로를 달려 함께 아파해주고 도와줬는데 그게 다 속으로 비웃으며 연기한 거라니.
공황이 나중에 찾아오더라구요. 처음엔 공황장애인지 몰라서 카톨릭병원에서부터 전 지역 대학 여러 응급실에서 공황장애인지 몰랐을 땐 천만 원이 넘어가도록 응급실을 다녔습니다. 갑자기 죽을 것 같고 너무 불안하고 숨도 못 쉴 정도로 힘이 들었고 심장마비 전조증상인가 싶어 매일 가서 심전도를 하고 피를 뽑고 검사를 하고.. 결국 너무 자주 가니까 알아보신 선생님이 신경과를 추천했고 그렇게 여러 검사 후에 에피소드 없는 공황장애로 시작이 됐습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정말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절벽 바로 앞에서 미끄러지기 직전의 공포와 불안감이 오는데. 처음엔 필요 시라는 약에 의존을 하다 지금은 약까지 듣지 않는 상황까지 왔고 매일 수차례 오는 불안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차라리 죽는 게 이것보다는 낫겠다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원래부터 제 삶은 마치 신이 장난을 치는 것처럼  많이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었습니다. 여러분들께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 말씀드리지 못했었지만 참을 수 있는 고통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은 제게 제 마음의 상처를 내며 남을 도와왔던 일입니다.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아무도 저를 도와주지도. 그저 가난하고 약하다는 이유로 침을 뱉고 폭력을 가해도 같은 학교 학생이라고 감쌌던 덕분에 제가 죽으려 시도해 겨우 병원에서 살려낸 후에 그 후에서야 학폭위가 열렸었고. 꼭 커서 어릴 때 나처럼 당한 아이들이 없게 도우는 사람이 돼야지 하며 시간이 지나 지금은 학교폭력상담사 자격증을 따서 5년째 운영 중이고 학교 측에 강경 대응하게끔 일을 할 때면 그때의 트라우마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소아암 아이들과 이웃들을 도울 때에도 병원비가 없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오기도 하고.
16살 때부터 그리고 다시 6년 전부터 약으로 버텨왔으나 단 한 번도 아픈 이웃들에게 그리고 친구인 여러분들께 말하지 못하고 강한 척해왔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지켜야 할 게 생기니 한없이 처질 수밖에 없었던 저희 아버지 뒷모습이 다시 한번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아니 언제 다시 올 줄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약을 달고 살아 맨정신에 일을 할 수도 없고 한없이 걱정되는 미래와 불안감에... 단 한 번의 그저 우발적이 아닌 정말 힘들었습니다. 억지로 버티고 버티고 버텨봤는데 그렇습니다.
제가 한 10년간의 기부와 봉사는 제가 그저 얼마나 힘든지 겪어봤고 나눌 수 있기에 했던 것이기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 가정을 이루고 무거운 어깨를 짊어지고 나가야 하려는 문을 신이 막아버리니 발 디딜 곳 없는 절벽이라 그랬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다만 꽃 피는 봄이 오고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올 때에 이 글을 보는 당신과 내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hylim@osen.co.kr
[사진] 유정호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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