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살이 쪄서…김성근 감독님 펑고 다시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내야수 김회성(36)은 한화에서 전력 분석원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쉴 새 없이 치고 달리던 선수 시절을 뒤로 하고 책상에 앉아 데이터와 영상 분석 교육을 받으며 업무 파악에 들어갔다. 그 사이 체중이 5kg가량 불어난 김회성은 “김성근 감독님 펑고를 다시 받아야 할 것 같다”며 선수 시절의 추억을 돌아봤다.
세광고-경성대 출신으로 지난 2009년 1차 지명으로 연고팀 한화에 입단한 김회성은 거포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까지 1군에서 10시즌 통산 423경기를 뛰며 타율 2할1푼2리 169안타 35홈런 117타점을 기록했다. 크고 작은 부상으로 기량을 꽃피우지 못했지만 2015년 83경기 홈런 16개로 장타력을 과시했다.
선수 생활 내내 성실함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지난해 시즌을 마치고 한화의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됐지만 평소 성실함과 연구 자세를 인정받아 은퇴한 투수 윤규진과 같이 전력 분석원으로 발탁됐다. 아쉽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제2의 야구 인생을 힘차게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김회성과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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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전력 분석원을 맡게 됐는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
▲ 팀을 나오고 나서 석장현 전략팀장님과 대화했다. 팀장님이 향후 계획을 물어봤고, 팀에서 새로운 일을 배워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구단에서 좋게 봐주셨는지 전력 분석 자리를 제의하셨다. 지금 열심히 공부 중이다. 경기 기록을 하고 영상 편집도 해야 한다. 사무직이 아직 어색하지만 기초적인 것부터 잘 배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선수 생활을 더 연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 한화에서 할 수 있으면 몰라도 다른 팀에서 하고 싶진 않았다. 지난 시즌 막판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욕심으론 1년만 더 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긴 했지만 팀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몸담은 팀이고,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 10시즌 동안 프로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어떤가.
▲ 지금은 업무를 배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처음 그만 두고 나선 선수 시절 영상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매년 부상으로 경기에 많이 못 나간 게 아쉬웠다. 이제는 우리 후배들이 다치지 않고, 나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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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 (2019년 5월4일 대전 KT전) 끝내기 안타를 쳐서 어린이 팬이 울었던 경기가 기억에 난다. 나중에 그 어린이 팬을 만나 “나 말고 태균이형 같은 선수가 돼야 한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웃음).
- 김성근 감독 부임 초 지옥 훈련을 완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김성근 감독님 시절에 훈련이 엄청 힘들었지만 경기에 많이 나갔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했다. 그때 당시는 너무 힘들었지만 김성근 감독님 덕분에 야구하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요즘 살이 쪘는데 감독님 만나서 다시 펑고를 받아야 할 것 같다(웃음). 모든 감독님, 코치님들께 감사하지만 김성근 감독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감독님께 새해 인사를 전화로 드렸는데 전력 분석 잘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 김성근 감독뿐만 아니라 여러 감독들이 좋게 평가하며 기회를 줬다.
▲ 감독님들마다 팀에 새로 오시면 나를 좋게 봐주시고 기회를 많이 주려 하셨다. 기회를 잘 살렸으면 한 단계 올라가 선수 생활도 좋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력도 떨어지긴 했지만 부상이 아쉬웠다. 입단 첫 해부터 연습경기에서 상대 투수 공에 손등을 맞아 골절됐다. 2010년에는 한대화 감독님이 처음 오셔서 좋은 말씀으로 기를 살려주셨는데 수비 펑고를 받다 불규칙 바운드로 손가락을 다쳤다. 그때부터 부상 악몽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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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0월4일 대전 롯데전에선 타구에 귀를 맞아 30바늘을 꿰매기도 했다.
▲ 귀를 다치긴 했지만 플레이를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팀이 3위 싸움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 어떻게든 뛰고 싶었다. (10월9일 수원 KT전) 반창고로 귀를 감싼 채 홈런을 치기도 했다. 귀 상태가 좋아져서 반창고를 풀려고 하니 한용덕 감독님이 “계속 풀지 말고 뛰어라”고 농담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가을야구도 처음 경험했다.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삼중살을 쳤는데 9회 태균이형 결승타가 아니었다면 역적이 됐을 것이다. 그때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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