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상상』, 잃어버린 신화와 우주의 시간을 찾아 떠난 ‘달력과 시간’ 여행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0.12.11 13: 19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인 시간을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숫자나 기호로 표현해내는 마법 같은 일”.
아단문고(이사장 김호연)가 발행하는 연간지 『문자와 상상』 제5호 특집 ‘달력과 시간’의 머리글, ‘우주적인 시간, 민속적인 상상’에는 달력을 이렇게 규정해 놓았다.
최근 발간된 『문자와 상상』에 따르면, 달력은 “옛날에는 권력자의 상징적인 통치행위였고, 달력을 배포하는 일은 곧 시간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이었다.

이창익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강사는 이 잡지에 실린 ‘조선시대 역서(曆書)의 시간 의식과 우주론-텅 빈 시간의 공포와 점술의 시간’이라는 글에서 “역서의 시간은 일상적인 경험의 시간을 우주화 하는 장치일 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시간을 일상적인 시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한해 내내 신종 역병, 코로나바이러스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달력의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달력을 주고받으며 한해를 마감하면서, 동시에 새해를 시작했던 우리네 습속을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시점이 됐다.
문자를 그리고, 새기면서 그 세계를 상상하는 매력적인 잡지, 『문자와 상상』 제5호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만 신화적인 시간, 우주적인 시간을 다시 기억하고 헤아려 보는’ 달력과 시간 특집에 ‘우리 역사 속의 달력 이야기’(정성희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관), 이창익의 ‘조선시대 역서의 시간의식과 우주론’과 ‘태양력, 음양결합력, 조선민력, 약력의 구조와 해석’, ‘근대 초기 태양력의 도입과 음양력의 병용’(임현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국가와 민간의 역서 활용과 풍속의 변화’(김태우 신한대 조교수) 등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글들을 실었다.
달력에 관한 글 외에도 아단문고 소장 문화재인 보물 제573호 권근의 『시천견록· 서천견록』(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 ‘흠의 정신으로 설파한 고전의 진리’), 아단문고 소장 『홍길동전』 3종을 소개한 유춘동 강원대 국문과 교수의 글, ‘세책본, 경판본, 완판본으로 변신한 홍길동 이야기’, 일제 강점기의 동인지 『대중시보(大衆時報)』(1921년 5월 25일 발행, 임시호)를 풀이한 박종린 한남대 교수의 ‘반자본주의 사상의 이념적 좌표’, 예술원 설립 뒷이야기를 나보령 서울대 국문과 강사가 전쟁 중인 1952년 11월 피난지인 부산에서 창간한 자유예술인연합의 기관지 『자유예술』을 통해 풀어놓는 등 다채로운 글의 향연을 엿볼 수 있다.
아단문고는 김호연 이사장의 모친인 고 아단(雅丹) 강태영 여사가 생전에 ‘각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수집한 우리의 고 전적과 근현대 문학 자료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1985년부터 한국 전통문화의 토대를 마련한 전적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1989년부터는 저명 문인들의 친필과 유품 등을 기증받았다.
2005년에 재단법인 아단문고를 설립하면서 명실상부한 한국학 박물관과 자료실로 거듭나게 됐다. 재단법인 설립 이전의 아단문고가 자료의 수집과 정리, 보관에 역점을 두었다면, 재단법인 설립 이후에는 전시 기획과 열람 기능, 학술 연구 업무, 자료 발간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국내 유수의 한국학 박물관과 자료실로 발전해가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아단문고의 소장 자료는 조선 시대 한문 전적이 중심으로 국보 3점, 보물 28점, 서울시 문화재 2점 등 지정문화재 33점과 귀중본 56점이 포함돼있는 한국 고문헌, 개화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사이에 간행된 희귀 단행본과 신문, 잡지, 신문 스크랩 등을 모은 것, 최정희, 오영수, 백철, 박재삼 등 저명 문인들이 기증한 잡지와 문학도서, 문인들의 친필원고, 편지, 그림, 사진, 문방구 등을 아우른다. 아단문고 소장품은 총 8만 9000여 점이다.
아단문고는 박천홍 학예실장의 주재로 『문자와 상상』이라는 정기간행물을 통해 해마다 주제를 달리해 소장 자료를 학계 전문가, 연구자들의 글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아단문고 소장 자료는 여태껏 사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숨어 있는 자료들이 『문자와 상상』을 매개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문자와 상상』은 2014년 가을호로 창간, 제1호를 낸 데 이어 2016년 한해는 거르고 해마다 발간하고 있다.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비매품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국, 공립 도서관 등에서는 볼 수 있다. 아단문고는 자체 누리집도 활용, 귀중한 소장 자료를 소개하고도 있다.
『문자와 상상』을 기품있는 잡지로 꾸려가고 있는 박천홍 아단문고 학예실장은 “올해 전통달력 같은 경우 일반독자들이 보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가지고 있는 여러 자료 가운데 전통시대 자료와 근대자료를 앞으로 번갈아 가며 잡지에 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반 고서 수집가들이 자료 외부 공개를 꺼리는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아단문고의 희귀자료 공개는 자못 뜻깊은 작업으로 호평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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