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4년차' 양동근 밝힌 #죽밤 #연기철학 #결혼 #아빠(종합)[인터뷰]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0.09.25 16: 25

 “이 직업의 특성이 내일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보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 지금 가장 소중하다.”
배우 양동근은 25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감독 신정원) 인터뷰에서 “제가 지금껏 잘 안 된 영화도 있고 잘 된 영화들도 있었다. 그 결과의 이유를 잘 알겠는데, ‘죽밤’에 대한 시사회 반응이 좋은 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해가 안 가지만 싫지는 않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닥터 장은 이상한 남편(김성오 분)의 뒤를 캐달라는 소희(이정현 분)의 의뢰를 받고, 주도적으로 계획을 짜는 연구소 소장. 영화의 시작부터 배우 이정현이 맡은 소희 캐릭터와 함께 서사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인상깊다. 무엇보다 ‘죽밤’은 소희, 세라(서영희 분), 양선(이미도 분)이 주인공인데 닥터 장 캐릭터가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감독 신정원, 제공배급 TCO(주)더콘텐츠온, 제작 브라더픽처스・TCO(주)더콘텐츠온, 이하 ‘죽밤’)은 인류 멸망을 목표로 지구에 온 ‘언브레이커블’과 이에 맞선 여고 동창들의 한판 대결을 그린 코믹 스릴러.  
양동근이 연기한 닥터 장은 평범한 인간인데, 외계인들의 공격에도 쉽게 죽지 않는 의문의 남자다. 영화 ‘시실리 2km’(2004), ‘점쟁이들’(2012) 등을 통해 독특한 장르를 구축해온 신정원 감독의 전작 속 캐릭터들처럼 양동근이 불가사의한 존재의 계보를 잇는 것이다. 
“이렇게 독특한 장르를 받아본 적은 처음이다. 다른 작품들은 나름대로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갔었다. 이번엔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내가 하냐 못 하냐는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신정원 감독의 색깔을 믿고 감독님 영화의 미쟝센이 되어보자 싶었다. 제가 연기에 접근한 자세가 바뀌고나서 첫 번째 작품이다.”
양동근의 실제 성격은 비교적 과묵하고 무뚝뚝한,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일명 ‘진지충’. 그런데 그런 그가 표현한 닥터 장은 엉뚱하고 예측이 불가하다. 몸 개그도 불사한다. 여느 작품들을 통해 봤던 ‘독특한 양동근’의 캐릭터와 맞물려 이질감은 없다. 그 덕분인지 색깔 강한 인물이 보여주는 예상 밖 웃음 코드가 4차원 영화 ‘죽밤’이 가진 서사에 힘찬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나만의 연기철학과 프레임을 바꾸고 나서 새롭게 시도해본 기술이 들어갔다. 제가 어릴 때부터 형성된 ‘쪼’가 있으니 그걸 믿고 현장에 가곤 했었다. 예전엔 감독이 디렉션을 주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저만의 틀에 갇혀 있었다. 스스로 저를 바라보면서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었다. 제가 평생 배우의 덕목으로 생각했던 게 유연함인데 제가 그걸 잘못 생각했던 거다.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걸 유연함이라고 여겼다. 유연함이란 감독님이 디렉션을 줬을 때 바로바로 시도해볼 수 있는 그런 거다. 유연함을 늦게 알게 된 거다.” 
양동근이 연기한 탐정사무소장 닥터 장은 바람을 피우는 남자 만길(김성오 분)의 뒷조사를 하는 인물이다. 닥터 장은 사건을 전달하는 해설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양동근은 “저 나름대로 조금 스타일을 바꾸었다. 제가 연기 패턴에 많은 시도를 했듯, 순수하게 내 연기만 생각할 때는 지났고 상업적으로 영화를 이해한 상태에서 임했다”며 “러닝타임을 생각해서 연기를 해야 한다. 닥터 장의 대사가 많은데 느리게 가면 늘어지거나 재미가 없어질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벌어져 편집되고 싶진 않았다. 이렇게 러닝타임까지 계산한 연기는 그동안 없었다.(웃음) 제 대사가 늘어지면 러닝타임에 의해 필요에 의해 잘릴 수 있어서 완전 달려야겠다 싶었다”고 캐릭터를 연구하고 표현한 과정을 들려줬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실했던 양동근이 “생각과 프레임을 바꾸고 나서 시도한 첫 작품이자 캐릭터”라는 점에서, 개인의 변신이 반영돼 흥미롭다. 그가 이렇게 달라진 이유는 결혼 후 아이를 얻고 아빠가 됐기 때문이다.
“제가 40세가 넘어서 연기 철학,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내가 ‘배우의 힘으로 가는 사람’은 아닌 거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제가 (주연)배우로서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현장에도 임해봤지만, 영화라는 건 배우를 믿고 가는 건 아닌 거 같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니 나는 현장에서 미장센으로, 감독이 펼치고자 하는 그림을 잘 그리는 도구가 되기로 했다. 이해는 없어도 가볼 순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양동근은 “아빠 전후로 인간 양동근을 나누는 게 제일 맞는 거 같다. 아빠이기 전의 양동근은 나만의 프레임으로 살았다. 내가 알고 있고 느끼는 것만이 예술이다 싶었다. 예술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것과 동떨어져 있고, 따로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제가 굉장히 폐쇄적으로 살았던 거 같다. 연기에 음악까지 하니까…제가 바라보는 예술엔 일상이 없었다”고 과거의 생각을 전했다.
“근데 결혼을 하고 치열한 육아를 하며 현실에 부딪히다 보니 제가 한방 맞았다. ‘내가 예술이랍시고 그동안 깝쳤구나’ 싶은 거다.(웃음) 그냥 현실이 예술이다. 뭔가 뒤틀리거나 다르거나, 특별한 걸 추구하는 게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 완전히 달라진 거 같다.(웃음)”
양동근은 일반인 박가람 씨와 결혼해 슬하에 3남매를 키우고 있다. 결혼과 출산 이후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한다. “제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될 수 있겠다 싶다. 인간 양동근이 달라지기 위해선 결혼을 해야한다고 느꼈다”며 “결혼해서 아내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삶의 패턴이 바뀌면서 가치관이 바뀌더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변하더라”고 말했다. 
양동근은 지난 1987년 KBS 드라마 ‘탑리’로 데뷔해 독보적인 개성을 가진 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현장이 오래됐으니 하던 대로 하는 게 재미가 없기도 했다. 30여년 동안 재미없었던 적이 있었고 때려치우고 싶은 적도 많았다. 물론 제가 생각한대로 했는데 반응이 좋으면 엄청난 재미가 있지만…다시 애정을 갖고 연기를 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지 생각해봤다”고 밝혔다.
그의 결론은 현장에서 즐기면서 유연하게 하는 것.
“그간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즐기면서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배우들을 떠올려봤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한 번 해봐야겠다 싶었다. 즐긴다는 것은 감독님과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거다. 제가 만들어 간 것을 현장에서 펼치는 게 아니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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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CO(주)더콘텐츠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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