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폭격기' 선동렬, 야만의 시대 그 불멸의 기록들 [오!쎈 광주]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20.07.26 12: 32

  KIA 타이거즈는 지난 25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88 고속도로 씨리즈' 대결 이벤트를 벌였다. 올드 유니폼을 입고 영호남 추억의 라이벌전을 재현했다. KIA 선수들은 검빨 유니폼을 입었고, 삼성은 90년대 올드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다. 프로야구 장년 팬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소환시키는 장면이었다. 
KIA는 타이거즈 레전드 선동렬(57) 전 감독을 초청해 예우하는 이벤트로 가졌다. 구단은 감사패와 꽃다발도 주었고, 선 전 감독은 시구까지 했다. 프로야구를 석권했던 그 유려했던 무등산 폭격기의 폼은 사라졌다. 그만 포수 옆으로 크게 빠지는 볼을 던지며 "아이고~"소리를 냈다. 멋쩍은 웃음까지 지었다. 세월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선 전 감독이 마운드에 오르자 전광판에서 젊었던 시절 활약상을 담긴 영상이 펼쳐졌다. 무시무시했던 볼의 힘을 실감할 정도로 투구폼은 강렬했다. 유연한 몸으로 최대한 몸을 끌고 나와 던지는 볼에 타자들은 무력한 헛스윙으로 반응했다. "선동렬이 불펜에서 몸만 풀어도 상대는 경기를 포기했었다"는 해설자의 멘트까지 곁들여졌다.

25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열렸다.경기 시작 전 선동열 전 감독이 시구를 하고 있다./ksl0919@osen.co.kr

실제로 선 전 감독이 던지는 볼을 보지 못한 이들은 기록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11년 동안 146승과 132세이브를 따냈다. 통산 평균자책점은 1.20에 그쳤다. 1647이닝 동안 1698개의 삼진을 뽑았다. 이닝당 1개가 넘는다. 피홈런은 불과 28개. 난공불락의 투수였다. 타이거즈 신화는 바로 선동렬의 어깨에서 비롯됐다. 
그때는 선발과 구원투수 구분이 없던 마구잡이 시대였다. 그래서 1986시즌은 전율 그 자체였다. 39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팀 당 108경기 시대였다. 선발로 22번 나갔는데 완투가 18번이었다. 완봉은 8번이었다. 구원투수로 17번이나 등장했다. 말이 구원투수이지 긴 이닝을 끝까지 소화하는 롱클로저였다. 가공할 대목은 262⅔이닝을 던졌는데 평균자책점이 0.99였다는 것이다. 
레전드 선동열 전 감독이 감사패를 받고 이화원 KIA 타이거즈 대표이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ksl0919@osen.co.kr
이런 식으로 선발 & 롱클로저 융합 생활은 1991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1986년부터 한국시리즈 4연패, 1991년 우승의 이유였다. 1992년 어깨 건초염으로 11경기만 출전하고 시즌을 쉬었다. 이후는 전문 소방수로 변신해 1993년 또 한 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1993시즌 또 하나의 기록을 내놓았다. 마무리 투수인데도 규정이닝을 소화한 것이었다.
49경기에 출전해 126⅓이닝을 던졌다. 126경기 체제였다. 성적은 10승31세이브. 10승이 모두 구원승이었다. 역시 롱소방수 노릇을 했다는 의미이다. 선발이 5이닝만 던지면 곧바로 출동해 경기를 끝까지 책임졌다. 놀라운 것은 평균자책점이 0.78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현재도 살아있는 KBO 신기록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깨기 힘든 불멸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1986년부터 선동렬 투수와 함께 했던 멀티플레이어 이건열 동국대 감독은 이렇게 정리했다. "타자들은 5회까지만 이기면 됐다. 왜냐면 선동렬 투수가 6회부터 나왔으니까. 조계현, 송유석, 신동수의 10승을 선동렬이 만들어주었다. 타자들도 이득이었다. 선동렬이 나오면 상대 소방수가 들어간다. 그러면 우리 타자들도 점수를 더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선동렬이 올라오면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했다."/sunny@osen.co.kr
레전드 선동열 전 감독이 자신의 유니폼 액자를 선물받고 조계현 단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ksl0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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