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넷플릭스行..생존과 신뢰 사이[Oh!쎈 이슈]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0.03.24 20: 1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내 극장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던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 제작 싸이더스)이 내달 10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많은 관객들이 기다린 일이었지만 ‘공개’와 ‘개봉’을 놓고 배급사와 해외 세일즈사간의 입장차가 커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생존, 다른 이에겐 신뢰의 문제여서다.
‘사냥의 시간’의 배급사 리틀빅픽처스(리틀빅)는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당사는 전 세계 극장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가장 많은 국내외 관객을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콘텐츠판다(해외판매사), 극장, 투자자, 제작사, 감독, 배우를 찾아가 설득하는 고된 과정을 거쳤다”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하면서 관계자들의 이해를 구했다고 전했다.
반면 해외배급대행사 콘텐츠판다는 넷플릭스를 통해 '사냥의 시간’이 공개되는 것에 반대하며 협상 중지를 요구했다. 같은 날 콘텐츠판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리틀빅은 당사와 충분한 논의 없이 이달 초 구두를 통해 넷플릭스 전체 판매를 위해 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중순께 공문발송으로 해외 세일즈 계약해지 의사를 전했다”고 말했다. 이미 해외판매가 완료된 상황에서 계약해지는 있을 수 없다는 것. “리틀빅은 투자사들에게 글로벌계약을 체결할 계획을 알리는 과정에서 콘텐츠판다만을 누락시켰다. 오늘 보도자료를 통해 이중계약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해외 영화사들로부터 기존에 체결한 계약을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기사를 통해 확인했다. 일방적인 행위로 당사는 금전적 손해를 입는다”라고 주장했다.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에 리틀빅은 OSEN에 “넷플릭스 공개를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한 건 절대 아니다. 넷플릭스에 처음 제안할 때부터 콘텐츠판다를 찾아갔고, 상황을 설명하면서 도와 달라고 했다”며 “몇 차례 공문, 메일, 전화, 직접 찾아가 미팅을 하는 등 계속 요청했지만 불가하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리틀빅 측은 첫 번째 약속을 어겼기에 개봉 전 해외 선판매된 금액을 전액 물어주겠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해외 판권 판매의 경우, 개봉 전에는 계약금 반환의 절차를 통해 해결한다. 천재지변의 경우 쌍방에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본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수입사에서 ‘사냥의 시간’의 판권을 구매했고 향후 상황이 나아져 극장 개봉을 한다고 해도, 예상보다 관객수가 적다면 해외사 측이 손해를 볼 수 있다. 이에 리틀빅 측은 “일부 해외수입사의 경우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은 넷플릭스와의 계약 전에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리틀빅은 ‘생존', 콘텐츠판다는 ‘신뢰’를 놓고 갈림길에 서있다. 그동안 한 번도 발생했던 적이 없는 일이기에 모두가 당황스럽고 어찌해야할 바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화 포스터
리틀빅의 입장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시 극장이 활력을 찾아가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동시기 개봉작들과 날짜 선정을 놓고 또 다시 고민해야 한다. 그간 개봉을 미뤄 홍보를 새롭게 하기 위해선 홍보비 책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엔 리틀빅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대기업이 아닌 데다가 최근 몇 년간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없어 존폐위기에 내몰렸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돌연' 넥플릭스 공개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겠으나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반면 해외세일즈사 콘텐츠판다도 해외 투자자들에게 입장을 번복해야하는 상황에 놓여 신뢰를 잃게 됐다. 그들은 자사를 넘어 한국 영화계에 자칫 신뢰도가 떨어질까 걱정하고 있다. 사겠다고 제 값을 지불한 사람들에게 갑자기 못 팔게 됐으니 도로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는 과정이 껄끄럽고, 잡음이 많아져 관계 형성 및 유지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다. 리틀빅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거론하는 이유다. 
‘사냥의 시간’의 플랫폼 변경은 코로나19라는 뜻하지 않은 충격이 몰려와 관성처럼 행하던 개봉이 멈춰지고,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었다. 영화의 개봉이 당연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 됐고, 극장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꼭 가야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도 또 한 번 상기시켰다.
각자의 주장만 내세워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상 초유의 상황인 만큼 모두가 힘들겠지만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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