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OSEN+] “경계를 넘어라”, 전신 성형한 대표 세단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20.02.10 08: 57

 승용차 디자인을 굳이 미모순으로 세우라면 스포츠카>쿠페>세단이 된다. 그런데 가장 평범했던, 그 동안 크게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세단이 화려한 변신을 시작했다.
전통적인 개념의 세단은 가족들이 타고 다니는 패밀리카나 업무용 차량에 맞춰졌기 때문에 외모를 가꾸지 않았다. 그 보다는 안락한 주행, 넉넉한 공간, 보다 안전한 주행이 더 강조됐다.
세단의 평범함 보다는 좀더 세련미가 돋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쿠페를 찾았다. 세단에 비하면 실루엣이 유려하다. 딱 봐도 도회지적이다. 그런데 매끈한 정장에 구두만 신는 사람에겐 말 못할 불편함이 있다. 쿠페는 잘 빠진 라인 대신 뒷좌석 공간을 희생해야 했다.

스포츠카는 시각적으로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찾고, 주행면에서는 짜릿한 쾌감을 추구한다. 대신 공간성과 안락함에서는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세단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불편한 스포츠카를 왜 타는 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런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세단 시장에 위기가 닥쳤다. 아웃도어 라이프에 빠진, 일부 계층이 향유하던 SUV가 일상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엔트리카에서부터 패밀리카까지 전세계적으로 SUV의 강력한 공격이 시작됐다. 이제는 업무용 차량까지 SUV의 쓰임새가 커졌다.
졸지에 세단의 존재가 무색하게 됐다. 이대로 SUV에 밀려 존재가 사라지고 말 것인가? 선택은 하나다. 쿠페의 영역을 파고 들자.
세단이 화려한 외출을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 몇 해가 흘러도 아무 소식도 없는데/세월에 변해버린 날 보며 실망할까봐/오늘도 나는 설레는 맘으로 화장을 다시 고치곤 해.” 가수 왁스가 부른 노래 ‘화장을 고치고’의 한 대목이다. SUV에 빼앗긴 소비자들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세단의 몸부림이 시작됐다. 화장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전신성형에 가까운 대변신을 감행했다.
변신의 방향은 똑 같았다. 외형은 쿠페형을 취하고, 대신 실내의 불편함을 보완하기 위해 전장을 늘렸다. 시각적 안정감과 주행 안전성을 위해 높이(전고)는 낮아지고 좌우는 넓어졌다. 이 정도의 외모면 누구든 외칠 수 있다. “아니, 이건 숫제 쿠페잖아!”
국내 중형-준대형 세단 시장을 이끌고 있는 현대자동차 ‘쏘나타’ ‘그랜저’, 기아자동차 ‘K5’가 대담한 변신을 했다. 이미 수입차에서도 봐 왔던 흐름이다.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가 새 모델을 내놓았을 때도 그 대담함에 놀랐다. 쏘나타와 그랜저, 그리고 K5가 어느 정도의 전신성형을 했는 지 살펴본다.
#쏘나타가 시작한 ‘센슈어스 스포트니스’
쏘나타(8세대)와 그랜저(6세대 페이스리프트)의 변신을 주도한 인물은 현대디자인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상엽 현대자동차 전무다. 이상엽 전무는 2016년부터 현대차 디자인팀에 합류해 이후 출시된 현대차 라인업의 디자인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상엽 전무가 내놓은 쏘나타와 그랜저는 대단히 파격적이다. 현대차 디자인의 패밀리룩이나 쏘나타-그랜저 디자인의 세대별 연속성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밑그림을 완전히 새로 그리고자 작정한 듯한 결과물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동안 현대차 디자인은 프리미엄 브랜드로 스핀오프 한 제네시스 브랜드와 일부 요소가 혼재돼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이미 상당 수준 패밀리룩을 정립한 제네시스를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 판정에서 밀린 아우가 변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3월 출시된 8세대 쏘나타는 ‘센슈어스 스포트니스(Sensuous Sportiness)’라는 디자인 개념이 적용됐다. 스포티한 감성의 감각적인 세단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각종 첨단 안전 및 편의사양, 신규 엔진 및 플랫폼으로 차량 상품성을 높였다.
센슈어스 스포트니스는 현대차가 2018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한 콘셉트카 ‘르 필 루즈(Le Fil Rouge)’에 잘 나타나 있다. 비율, 구조, 스타일링(선, 면, 색상, 재질), 기술 등 4가지 요소의 조화를 근간으로 스포티한 감성을 자아내는 현대차의 차세대 디자인 철학이다. 8세대 쏘나타는 이 디자인 콘셉트가 적용된 현대차 최초의 차량이다.
쏘나타 디자인에는 빛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라이트 아키텍처’가 강조돼 있다. 헤드라이트 디자인을 보면 신형 쏘나타가 ‘빛’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잘 알 수 있다. 기하학적으로 크게 각인된 헤드라이트 라인은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외관 디자인을 형상화한다.
신형 쏘나타는 3세대 신규 플랫폼도 채택돼 정숙성, 승차감, 핸들링, 안전성이 개선됐다. 모든 엔진은 현대∙기아차의 차세대 엔진인 ‘스마트스트림’으로 변경해 연비를 높였다.
#그랜저가 완성한 ‘센슈어스 스포트니스’
그랜저는 6세대 모델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2019년 11월 ‘더 뉴 그랜저’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풀체인지 모델이 2016년 11월에 출시됐는데, 3년만에 대대적인 공사가 또 벌어졌다. 신형 쏘나타에 처음 입힌 ‘센슈어스 스포트니스’를 그랜저에도 빨리 입히고 싶어서였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지만 종전보다 휠베이스를 40mm, 전폭을 10mm 늘렸다. 쿠페스타일을 추구하는 센슈어스 스포트니스를 온전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차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종전 사이즈에 구현하면 실내가 타격을 입는다.
전면부는 ‘파라메트릭 쥬얼(Parametric Jewel)’ 패턴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LED 헤드램프, 주간주행등(DRL)이 일체형으로 구성됐다. 주간주행등으로 적용된 ‘히든 라이팅 램프’는 시동이 켜 있지 않을 때는 그릴의 일부이지만 시동을 켜 점등하면 차량 전면부 양쪽에 별이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만들어낸다.
측면부는 풍부한 볼륨감과 세련된 캐릭터 라인이 조화를 이뤘으며, 기존 디자인을 계승 발전시킨 후면부는 더욱 얇고 길어진 리어램프를 통해 넓고 낮은 인상을 구현했다.
실내는 고급스러운 소재와 하이테크 기술의 각종 편의 장치가 조화를 이룬 ‘리빙 스페이스’로 탈바꿈했다. 넓고 길게 뻗은 수평적 디자인을 통해 마치 고급 라운지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새 GUI(Graphical User Interface)는 블루 컬러 라이팅으로 투명하고 아늑한 바다의 느낌을 재현했다.
#올바른 진화 단계를 보여준 K5
기아자동차의 3세대 K5는 기존 세대 디자인의 연속성을 최대한 살렸다는 점에서 쏘나타-그랜저와 차이가 있다. 2019년 12월 12일 출시된 3세대 K5는 K시리즈 디자인을 기초한 피터 슈라이어가 초안을 잡고, 2019년 10월부터 기아자동차 디자인센터장으로 부임한 카림 하비브 전무가 마무리해 탄생됐다.
카림 하비브 센터장이 “독일에 있을 때 접했던 1세대 K5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기아차는 1세대 K5를 시작으로 글로벌 플레이어의 대열에 뛰어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1세대 K5의 디자인 감성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1세대 디자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좀더 트렌디하게 변모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갔다.
K5 역시 ‘눈과 코’에 힘을 많이 줬다. K7에서 정립된 선형의 DRL은 날카로운 눈매를 만들어냈고, 사크스킨 패턴의 그릴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입매를 완성시켰다. 하비브 디자인센터장은 이 디자인을 ‘바이탈 사인(Vital Sign)’이라고 묘사했다. K7의 헤드 및 리어 라이트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데, K5에서는 심장 박동을 연상하는 의미로 해석됐다.
종전 기아차 디자인의 상징이었던 ‘타이거 노즈(Tiger Nose)’ 라디에이터 그릴은 헤드램프와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고 모든 조형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형태로 진화했다. 라디에이터 그릴 패턴 디자인은 한층 정교해졌다. 그릴 패턴은 상어껍질처럼 거칠고 날카로운 외관을 갖췄지만 부드러운 촉감을 갖춘 직물인 ‘샤크스킨(Shark Skin)’을 모티브로 삼아 역동적이면서도 고급스럽게 디자인됐다.
프론트 범퍼는 쾌속선(Hydro Foil)이 파도를 일으키며 물 위를 빠르게 달려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해 유려하면서도 다이내믹하다. 짧은 트렁크 라인과 긴 후드 라인은 차량의 스포티한 느낌을 강조해 차체의 실루엣이 후면까지 확산되는 느낌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K5 고유의 디자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측면 유리 크롬 몰딩을 기존보다 더 두껍게 하고 트렁크 리드까지 길게 연결해 미래지향적 패스트백 이미지를 구현했다.
리어콤비램프의 그래픽은 전면부 DRL과 동일하게 심장박동 형상을 하고 있는데 좌우의 두 리어콤비램프를 연결하는 그래픽 바는 간격을 두고 점점 짧아지는 형태의 점등 패턴으로 속도감과 역동성을 표현했다. /100c@osen.co.kr
* 이 콘텐츠는 ‘월간 OSEN+’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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