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인조까지 사랑하겠어, '녹두전' 강태오를 사랑하는 거지 [인터뷰 종합]
OSEN 장우영 기자
발행 2019.12.11 16: 20

조선 16대 왕 인조는 역사상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 왕은 아니다. 폐모살제 등을 이유로 들어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된 인조는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가 두 번의 호란(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반정의 이유로 내밀었던 명분들이 무참히 짓밟혔다. 때문에 인조는 선조와 더불어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왕으로 꼽히고 있다.
여러 매체 등을 통해 인조가 다뤄지고 있지만 지난달 종영한 KBS2 ‘조선로코-녹두전’(이하 녹두전) 만큼 입체적이게 다뤄지지는 않았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녹두전’에는 사실 ‘인조’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원작 웹툰에는 없는 캐릭터이고, 역사에 실제하는 인물인 만큼 축소를 할 수도, 그렇다고 확대를 해서 표현할 수도 없었다. 완급조절이 필요한 캐릭터로, 후반 서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었는데 이런 중요한 캐릭터를 강태오가 해냈다. 강태오는 ‘인조’라는 왕을 ‘차율무’로 풀어내며 호평을 받았다.
“어떻게 인조까지 사랑하겠어. 강태오를 사랑하는 거지”

[사진=박준형 기자] 강태오 인터뷰 / soul1014@osen.co.kr

그룹 악동뮤지션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패러디한 말이다. 강태오가 연기한 ‘차율무’가 알고보니 훗날 인조가 되는 능양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라마 팬들은 움찔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가 ‘능양군’, ‘인조’로 도배될 만큼 파급력이 강했다. 모두가 놀랐던 반전을 매력 있게 그려내면서 극찬과 포형 세례를 받은 강태오다.
▲ “율무가 인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흑화하면서 카타르시스 느꼈죠.”
앞에서 언급한대로 ‘율무’는 원작 웹툰에 없는 인물로, 드라마화를 하면서 새롭게 넣은 인물이다. 하지만 율무가 훗날 인조가 되는 능양군이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강태오는 “1~8부까지 대본을 받고, 6부를 기점으로 확 변하는 인물에 매력을 느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율무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일부러 비밀로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PD님, 작가님과 리딩을 할 때가 많아서 주변에서도 몰랐던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강태오는 “초반에는 걱정이 있었다. 인조라는 인물이 실존 인물이고, 내가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됐다. 안심이 된 건 ‘녹두전’이 픽션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이고, 나는 인조이기 전에 율무로 출발해 율무에게 만들어진 가상의 서사를 기반으로 연기를 풀어나갔다. PD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풀어가서 걱정보다는 쉽게 풀어갔다”고 말했다.
특히 강태오는 “참고할만한 원작 자료가 없고, 원작에 있던 캐릭터들과 케미를 잘 살릴 수 있을지,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아 리딩을 정말 많이 했다. 가볍게 넘길 신도 PD님과 고민을 aksgd이 했고, 6부에서 율무가 확 변하는 장면이 임팩트가 강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써주셨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거나 갓 끈을 만지는 등의 행동은 계산적인 율무의 시그니처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연습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강태오는 6부에서 율무가 능양군으로 밝혀지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밝혔다. 강태오는 “원래 촬영 중간에 댓글들을 잘 보지 않는데, 응원 메시지를 보며 힘이 났다. 관심의 표현이고, 연기하는 데 에너지가 됐다”며 “반응들을 보고 너무 좋았다. 고생했던 장면들을 생각해보며 보람찼다. 그 장면이 첫 촬영날 첫 신이었는데 좋은 반응이 나와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원작에 없던 캐릭터에 시청자들도 반했지만 웹툰 원작 작가도 반했다. 강태오는 “작가님이 사악하지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원작이 워낙 좋은 작품인 만큼 드라마도 잘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율무에게도 순정이 있어요. 빌런 아니죠…전과 다른 캐릭터에 매력 느꼈어요.”
극 초반에는 다정한 ‘조선 스윗남’이지만 6부를 기점으로 흑화하면서 왕좌에 대한 욕심과 동주(김소현)를 향한 집착으로 율무는 ‘욕망 빌런’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강태오는 ‘율무=빌런’이라는 말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본과 서사를 보며 동주와 관련된 서사로부터 인물이 시작되고, 동주에게 왜 그럴 수밖에 없고, 집착을 할 수밖에 없는지 납득했다. 연기할 때도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악역이 아니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율무에게도 순정이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태오는 “동주를 향한 율무의 사랑이 삐뚤어진 사랑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진실된 사랑이지만 표현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율무는 계산적인 인물로, 필요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버린다. 동주에 대한 사랑이 가짜였다면, 필요가 없다면 바로 버리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강태오는 “율무와 능양군이 1인 2역 같이 표현됐다고 하시는데, 느낌상 그럴 수 있지만 나는 다른 인물로서가 아니라 인조는 율무라고 생각했다. 이 인물이 점점 변하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했다”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강태오의 연구는 시청자들에게도 통했지만 현장에서도 통한 듯 싶다. 동동주 역을 연기한 김소현과 장난을 칠 때 강태오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동주가 경멸하듯 율무를 바라보는 눈빛이 자주 나왔다는 것. 강태오는 “극 중 동주가 율무를 보며 단 한 번도 웃어주지 않는다. 나도 현장에서 장난으로 ‘미워할거면 율무를 미워하지, 강태오를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너무 차갑게 바라봐서 상처도 받았다. 다들 워낙 친해서 장난을 치고 심술을 부릴 때가 있는데 김소현이 동주가 율무를 경멸하듯 바라보는 표정이 나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능양군이 아니다. 강태오를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웃었다.
김소현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율무’가 아닌 ‘능양군’으로 강태오를 불렀다고. 강태오는 “능양군이라는 정체가 탄로난 뒤 스태프들이 나를 ‘능양군’으로 불렀다. ‘율무’라는 이름이 예쁜데, 능양군으로 부르실 때 장난으로 ‘저는 율무입니다’라고 각인시켜드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현장 스태프들도 율무에서 능양군으로의 변신을 확실하게 느낄 만큼 강태오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동안 다정하고, 따뜻하고, 짝사랑하고, 애틋한 느낌만 주던 키다리 아저씨 캐릭터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력을 가졌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다.
강태오는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너무 분위기가 좋았다. 배우, 스태프 분들 모두 케미가 좋았다. 후련함보다 아쉬움이 큰 이유는 율무라는 좋은 캐릭터 때문인 것 같다. 내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정다감한 캐릭터가 많았다. 율무도 초반에는 비슷했지만 새로움을 보여드릴 수 있는 캐릭터여서 즐겁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이어 “흑화됐을 때 더 재밌게 연기할 수 있었다. 율무 같은 캐릭터는 그동안 많이 해왔어서 조금은 답답했다. 하지만 흑화된 뒤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들과 다른 분위기여서 내가 가진 표현들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PD님도 많이 존중해주셔서 재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 강태오를 둘러싼 두 브로맨스…장동윤, 그리고 황인엽
‘조선로코-녹두전’에서도 강태오는 짝사랑에 그쳤다. 동동주는 단 한 번도 율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원래 정혼자였던 두 사람 사이는 ‘녹두’의 등장으로 산산히 조각났다. 이 점에서 강태오는 “율무 입장에서 너무 억울하다. 율무 서사에서 보면 녹두보다 전에 동주와 이야기가 있다. 정혼자 사이이기도 했는데, 생뚱맞게 ‘김과부’가 나오더니 알고보니 남자였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 그래서 율무 입장이 이해가 됐다”고 분개했다.
왕좌로 가는 과정에서 율무는 주변 사람들을 잃었다. 광해(정준호)가 반정을 일으킨 율무에게 “외로울게다”라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브로맨스’가 있어 율무는 조금이나마 덜 외로웠다.
첫 브로맨스는 ‘박단호’ 역을 연기한 황인엽이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오랜 벗이자 주군과 신하의 관계이기도 한 두 사람은 박단호가 죽기 전까지 이어지며 로맨스보다 더 애틋한 브로맨스를 그렸다.
강태오는 “율무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벗이자 신하가 박단호다. 실제로도 황인엽과 대화를 많이 하며 남들이 모르는 율무-단호의 케미는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며 “고마운 건 항상 본방송을 마치면 황인엽이 문자로 피드백을 해줬다. 좋은 말을 많이 해줘서 든든했다”며 “단호가 있어 율무가 빛났다. 단호가 죽은 뒤 촬영할 때 너무 외로워 ‘단호가 없으니 외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실제로도 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 눈물이 왈칵할 정도로 몰입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브로맨스는 ‘김과부’였을 때 녹두와 만들어졌다. 보기 드문 여장남자와 키스신, 겁을 먹고 도망가는 전력질주신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강태오는 “전력질주 신은 자존심 대결이었다. 서로 달리기를 잘한다고 해서 진짜 추격전이 벌어졌다. 장동윤이 진짜로 잡겠다고 하면서 빠르면 인정해준다고 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이고, 이후에 장동윤에게서 인정을 받았다”고 웃었다.
이어 강태오는 ‘브로맨스 키스신’에 대해 “장동윤이 리드를 많이 해줬다. 긴장을 많이 했는데, NG도 많이 났다. 화끈하게 리얼하게 하고 끝내자고 했지만 장동윤이 NG를 냈다. 몇 번 NG가 나니까 멘탈이 나갔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브로맨스 키스신으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연말 시상식에서 장동윤-강태오에게 베스트커플상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형성됐다. 강태오는 “베스트커플상은 ‘동전커플’이 받았으면 좋겠다. 나도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을 보면서 두 사람의 케미가 너무 좋았다. 율무로 인해서 드라마가 극적인 흐름으로 무거워져 아쉬웠다”고 멋쩍어했다.
‘조선로코-녹두전’을 통해 강태오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다정한 조선 로맨티스트부터 욕망 빌런 능양군까지, 반전 있는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낸 것. 명품 연기력을 증명하면서 강태오는 ‘강태오의 재발견’, ‘주목할 만한 20대 남자 배우’로서 우뚝 섰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쌓아온 연기 내공을 증명하며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강태오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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