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파' 정윤진 감독, '덕수고 전성시대'는 계속된다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19.11.22 11: 58

덕수고는 1980년대 이후 한국고교야구 자타공인 최고의 학교이다. 1980년 야구부 창단 이후 동문회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최고 성적은 물론 최고 인기를 몰고 다니는 팀이 됐다.
창단 5년만인 1985년 전국대회 첫 정상에 오른 이후 거의 매년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야구명문고이다. 최고의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해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젖줄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서울에서 열린 ‘전국체전 100주년 대회’ 우승까지 덕수고는 전국대회에서 22번의 우승과 9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현재 사령탑을 맡고 있는 정윤진(48) 감독이 있다. 정 감독은 2007년 감독이 된 후 12번의 우승을 기록, 덕수고가 전국최강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도록 이끈 주인공이다. 고교야구계에서 ‘연구하는 지도자’로 정평이 난 정 감독을 서울 왕십리에 위치한 덕수고 야구장에서 만나보았다.

감독상을 수상한 덕수고 정윤진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sunday@osen.co.kr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매년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좋은 선수들을 만난 덕분이다. 코치들도 고생이 많았다. 무명출신 감독으로서 힘든 시간들이 많았는데 이를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남들 4시간 일할 때 나는 6시간한다는 각오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하고 기록과 데이터를 많이 활용한 점이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아마야구에서 처음으로 데이터 야구를 시작했다. 고교야구 상위권팀들의 연습경기를 직접 가서 투수들의 장단 포인트를 체크하고 메모를 열심히 했다. 상대를 잘 파악한 것이 경기를 운영하는데 유리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고 분석하고 컴퓨터에 저장까지 하는 등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코치님들이 잘 따라와줬고 졸업한 선수들이 잘해줘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동문회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동문회에서 감독과 코치들의 급여를 주는 등 열성적으로 야구부를 지원하고 있는 점이 늘 감사하다.
-‘데이터 야구’를 일찍부터 실천했다. 주위에서 다들 알고 있는지.
◀지금은 소문이 꽤 나서 아는 분들은 알고 있다. 한 번은 공항에서 우연히 염경엽 감독님(SK 와이번스)을 만났는데 얘기 많이 들었다며 자신의 데이터 야구 기록노트를 보여주였다. 염 감독님과는 평소 친하게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선뜻 자신의 기록 노트를 보여줘 정말 감사했다. 내가 하던 방법에 염 감독님의 노하우를 보태서 더 발전시키고 있다.
13년의 코치생활 동안 꾸준히 준비하고 대비한 것이 2007년 감독이 된 후 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습할 때는 우리 선수들을 잘 파악해야 한다. 감독은 식당의 주방장처럼 모든 것을 다 잘 알아야하고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것 같다. 요즘은 내가 잘알지 못하는 포수분야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뎍수고는 동계훈련을 미국 LA지역에서 하는 걸로 알려졌다. 어떻게 거기까지 가게 됐나요.
◀우리 학교가 처음 LA로 간 것은 아니다. 다른 학교들이 먼저 가고 있는 상황에서 LA 지역 동문회에서 ‘왜 우리학교는 안오냐’며 지원을 약속, 다른 학교들보다 적은 비용으로 가서 훈련을 잘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캘리포니아 3000개가 넘는 학교 중에서 상위권인 100위권 안의 강팀들과 연습경기를 많이 갖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 선수들도 이제는 영어를 열심히 배우는 등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미국 선수들과 경기도 하고 경기 후 식사도 같이 하는 등 영어를 잘 쓰고 있는 점이 선수들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비용이 다른 곳보다 더 들어가고 시차 등 단점도 있지만 야구장 등 훈련 여건에서 최적의 지역이다. 학교에서도 지원을 해주고 있다.
-졸업한 프로 제자 선수들에게도 잘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졸업한 선수들에게 어느 부분을 조언하는지.
◀제자들의 프로 경기를 종종 보는데 잘했을 때보다 달라져서 잘 못하고 있을 때 전화해서 학교로 부른다. 비디오를 통해 함께 분석하면서 미진한 점을 보완해주고 있다. 어려울 때 찾아오는 동문 후배이자 제자들이 꽤 있다. 하지만 힘들 때는 잘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고 같이 해결하다가 잘나가게 되면 안오는 선수들도 가끔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양현종(KIA), 차우찬(LG) 등 같은 선수는 참 잘하는 것 같다. 우리 학교 출신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도 잘 알지 못하지만 주위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야구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훌륭한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야구도 잘하고, 기부도 잘하는 등 후배들이 본받을 만한 선수들이다.
-고교 투수 혹사 방지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1일 투구수는 좀 더 늘렸으면 한다. 우리학교나 서울팀들은 선수층이 비교적 좋아 어려움이 적지만 선수층이 얕은 지방팀들은 전국대회에 출전하면 투구수 제한 조치로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어렵다. 이 점을 계속 협회에 얘기해서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투구수 30개였는데 15개 늘려서 45개가 됐다. 조사해 보니 미국은 대부분 1일 50개 안팎에서 제한하고 다음 날 경기에도 출전하고 있다. 요즘은 연습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주중에는 수업 후 오후 늦게 짧게 훈련하고 주말에는 주말리그로 하루도 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주말리그를 현재 토,일에서 금,토일로 바꾸면 일요일을 쉬게 돼 선수들이 효율적으로 훈련하고 게임을 할 수 있다. 동계훈련 기간도 35일로 제한해 좀 아쉽다. 연습할 때 만큼은 충분히 더 연습해서 실력을 쌓게 했으면 좋겠다.
현재 시스템이 계속 가다 보면 10년 정도 후에는 프로야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잘 던지고 잘 치는 선수들이 줄어들어 프로야구 경기의 질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공부를 병행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훈련 여건이 좋지 않다. 아주 추울 때 훈련하는 것은 부상 위험이 높아 안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처럼 날씨가 좋은 9, 10월에는 1, 2학년들을 위한 대회가 필요하다.
또 시즌 개막전인 3월말에 부산 기장군 등 야구장이 많은 지역에서 봉황대기처럼 모든 팀들이 참여하는 전국대회를 열어 동계훈련 평가를 하고 시즌 중 주말리그는 입시와 관련 있는 3학년 위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 주말리그는 경쟁대회가 아닌 공부하며 야구하는 주말리그로 운영되면 그동안 많은 문제가 됐던 아마야구의 각종 부조리들도 없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주말리그 시즌 시작전에 전국대회 출전할 팀을 미리 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도자로서 앞으로 계획은
◀우승을 몇 번 더하겠다 보다 야구하는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싶은 감독으로 남고 싶다. 더 많은 유소년들이 야구를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힘쓰고 야구 지도자들이 인격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앞길을 열어나가고 싶다.  
경기 종료 후 덕수고 정윤진 감독이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sunday@osen.co.kr
◆정윤진 그는 누구인가
선수생활은 평범했고 짧았다. 덕수고(구 덕수상고)에서 3루수 내야수로 뛰었고 대학 대신 군입대(상무)를 택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해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고 1994년 모교인 덕수고의 코치로 지도자의 첫 발을 뗐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그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기 위해 노력, 야간훈련 마치고 새벽까지 공부하며 3번의 수능을 본 끝에 1999년 서울산업대학교 야간 체육학과에 입학하는데 성공했다. 대학에서 생리학, 스포츠심리학 등을 배우며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인 그는 대학원에도 도전, 3번의 응시 끝에 교사자격증을 딸 수 있는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내친김에 스포츠 마케팅 분야 박사까지 도전하려 했으나 외부사정으로 인해 뒤로 미뤄 놓고 있다. 덕수고 선수들의 장단점을 먼저 꼼꼼히 파악하고 상대팀 선수들까지 분석하며 ‘데이터 야구’를 실천하고 있는 그는 어느 덧 50대를 앞둔 중고참 고교야구 지도자로서 책임감도 느낀다고 한다.
요즘 대세가 된 ‘공부하는 스포츠선수’의 취지도 살리면서 선수들의 훈련과 실전을 통해 야구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하며 협회 등에 실천안을 만들자는 제안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덕수고 성공시대’를 넘어 한국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꿈을 향해 한 발씩 전진하고 있는 정윤진 감독이다.
◆’덕수고 야구부’는 영원하다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덕수고는 오는 2024년 왕십리 시대를 마감하고 위례신도시로 이전해 새둥지를 튼다. 공립학교로서 현재 특성화고인 덕수고는 위례신도시에서는 일반인문계로 거듭난다. 위례신도시로 이전하게 되면 1학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게 돼 2, 3학년생이 없다.
하지만 야구부는 2, 3년생까지 그대로 새학교에 터전을 마련, 야구부 명맥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동문들의 노력으로 교육당국과 협의한 결과, 일반학생은 2, 3학년이 없어도 야구부는 그대로 고학년을 유지토록한 것이다. 이에 야구부와 동문들은 교육당국에 금싸라기땅인 현재의 왕십리터를 옮기고 운동장이 없는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됐기 때문에 실내야구연습장, 실내체육관, 트레이닝센터, 식당, 공부방 등을 두루 갖춘 생활관 설립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동문회에서는 위례신도시 인근의 경기도 하남시에 야구장 2개면을 만들어 선수들이 마음껏 훈련하고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1910년 개교해서 전신인 덕수상고 시절, 최고의 명문상고로 명성을 떨쳐 재계는 물론 정계에도 많은 동문들이 포진하고 있는 덕수고는 위례신도시에서도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야구부 선수들은 더욱 명성을 날리는 최고의 학교가 되도록 땀흘리고, 일반 학생들도 선배들의 뒤를 이어 한국사회를 이끌 동량들을 배출할 수 있는 최고 명문고를 향하고 있다.
/사진. OSEN 데이터자료 및 덕수고 제공
<이 기사는 월간 'OSEN+'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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