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복서' 정혁기 감독 밝힌 엔딩의 의미[인터뷰③]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9.10.12 13: 45

(인터뷰②에 이어) 펀치 드렁크에 걸린 전직 복서 이병구(엄태구 분). 무뚝뚝하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하게 걸어갔던 우직한 남자. 하지만 그는 지금 동네 꼬마들과 TV를 보며 장난을 치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 많은 동네 형이다.
과거도 미래도 알 수 없는 병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미완으로 남은 판소리 복싱에 재도전한다. 연인이자 은인 같은 민지(혜리 분)와 함께.
정혁기 감독은 11일 서울 모처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병구가 다시 머리를 자른 건 심적인 변화를 겪은 그의 내면을 겉모습으로 드러내고 싶어서였다"며 "머리를 깎은 모습을 통해 과거에 열정적이었고 활동적이었을 때의 각오를 다시 한 번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혁기 감독 /sunday@osen.co.kr

영화 스틸사진
현재의 병구는 '초딩'들과 말이 잘 통할 법한, 어찌 보면 모자란 구석이 넘치는 바보 같은 남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며 프로복싱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뜻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에 연루돼 모든 것을 바쳤던 사각의 링을 떠났다. 이제는 별다른 직업이 없는 그는 그냥 동네 만만한 형. 아니면 불새체육관 알바생.
체육관을 운영하는 박관장(김희원 분) 밑에서 경기출전을 위한 재기를 노리지만, 복싱을 다시 하고 싶다고 해서 쉽사리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게 됐다. 과거에 불 타올랐던 열정과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던 병구에게 천사 같은 민지가 찾아오면서 상황은 점차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녀 역시 ‘아프니까 청춘’인데 자신이 갈 길도 헤매고 있으면서 오지랖 넘치게 병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 민지는 초등학교 때 잠깐 쳤던 장구 실력을 자랑하며 병구의 전담 고수(鼓手)가 되어줄 것을 약속한다. 두 사람은 틈만 나면 '죽기 전에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한 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해야죠'를 외친다. 
영화 스틸사진
이에 정 감독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고 외치는 모습은 저의 기본적인 마인드다. 제 평생의 모토까진 아니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영화 일을 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는지 두려움이 커 다른 일을 해봤는데 결국 영화로 돌아오게 됐다. 저의 그런 경험담을 영화에 담았다"고 밝혔다. 판소리 복싱에 도전하는 병구의 모습이 영화에 매진하는 정혁기 감독의 얼굴인 것이다.
그는 이어 "남들이 비웃더라도 버티면서 영화를 하는 게 제게 주어진 일인 거 같다"며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정서를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 싶다. 가령 사랑, 희생 같은 정서랄까. 다음 작품이 어떤 게 될지 모르겠는데 이런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는 소신을 전했다.
"엔딩은 열린 결말이다. 시나리오에서 판타지로 읽은 분도 있었고. 저는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 미안한 마음에 갇혀 있던 병구가 마지막에는 현재를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힘찬 출발을 담았다."
영화를 본 각각의 관객들이 생각한 것에 따라 해피엔딩으로 혹은 새드엔딩으로 다르게 끝날 수 있다. 정혁기 감독은 "저는 꿈이든 상상이든, 현실이든 관계없이 병구가 얽매였던 것에서 벗어난 심정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 watc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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