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계 전설' 칼 라거펠트, 그가 떠났다..향년 86세[종합]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9.02.19 23: 30

'명품계 거장' 칼 라거펠트가 별세했다. 향년 86세. 여러 개의 패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끈 칼 라거펠트는 전 세계에 명품이라는 의미를 정립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샤넬은 19일(한국시간) 오후 아트디렉터 칼 라거펠트가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칼 라거펠트의 건강상태가 악화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올 1월 파리에서 열렸던 샤넬 패션쇼에도 참석하지 못했었다. 당시 샤넬 측은 "칼 라거펠트가 심신이 지쳤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던 바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1933.9.10~) 는 독일 북부 도시 함부르크에서 스웨덴 출신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 이름은 칼 오토 라거펠트로, 연유 사업을 했던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여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칼 라거펠트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해 저서를 남긴 알리시아 드레이크에 의하면, 그는 어려서부터 드로잉에 뛰어났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서 책을 읽고 공상을 즐겼으며, 예술과 옷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칼 라거펠트는 당대 쿠튀리에보다 한 등급 낮게 평가받았던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당대 패션의 최고급 취향과 결별했지만 그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취향과 교감했고 패션의 변화에 적응하는 순발력을 습득할 기회를 얻었다. 이에 서서히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갔다.
칼 라거펠트는 1964년부터 끌로에에 합류해 수석 디자이너로서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잘 팔리는 컬렉션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72년 무렵, 끌로에 컬렉션은 패션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됐고 라거펠트는 패션을 이끌어가는 디자이너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됐다. 끌로에와 라거펠트의 관계는 그가 샤넬로 옮기기 전까지 20년간 지속됐으며 9년 간의 공백 후 1992년부터 1997년에도 관계가 이어졌다.
1965년 시작된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펜디와의 관계 또한 칼 라거펠트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큰 기반이 됐다. 1925년 로마에서 탄생한 펜디는 숙련된 모피 가공 기술로 유명했으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브랜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펜디에 합류한 라거펠트는 펜디의 자매들과 함께 펜디의 상징이 된 '더블 에프' 로고를 창조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뚜렷이 가시화하는 한편, 무겁고 둔탁한 모피를 가볍고 세련된 패션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1982년 칼 라거펠트의 샤넬 영입이 공식 선언됐다. 
끌로에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1984년부터 그는 샤넬의 프레타 포르테까지 감독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샤넬 제국의 건설을 주도했다.
칼 라거펠트의 패션 세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 안에서 이해된다. 특정 문화적 전통에 대한 존경과 경배를 거부하고 자신의 미학적 판단에 의해 모든 것을 자유롭게 혼합하는 성상 파괴주의적 태도와 유희적 적충주의가 그의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칼 라거펠트의 죽음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20세기~21세기 가장 열매를 많이 맺은 디자이너"라고 평가했다. BBC는 "칼 라거펠트는 패션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패션에 매진했다"고 전했다./ purplish@osen.co.kr
[사진] karllagerfeld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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