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혼다 ‘뉴 파일럿’, 팰리세이드 열풍에 모나리자 미소로 “땡큐”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9.02.12 11: 31

요즘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현대자동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 열풍이 거세다. 출시 두 달여 만에 누적 계약대수 4만 5,000대를 돌파해 5만대를 넘보고 있다. 차를 받기까지 6, 7개월이 걸린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데, 대형 SUV에 쏠린,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열기를 조용히 즐기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 동안 힘겹게 대형 SUV 시상을 끌어오던 주인공들이다. 포드 익스플로러가 그렇고 혼다 파일럿이 그러하다. 
혼다는 지난 연말 팰리세이드 출시와 비슷한 시기에 파일럿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뉴 파일럿’을 국내 시장에 새로 내놓았다. 묘하게 출시 시기가 엮이긴 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팰리세이드의 폭발력이 본격화되기 전이기 때문에 팰리세이드를 의식한 시기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팰리세이드 계약고가 5만대에 육박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는 요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없던 시장이 열렸다. 외롭게 시장을 지켜오던 ‘익스플로러’와 ‘파일럿’은 은근히 표정관리를 해야 할 참이다. ‘팰리세이드 5만 대’ 소식은 결코 시장을 빼앗긴 게 아니다. 새로운 시장이 활짝 열린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늘 그러하듯 혼다코리아의 대응은 호들갑스럽지 않다. 차분히 ‘뉴 파일럿’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파일럿은 첫 모델이 2003년 탄생했다. 팰리세이드로 인해 우리나라 시장에도 본격적인 대형 SUV 시대가 열렸다고 본다면 15년의 시차가 있다. 그 사이 파일럿은 2009년 2세대, 2015년 3세대 모델로 진화했다. 근래에는 북미에서 연간 10만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링 패밀리카가 됐다. 지난 연말 출시된 ‘뉴 파일럿’은 3세대 파일럿의 부분변경 모델이 되는 셈이다.
2가지 큰 특징이 있다. 9단 자동변속기 채택과 혼다 센싱의 기본 적용이다. 물론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을 바꾸고 인라인 타입의 풀 LED 헤드램프를 가미하기는 했지만 핵심 변화로 언급할 정도는 아니다. 혼다코리아가 ‘뉴 파일럿’의 마케팅 키워드를 ‘굿 대리’로 잡은 것을 보면 진화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아빠(daddy)’는 그대로 이지만 성격(‘good’)이 바뀌었다.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뚜렷이 다가온 ‘뉴 파일럿’의 특성도 ‘굿 대디’였다. 2015년 출시된 3세대 모델을 이미 경험한 터라, ‘뉴 파일럿’만의 감성을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단 변속기 채택이 주는 변화는 컸다. 
3세대 모델은 6단 변속기를 장착하고 있었다. 최대 출력 284마력을 내는 V6 3.5ℓ 직접분사식 i-VTEC 엔진은 토크도 상당해 최대 토크 36.2kg·m의 힘을 퍼 올린다. 여기에 연결된 6단 변속기는 가솔린 엔진이지만 디젤 엔진 같은 거친 숨결을 자아내는 맛이 있었다.
하지만 ‘뉴 파일럿’에 장착된 9단 변속기는 자상함은 충만했지만 거친 맛은 잃었다. 대형 SUV이지만 가솔린 엔진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극대화했다. 하긴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역할분담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아버지의 미덕을 엄함에서 찾으려다가는 자녀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기 딱 좋다.
디젤 SUV에 길들여져 있는 이들에게 9단 변속기를 단 대형 가솔린 SUV는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낯선 감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이내 부드러운 가속에 몸이 익숙해지면 나긋나긋한 운전 질감을 즐기게 된다. 더구나 이번 변속기는 레버 방식이 아닌 버튼 방식으로 돼 있다. 변속 레버로 재주를 부리며 우쭐함을 뽐내던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대신 패들시프트가 있으니 지레 실망할 바는 아니다. 
‘굿 대디’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변화는 혼다 센싱이다. 물론 이전 세대에서 이 기능은 있었지만 이번 마이너 체인지를 통해서 혼다 센싱은 더 견고해지고 보편화 됐다.
혼다 센싱(Honda Sensing)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회피를 유도하는 혼다의 최첨단 안전 시스템으로,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LKAS), 자동 감응식 정속 주행 장치(ACC),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CMBS), 도로 이탈 경감 시스템(RDM), 후측방 경보 시스템(BSI), 크로스 트래픽 모니터(CTM) 기능으로 구성된다. 개별 기능도 우수하지만 ‘혼다 센싱’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돼 작동하면 차의 안전성은 크게 높아진다.
혼다 센싱 자체도 후측방 경보 시스템(BSI)과 크로스 트래픽 모니터(CTM) 기능이 추가돼 완성도가 높아졌다. 혼다 센싱이 가동하는 상태에서 고속도로를 주행하면 운전자는 사실상의 반자율주행을 체득할 수 있다. 가족을 가장 안전하고 안락하게 이동시킬 책임이 있는 ‘굿 대디’에게 더 없이 좋은 기능이다.
다시 서두의 팰리세이드로 돌아가 보자. 팰리세이드의 가솔린 모델에는 295마력을 내는 3.8리터 V6 엔진이 실려 있다. 변속기는 자동 8단이 장착 돼 있고 트림은 3,475만 원짜리 익스클루시브와 4,030만 원짜리 프레스티지로 구성 된다. 프레스티지 트림은 총액 727만 뭔짜리 옵션을 운용하는데 풀 옵션을 선택할 경우 4,757만 원의 가격이 나온다.
혼다 ‘뉴 파일럿’은 8인승 모델 ‘파일럿’과 7인승 모델 ‘파일럿 엘리트’ 두 가지 트림으로 출시되며, ‘파일럿’ 트림이 5,490만 원(VAT포함), ‘파일럿 엘리트’ 트림이 5,950만원(VAT포함)이다. 엘리트 트림에는 실내 개방감을 향상시키는 글래스 루프, 앞 뒷좌석 승객이 차내 스피커로 대화할 수 있는 캐빈 토크, 운전석 조수석 통풍시트, ECM 아웃사이드 미러 등이 더 들어가 있다. 다소 가격차는 있지만 북미에서 누적 판매량 180만 대를 돌파한 신뢰성과 브랜드 프리미엄은 따로 계산하지 않았다. 구매자라면 충분히 고려할 사안이다.
오프로드를 대비한 사륜구동 시스템은 전지형 지형 관리 시스템으로 진화했는데, 일반, 눈길, 진흙길, 모랫길의 4가지 주행 모드 선택으로 사실상 모든 도로 사정에 대비하고 있는 점도 칭찬할만하다. 
공인 복합연비는 팰리세이드가 8.9~9.6 km/l이며 ‘뉴 파일럿’이 8.4km/L(도심 7.4km/L, 고속도로 10.0km/L)이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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