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좀비 애칭 감사해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선율이 들리면 좀비처럼 죽지 않고 계속 나타나는 남자. 로맨스 드라마를 서스펜스 장르로 만든 캐릭터. 대사 없이도 눈빛으로 모든 서사를 풀어낸 배우.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차형석 역을 맡은 배우 박훈의 이야기다.
박훈은 최근 강남구 모처에서 열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종영 기념 인터뷰 자리에서 “제가 워낙 선이 굵고 남자답게 생겨서 원래도 밤에 만나면 무서운 얼굴인데 이번에 칼 들고 계속 나오니 더 무서워하시더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차좀비 애칭까지 생겼는데 어필하고 있구나 많이 느낀다. 대중에게 저를 알리는 확장성이 넓혀졌구나 싶다. ‘태양의 후예’ 이후로 더 많은 젊은 분들이 알아봐 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비즈니스로 스페인 그라나다에 방문한 투자회사 대표 유진우(현빈 분)가 정희주(박신혜 분)가 운영하는 오래된 호스텔에 묵게 되면서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인’, ‘W’의 송재정 작가와 ‘비밀의 숲’의 안길호 PD가 호흡을 맞췄고 현빈과 박신혜의 러브라인으로 시작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특히 한국 드라마 최초로 증강현실 게임을 소재로 해 드라마 판을 넓혔다.
박훈은 “많은 부분이 CG라고 생각하시는데 대부분 실사였다. 제가 죽는 장면도 칼 들고 죽는 신도 그랬다. 매가 오는 것도 실사였다. 어디가 CG고 실사인지 밸런스를 제대로 구현했다. CG를 더 돋보이게 하는 실사였다. CG가 많을 수록 이질감이 생기는데 그 경계를 잘 활용한 대단한 감독님에게 반했다. 시청률 이외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된 듯하다. ‘드라마로 이걸 구현해? 그럼 다른 것도 할 수 있어’ 틀을 깬 것 같다. 우주 그 이상의 이야기도 누군가 도전하지 않을까? CG 퀄리티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유지한 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전제작 시스템이 정착되고 우리 작품 그 이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가 생기지 않았을까”라고 자랑했다.
이어 그는 “디지털, 디지로그, 아날로그 모두 공감하긴 힘든 것 같다. 우리 드라마가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했다. 전개가 느리다는 비판들도 제작진으로서 고민했을 듯하다. 하지만 아날로그 분들을 버리고 갈 수 없으니 커버하려고 천천히 설명하려다 보니 맹점이 생긴 것 같다. 이 작품이 시금석이 돼서 또 다른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 이 작품이 새로운 시도이고, 용기가 필요했다. 실패할 수도 있고, 부끄러울 수 있는데 저로서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작가님의 용기가 너무 멋있었다. 이런 새로운 시도라니. 내가 오히려 나이 들고 타성에 젖은 것 아닌가 반성했다. 놓치지 않고 가려고 했다. 결과물로 구현됐을 때 어느 세대까지 이해시킬 수 있나 고민하기도 했는데 어른들 세대에선 어려우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훈이 맡은 차형석은 유진우의 친구였지만 회사에서 갈라진 후 그의 전 아내와 결혼까지 하며 일생의 라이벌이 된 인물이다. 두 사람은 그라나다에서 정세주(찬열 분)가 만든 AR게임으로 대결을 펼쳤는데 게임에서 사망한 차형석이 유진우 앞에 계속 나타나 충격적인 전개를 이어갔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선율이 들리며 죽었던 모습 그대로 차형석이 등장해 시청자들은 박훈에게 ‘차좀비’라는 애칭을 선사했다.
그는 “죽은 상태 그대로 계속 연기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스태프들의 작품이다. 감사함이 크다. 제가 죽는 모습은 아주 잠깐이었는데 준비하는 과정에선 스태프들의 노력이 대단했다. 죽었던 모습 그대로 피를 연결해야 했고 의상이 한 벌 아니라 10벌 이상 계속 제작해서 갈아입었고 피도 그대로 묻혀야 했다. 제가 나오면 CG는 반드시 해야 되고 조명팀은 천둥번개를, 음향팀은 음악을, 소품팀은 비를 뿌려야 했다. 저한테는 스태프들에게 감사한 작품이다. 모두 그분들의 힘”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눈빛 그대로 계속하다가 달라진다는 걸 알아봐 주시는 게 감사했다. 처음에는 복수하려는 눈빛이었는데 죽음이 쌓였을 땐 친구에 대한 애증으로, 선명하진 않되 그러한 뉘앙스를 드리려고 노력했다. 형석의 사연이 밝혀졌을 땐 나중엔 불쌍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감정의 승화가 있었다. 죽은 캐릭터라 감독님에게 받은 디렉션을 대놓고 표현은 안 되더라도 변화가 있었으면 했다. 작가님도 시청자분들도 차형석의 눈빛이 달라져서 좋았다고 마음에 들어 해주셔서 다행이다”고 미소 지었다.
20일 방송된 마지막 회에서 유진우(현빈 분)는 정세주의 퀘스트를 깬 후 게임에 갇히고 말았다. 게임 속 엠마(박신혜 분)에게 천국의 열쇠를 건넨 후 삭제된 버그4로 가루가 됐다. 정세주는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정희주에게 “엠마가 진우를 칼로 찔러서 죽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진우에게 퀘스트도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처럼 마스터 인던을 만들어 그곳에 숨어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이 같은 열린 결말과 현빈-박신혜의 미완성 로맨스에 시청자들은 불만을 터뜨리기도.
박훈은 “3가지 반응을 예상했다. 기대를 많이 하신 분들은 실망하실 수도 있고, 생각을 미처 못하신 분들은 놀라움을 느낄 수도 있고 다음을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기대감으로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열린 결말이라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저 역시 대본을 보고 시즌2를 암시하나 싶기도 했는데 그건 아니더라. 자의적인 해석이 여럿 나올 수 있는 결말이라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애칭도 생기고 제 캐릭터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양면적인 색이 많은 사람인데 표현한 것 만큼 잘 이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 배우로서 의무나 책임감에 대해서 주신 사랑 만큼 더 생각해서 제가 해야하는 것에 집중하고 일희일비 하지 않고 제 길 갈 수 있게 애쓰겠다. 잘하면 지켜봐주시고 못하면 질책해 주시길. 이번에 주신 사랑이 너무 커서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시청자들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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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