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보내고 싶지 않아” 엄앵란, 남편·동료였던 故신성일 애도(종합)[Oh!쎈 현장]
OSEN 지민경 기자
발행 2018.11.06 15: 25

 1960년대 최고의 인기스타로 한국영화사의 족적을 남긴 고(故) 신성일이 유가족과 영화인들의 배웅 속 영면에 들었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치료에 집중해왔던 故신성일은 폐암 투병 중에도 굴하지 않고 각종 공식행사에 참석해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과 한 달 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은 것은 물론 최근까지 영화 ‘소확행(가제)’ 제작을 준비하는 등 열정을 보였으나 지난 4일 타계했다.
6일 오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故신성일의 영결식과 발인에는 엄앵란을 비롯한 유가족과 이덕화, 독고영재, 안성기, 김형일 등 각계각층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독고영재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영결식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추모영상을 통해 생전 고인이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 차례로 감상하며 故신성일을 추억했고 조사와 추도사를 낭독하며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었던 고인을 애도했다.
특히 유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를 전한 엄앵란은 “여러분 정말 감사하다. 이 아침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와주셔서 감사하다. 참 가만히 앉아서 사진을 보니까 참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떠나면서 나는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가 나보고 왜 안 우느냐고 하는데 울면 그 망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고 하더라. 마음이 아파서 억지로 지금 안 울고 있다. 이따가 집에 가서 밤에 실컷 울려고 한다. 우리가 참 희로애락도 많았지만 엉망진창으로 살았다. 여러분들도 부인들에게 잘 하셔라. 그러면 기쁨이 온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엄앵란은 앞서 빈소에서도 고 신성일에 대해 "고 신성일은 까무러쳐서 넘어가는 순간에도 영화만 생각했고, 죽어가면서도 영화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라며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며 “신성일은 '가정남자'가 아니라 '사회남자'였다. 일에 미쳐서 집안은 내게 맡겼고, 그래서 역할들을 소화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사회적이었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였다. 늘그막에 함께 재밌게 살려고 했는데 내 팔자가 이렇다. 하지만 존경할만해서 55년을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저승에서는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순두부 같은 사람 만나 구름 타고 재밌게 놀라”는 인사를 전하며 등 남편, 동료 배우로서 故 신성일을 추억한 바 있다.
이어진 발인에는 유가족과 여러 영화인들을 비롯해 많은 팬들이 함께 했다. 이덕화와 안성기 등이 운구를 맡았고 이덕화는 끝내 눈물을 훔치는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엄앵란 역시 침통한 모습으로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한편 고 신성일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국민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5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연으로 캐스팅됐고 1964년 당대 최고의 여배우 엄앵란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mk324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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