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신성일, 팬들 기도와 함께 끝내 하늘나라로 [Oh!쎈 레터]
OSEN 박소영 기자
발행 2018.11.04 09: 07

신성일, 그의 이름 세 글자가 많은 이들의 눈가에 이슬을 맺히게 하고 있다. 3일 저녁 위독을 넘어선 별세 소식부터 장례식장 예약 취소까지 폐암 투병중인 신성일을 둘러싸고 웃지못할 씁쓸한 해프닝까지 벌어진 뒤, 한국영화의 큰 별은 결국 지고 말았다.  
고인의 슬픈 소식이 전해진 4일 일찍부터 주요 포탈의 신성일 관련 기사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톱스타 신성일의 활동기를 조금이라도 같이했던 40대 이후 세대는 물론이고, 영화계 레전드로만 그의 이름을 들었던 10~30대들도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추모 물결에 합류했다.
1960~80 한국영화계를 풍미했던 신성일은 마지막까지 생사의 길을 오가며 투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인이 생전에 영화에 보여줬던 열정 이상으로 병마를 상대로 투혼을 발휘했다. 

전날 오후, 한 매체는 신성일이 폐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유족들은 강남의 한 병원에 빈소 예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유족들은 별세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빈소 예약도 취소했다. 밤 늦게까지 그의 이름을 두고 사망설과 위독설, 서울 병원으로의 이송설 등이 혼재했고 유족과 측근들 사이 말이 엇갈리는 혼선을 빚었다. 이는 고 신성일이 의료진도 힘들다고 한 상황에서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않았기에 벌어진 고인 최후의 영화였던 셈이다.  
지난해 7월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신성일은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폐에 5cm 이상 되는 암 덩어리가 있다. 3기 이상 되는 정도의 암 병기"라고 설명했다. 
여든이 넘은 신성일은 "적합한 수술을 하고 거기에 맞는 항암 요법을 잘하면 30~40% 회복률이 있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도 자신의 회복 가능성을 80% 이상이라고 잡았다. 스스로 이겨내겠다며 기적을 다짐했다. 
늘 당당한 행보를 걸었던 그이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한국영화를 빛낸 스타상 시상식에도 참석하며 공로상을 받은 뒤 암세포를 이겨내겠다고 했고, 지난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투병 중에도 영화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1937년생인 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잘생긴 외모와 중후한 목소리로 수많은 청춘 멜로영화의 주인공을 따냈다. '연산군', '눈물 젖은 두만강', '망부석',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등이 그것. 
2013년 배슬기와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을 찍으며 영화인으로 열정을 불태웠다. 그런 그이기에 끝까지 생의 의지를 놓지 않길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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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DB,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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