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인디살롱] 다린 ‘Stood’, 단언컨대 올해 인디앨범 톱5
OSEN 김관명 기자
발행 2018.10.11 13: 51

[OSEN=김관명기자] 하루에도 몇십곡씩 쏟아지는 음원 홍수 속에서 진짜 자신의 감성과 맞는 곡을 만나기는 의외로 어렵다. 더욱이 차트 진입곡을 ‘전체 재생’ 방식으로 소비하고, 팬덤에 의해 이 차트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냥저냥 휩쓸려 갈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들은 다린의 2번째 EP ‘Stood’는 눈이 번쩍 뜨일 만했다. 첫 곡 ‘무채색의 창가에’부터 그녀의 음색과 발성에 무장해제됐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섬세한 시선은 거의 순백에 가까웠다. 인디 앨범을 들을 때 간혹 안타까웠던 단조롭고 거친 사운드도 아니었다. 재즈 트리오가 가세한 4번째 트랙 ‘소란스러운 마음’이 결정적 증거다. 단언컨대, ‘Stood’는 올해 들은 인디앨범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만했다. 
= 반갑다. 이런 뮤지션이 언제부터 있었나 싶었다. 묻고 싶은 게 많다. 데뷔앨범이 지난해 9월26일 나왔고, 2번째 EP가 올해 9월26일에 나왔다. 

“사연이 있다.”
#1. 데뷔 EP ‘가을’ = 새벽빛, 니가 잠든 사이에 나는, 바닷가, 가을, 제목 없는 곡, 결국 사랑하는 것들은
#2. 2번째 EP ‘Stood’ = 무채색의 창가에, Stood, 등, 소란스러운 마음, Rubato
= 천천히 듣기로 하자. 우선 본인소개부터 해달라. 
“본명은 신소희다. 다린은 내가 18세 때 나에게 선물한 이름이다. 그리스어로 ‘값진 선물’(darin)이다. 삶의 부끄러움이 없을 때는 소희, 노래를 할 때는 다린을 쓴다. 대학을 안가기로 결심한 18세 때, 혼자 노래하고 목포에서 홍대로 올라와 버스킹을 할 때부터 다린이라는 이름을 썼다.”
= 소속사가 최근(8월1일) 바뀌었다. 
“혼자 앨범을 내려고 녹음하기 직전에 전 소속사를 만났다. 하지만 추구하는 방향이 서로 달랐다. 혼자서 하거나 아니면 회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친한 서자영이 있던 지금의 소속사(빌리빈뮤직) 대표님한테 제의가 왔다. 서자영은 내가 편곡을 2곡 해준 친구다. 대표님의 진심이 느껴졌다.”
= 지금까지 낸 EP와 싱글 크레딧을 보니 작사작곡은 물론 피아노와 기타도 쳤다. 
“피아노는 어렸을 때부터 10년 정도 쳤다. 예고에 진학하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안가고 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다 엄마가 드럼 전공인 동생한테 사준 기타가 부러워서 혼자 기타를 배웠다. 밤에 몰래 기타를 가져다가 내 방에서 소곤소곤 노래를 하며 기타를 쳤다. 그때 다린이라는 이름을 선물했고, 엄마에게 다시 음악을 하겠다고 말했다.”
= 데뷔 전부터 SNS에서 유명했다고 들었다. 
“18세 때 만든 ‘다린의 다락방’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커버영상을 올렸다. 고등학교 여자애가 혼자 올린 영상인데도 구독자수가 한때 8000명에 달했다. 덕분에 데뷔앨범을 만들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사실, 그 당시는 음악 말고 다른 걸 했어야 했나 어려웠던 시기다. 그 때마다 다린이 낙담한 소희를 위로해줬다.”
= 다린씨 음색이 좋다. 
“숨이 많이 들어간 목소리다. 어렸을 때는 컴플렉스였다. ‘쟤, 울고 있니?’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지금은 그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다.”
= ‘Stood’ 앨범 얘기를 해보자. 굳이 같은날 2번째 EP를 낸 이유가 있나. 
“지난해 9월26일, 친구가 사고로 죽었다. 공연기획을 전공한 친구였는데, 함께 만들자던 공연이 많았던 친구였는데, 데뷔 앨범에 실린 내 노래를 못듣고 죽었다. 그날은 ‘잃다’와 ‘얻다’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날이다. 다린으로서는 얻었고, 소희로서는 잃었다. 내 노래에는 모두 그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 모든 걸 지키는 행위 중 하나가 9월26일에 새 앨범을 내는 것이었다.”
= 아,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타이틀 ‘Stood’와도 관련이 있나. 
“지난해 9월26일은 다린에게는 생일 같은 날이다. 엄청 큰 걸 받았고, 동시에 떠나 보낸 날이다. 그 당시 내가 있었던 곳, 내가 봤던 것 때문에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것이다. 과거의 나를 타인처럼 마주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이 딱 그 때라 생각했다. 이제 모든 것을 다정하게 떠나보냈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을. 너무나 큰 욕심이었다. 곡 자체는 내가 태어나서 두번째로 썼던 곡이다.”
= 첫 곡부터 들어보자. ‘무채색의 창가에’, 참 좋다. 기타 소리까지. 
“재즈할 때 쓰는 할로우 바디의 일렉 기타다. 소리가 엄청 따뜻하다. 이 기타를 친 강건후는 19세 때부터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 자란 동네도 똑같다. 싱글 ‘134340’(3월9일) 때도 참여했다.”
= 어떻게 탄생한 곡인가.
#. ‘무채색의 창가에’ 가사 = 나의 무력한 풍경들 속에 너와 함께 누워서 가득 비어있는 눈동자에 목소릴 던지며 잃어버릴 준비를 하지 Run of a stumble is the way to you Cause you are gravity Rebound all my Already you know when i back down step Cause you are wave in me Dive again / 사랑을 말하려면 난 Stare has eyes like your embrace 모든 소리가 달아날 때까지 Run of a stumble is the way to you Cause you are gravity Rebound all my Already you know when i back down step Cause you are wave in me Dive again
“목포 본가 앞에 산이 있어 아침에 그 산을 보는데, 나무가 뾰족 솟은 게 아니라 들어간 것처럼 보이더라. 몸에 힘이 쏙 빠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제목은 집에 있던 ‘무채색의 창가에’라는 책 제목에서 가져왔다. 그 책이 있길래 빼보니 엄마가 태교일기에 붙인 이름이었다.”
= ‘Run of a stumble is the way to you’, 이 가사 뜻은 뭔가. 
“당신에게 가는 길이 혼란스러운 길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 모든 걸 바꿔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간다는 뜻이다. 지난 앨범에 등장한 사람들은 주저 앉아서 우울을 만끽했다면, 이번 앨범의 등장인물들은 그곳에 뭐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다. 동화속 주인공 같기도 하고, 용사 같기도 한 그 순수함이 멋있다. 예전 서태지의 ‘소격동’ 뮤직비디오를 많이 봤는데, 쓸쓸하지만 행복한 그 순수함이 멋있다.”
= ‘Stood’에 나오는 ‘하얀 손목에 핀 라일락은’, 이는 무슨 뜻인가.
“핏줄이다. 새벽에 보니 손목의 동맥색깔이 라일락 같더라. 다정하게 관찰하는 것, 이게 내 음악 특성이다. 이 가사를 듣자마자 알아챈 팬들도 있다.”
= ‘등’은 어떤 곡인가. 
“이 곡의 화자는 이번 앨범에서 유일하게 화를 낸다. ‘그대는 아름다운 거짓말만 남겨두고 떠났네, 그리워할 수밖에 없게 하고 떠났네’ 후렴구 가사는 똑같지만, 1,2,3절 내 태도가 다 다르다. 마지막 후렴에서 진짜로 울면서 불렀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 ‘소란스러운 마음’은 사운드적으로 가장 풍성하다. 
“지금 들리는 피아노는 암스텔담에 있는 친한 동생이 쳤다. 얼마 전 한국에 왔을 때 꼬셔서 녹음을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아예 자기 팀을 데리고 왔다. 피아노와 드럼, 베이스로 이뤄진 임채린 트리오다. 너무 잘 하더라. 곡은 이별하기 바로 직전의 심정을 담았는데, 비오는 날 상수동 제비다방에서 썼다. 무던하고 지루하고 감흥이 없던 날이었다. 심지어 공연을 보는데도 그렇더라. 누군가랑 이별을 결심할 때는 바로 이럴 때구나 싶더라. 마침 옆의 커플이 싸우길래 그 모습을 보고 썼다.”
= 마지막 트랙 ‘Rubato’에도 다린의 장점이 잘 부각됐다. 
“‘루바토’는 ‘연주자 마음대로’라는 클래식음악 용어다. 이 곡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서 썼다. 용이었던 하쿠가 자신이 강의 신이었음을 알게 된 후 치히로와 하늘에서 낙하하는 그 장면을 보고 썼다.”
= 그런데 왜 제목이 ‘루바토’인가. 
“후렴 가사에 보면 ‘그대는 나의 루바토’라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 사랑에서는 우리가 연주자니까, 겁내지 말고 도전해보자, 이런 뜻이다. 센과 하쿠가 떨어질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베이시스트 에스페란자 스팔딩의 노래에 ‘Fall In’이 있는데, 그 가사에도 ‘우리가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 영혼은 바닥에 닿지 않을테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 두고두고 들을 만한 앨범이 탄생한 것 같다. 올햬 계획 잡힌 게 있나. 그리고 앞으로 어떤 뮤지션으로 살 것인가. 
“11, 12월에 단독공연이 있다. 그리고 겨울에 겨울노래를 담은 싱글을 낼 것 같다. 향수 같은 사람, 솔직한 사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면 좋겠다. 함께 견뎌낼 수 있는 다린의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 수고하셨다. 늘 성원하겠다. 
“수고하셨다.”
/ kimkwmy@naver.com
사진제공=빌리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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