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은지의 행보는 항상 궁금함의 연속이다. '악녀'에서는 독기를 품은 액션을 선보였고, '살인소설'에서는 안하무인 갑질녀로 한층 물오른 연기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2박 3일'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감독으로 2관왕을 차지하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모든 발걸음이 흥미로운 배우 조은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영화 '빵꾸'(하윤재 감독)에서는 경상남도 사천의 한 조용한 마을에 사는 촌부로 분했다.
'빵꾸'는 시골의 한 국도변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재구(박용우)와 순영(조은지)에게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박용우가 서울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다 아내의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카센터 사장 재구 역을, 조은지가 가난한 남편 때문에 친정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아내 순영 역을 맡았다.
순영과 재구가 운영하는 카센터는 리조트 공사현장으로 가는 작은 국도변에 위치해 있다. 청년회장으로 동네를 꽉 잡고 있는 라이벌 카센터 문사장(현봉식) 때문에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어느 날 공사현장으로 가던 덤프트럭이 떨어뜨린 금속 조각에 펑크난 차량을 고치며 오랜만에 돈을 만지게 된 두 사람은 직접 금속조각을 바닥에 버리는 위험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극 중에서 조은지가 연기하는 순영은 거침없이 욕망을 향해 '엑셀레이터'를 밟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조은지는 자신이 맡은 순영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막다른 길에 왔다. 서울에서 실패를 하고 내려와서 친정에 얹혀 살다시피 하다 친정마저도 등져버렸다. 그러다 위험한 길을 알게 되고, 그 길조차 막다른 길로 만들지 않으려는 욕망이 있는 인물"이라며 "누군가에게는 내가 실패자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은데, 그 선택이 어떻게 보면 돈인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조은지와 박용우는 부부를 연기하며 차진 연기 호흡을 선보인다. 조은지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그림대로 작품이 완성된 것 같다"며 "선배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이다.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게 많이 도와주셨다. 좋은 파트너이자, 고마운 파트너다"라고 말했다.
잘못된 욕망을 시작한 재구. 그 욕망을 함께 하다 오히려 앞서가는 순영. 비난받아 마땅한 두 인물을 마냥 미워하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박용우와 조은지가 만들어낸 설득력 때문일 터다. 조은지는 "사람들은 재밌게 보고 웃었던 장면이지만 저는 재구가 차키를 가지고 삑삑거리는 모습에 마음이 동요가 되더라.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장면이고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지만 저한테는 정말 슬픈 장면이었다"며 "이들이 차에 빵꾸를 내면서 우연한 일들에 의해 삶이 달라지고, 그 달라진 삶을 만끽하고 있는 것 자체가 두 사람은 행복해 보이지만 보는 사람은 슬프지 않나. 저 역시 응원도 할 수 없고 질타도 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빵꾸'의 하이라이트는 순영과 재구의 몸싸움이다. 시나리오상에서 '개싸움'으로 표현된 장면은 가이드 정도만을 가지고 박용우와 조은지가 만들어낸 명장면이다. 조은지는 "시나리오상에서 그냥 '개싸움'이라고 표현돼 있었다. 현장에 세팅만 돼 있고 동선이나 대사 정도가 가이드로 있었다. 박용우 선배가 '마음대로, 편하게 때려라'고 해서 정말 편하게 때렸다. 박용우 선배님이 많이 맞았다"고 웃었다.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배우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는 조은지. 그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걱정하게 하는 것도 모두 연기다.
"여배우로서 자리가 좁아지는 것에 있어서는 아쉬움도 있고, 두려움도 있죠. 물론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의 두려움도 크고요. 걱정거리가 생길 때는 포기하지 않는 게 극복하는 방법이에요. 사실 어떤 방법으로도 극복이 잘 되지 않아요. 다만 마음을 추스리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극복인 거죠. 카메라 앞에 서야만 그런 마음들이 극복이 돼요."
배우로서도 충분히 빛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감독으로도 오롯이 빛나는 조은지. 감독으로서 곧 만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계획이 없다. 아직 써둔 작품이 구체적으로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손사래쳤다. 그러나 여전히 조은지의 내일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조은지가 명징하게 보여주고 증명하고 있는 오늘, 지금 때문이다. /mar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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