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상)정운찬 KBO 총재, “2019시즌 개막 전 일본과 올스타전 추진 중”

[특별 인터뷰](상)정운찬 KBO 총재,...


2018년 1월 1일에 제 22대 한국야구위원회(KBO) 커미셔너로 부임했던 정운찬(71) 전 서울대 총장이 지난 4월 10일로 임기를 시작한 지 100일이 지났다. 구태여 ‘100’이라는 시간을 앞세운 것은 정운찬 총재가 취임 일성으로 주창했던 ‘한국프로야구 산업화’와 ‘클린베이스볼(깨끗한 야구)’의 추진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는지 이 시점에서 가늠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정 총재가 야구 식견과 구상을 피력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듣고 싶었다.

정 총재는 취임 이후 미국과 일본, 호주, 대만 커미셔너를 만나고 10개구단의 해외 스프링 트레이닝 지를 일일이 찾아가 현장 지도자, 구단관계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등 한국 프로야구의 바람직한 진로 탐색에 주안점을 둔 행보를 보여왔다. 프로야구의 중장기 로드맵을 그리기 위한 그의 행보는, 해법(解法)을 찾기 위한 ‘탐방(探訪)’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4월 9일, 서울 역삼동 야구회관 5층 총재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OSEN과의 인터뷰는 1시간 남짓 진행됐다. 정운찬 총재의 인터뷰를 두 차례로 나누어 낸다. 사전에 보낸 질문지에는 ‘infra’, ‘기량, 특히 투저타고’, ‘business’, ‘협력’, ‘배려’, ‘speed up’ 등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가 추구하는 야구의 방향성을 짐작해볼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헤아려보니 4월10일이 취임 100일째였다.

“뭐 생일이다 100일이다 3년이다, 한 번도 따져본 일 없어서 생소합니다만 벌써 100일이 됐네요.”

-1982년에 출범했던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았고, 2021년이면 40년이 된다. 마흔이면 불혹(不惑)인데, 과연 불혹에 걸맞은 위상이 정립됐는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태어난지 만 36세가 됐는데 프로야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데, 좋은 서비스, 좋은 상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느냐 누가 물어본다면 자신이 없다. ‘투저타고’ 현상을 바꾸어야하겠는데. 투수는 기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데 타자들은 더욱 세지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미국에 비해서 우리 스트라이크존이 좁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메이저리그도 정답이 없이 투, 타가 조화를 이루어왔던 역사인데, 스트라이크존을 넓힌다는 데 대해 심판들이 부담을 갖는 듯하다. 방송에서 낱낱이 보여주니까 ‘저런 공을 스트라이크로 주느냐’는 (지적을 받게 돼). 심판들이 마음 놓고 존을 넓혀 봤으면 한다.

-메이저리그도 ‘투고타저’나 ‘타고투저’ 현상이 심화되면 스트라이크존의 미세조정으로 흐름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부터 (존 확대를)하려고 했지만 비판이 있는데다 (심판들의)습관도 고치기 힘들다. 심각한 고민을 해야한다.”

-‘타고투저’가 반드시 경기의 질적저하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 않나.

“우선 홈런을 치면 세리머니 시간 포함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경기시간이 늘어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야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댓 시간 걸리면 어떠냐’고 하시겠지만, 시대의 흐름으론 시간의 가치가 점점 커지는데, 한국은 지난해 경기당 평균시간이 3시간 21분이었다. 미국(3시간 5분)보다 16분이나 더 걸렸다. 메이저리그는 ‘스피드업’에 관심이 굉장히 많다. 야구를 정말 좋아해서 5시간도 괜찮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게 무슨 핸드볼이냐’라는 비판도 있지 않은가.”

-그것과 연관지어 ‘클린베이스볼’의 일환으로 비디오판독 시간을 5분으로 제한하고 고의사구제 등을 채택했다. 메이저리그 쫓아가는 셈인데, 개막 전에 미국과 일본 커미셔너를 만나고, 각 구단의 스프링 트레이닝 지도 돌아보고 오셨다. 연극에 비유한 기사도 본 적이 있지만, 밖과 안의 차이는 무엇인가.

“미국 유학할 때도 그렇고, (교수)안식년으로 갔을 때 야구장 가끔 찾아갔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펜웨이 파크나 양키스 구장(대학원 시절)도 가보고. 2008년 안식년 때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템파베이 레이스의 월드시리즈도 직접 봤다. 2012년에는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렸던 블루제이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에 앞서 시구도 해봤다. 플로리다의 마이너리그 구장 스프링 캠프도 가봤는데, 그 때마다 느낀 것은 우리의 인프라가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번에 뉴욕 메츠 신구장 시티필드를 가보니, 크고 아름답고, 야구장의 내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무실이나 중계실이 너무 좋았다. 우리는 잠실구장만 해도 화장실 냄새도 나고, 미국을 따라가려면 20년, 30년 걸릴까, 부러웠다.


엠엘비(MLB) 사무국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와 만나서는 주로 스피드업과 교류협력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맨프레드는 경기 시간이 너무 걸려 관중을 뺏길 우려가 있다면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시간을 줄여야 하겠는데, 사실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우선 룰을 고쳐야하고 현장에서 감독이나 선수가 그 룰을 따라와야 하는데, 비디오판독 2분 제한이나 주자 없을 때 투구시간 12초 이내 제한이나 고의사구 등을 철저히 적용하려고 한다.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한 말은 다 계산이 있겠지만, 앞으로 중국에 진출할 때 ‘한국과 서로 협조하고 같이 하자’는 말에서 야구 국제화, 세계화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엘에이(LA)로 가서 피터 오말리 전 다저스 구단주를 박찬호와 함께 만났는데, 오말리가 ‘적어도 일년에 한두 번은 맨프레드를 만나라(Once or twice at least. The more the better). 그러면 절대 손해가 없다.’는 권유를 받았다. 어떤 의도였던지 간에 한-미간 야구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일 게다.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자 마자 오말리가 ‘당신 취임식 기사를 봤다’며 ‘ 그 취임식이 나에게는 아주 슬픈 날이었다.’고 말해 좀 의아했다. 오말리가 연합뉴스 영문판 뉴스에 나온 취임식 관련 기사에서 경향신문 이용균 기자의 ‘일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야구게임 3가지’ 질문에 대해 ‘1977년 다저스와 양키스의 월드시리즈에서 레지 잭슨이 5, 6차전에서 4타석 연속 홈런으로 양키스가 이긴 게임이 인상적’이라는 답변을 했는데, 오말리가 그것을 얘기한 것이다.

놀라운 일은 오말리가 미리 레지 잭슨한테 연락해서 사인볼을 받아 놓은 것이다. 그 사인볼에는 레지 잭슨 이름과 등번호 44번, 내 이름까지 서명해 놓았다. 그 공을 받아들고 ‘미국 사람들이 남에 대한 배려가 대단하구나’하고 느꼈다.

맨프레드에게 ‘우리도 미국처럼 야구단이 독립기업이 됐으면 좋겠는데, 결국 그렇게 만들도록 우리는 노력할 것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KBO가 용역도 주고, 컨설팅도 할 텐데 앞으로 MLB에서 과거에 수지 맞는 기업으로 만든 경험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각국 사정이 다르겠지만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시즌 후 한-미야구 교류전을 추진하다가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저쪽에서 개런티(보증금)를 요구해 (스폰서를)못 구해 안 됐다.

-이상적으로는 했으면 좋은데, 현실적으론 금전 문제가 걸림돌이 되겠다.

“(맨프레드를 만났을 때) 지난해 실패했지만 (개런티 문제를 상기시키지 않고) 한-미 교류전을 하자고 하자 ‘좋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웃었을 지도 모르겠다. 일본 나고야에 가서 호주와 일본 대표팀 경기를 봤는데, 일본 사이토 커미셔너(또는 NPB 국제부장)가 한국과 야구 교류전을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와 관련해서 얼마전 NPB 국제부장이 방한해 “내년 시즌 전에 일본에서 두 게임 정도 경기를 갖자”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올스타전이나 그와 비슷하게 될텐데, 아무래도 그 문제는 이사회에 물어봐야 한다. 다음 이사회 안건으로 올릴 것이다.


-1991년부터 4년마다 3차례 열렸던 한-일 슈퍼게임이 한국야구 발전에 기여했다고 본다. 미국 메이저리그 선발팀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온 것이 1922년인데,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의 초청으로 일본 선발팀과 경기를 해온 메이저리그 선발팀을 부르는 방법도 있겠는데, 이제는 한-미 교류전도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1958년에 방한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경기가 생각난다. 당시 스탠 뮤지얼이 우리 김양중 투수한테 삼진을 당한 기억도 있고,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그물망을 뚫고 시구를 하던 장면도 봤다. 국제 교류전은 필요하다. 자꾸 만나야지 발전하는 것이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가 한국야구를 한 단계 올려 놓았다. 실력도 위상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야구팀이 9전 전승을 올려 우승한 뒤 일본도 그전에는 ‘글쎄’했겠지만 한국야구를 다시 보게 됐다. 3, 4회 WBC 성적이 저조해서 안타까웠지만 앞으로 선동렬 감독이 잘 할 것으로 본다.”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 지형준 기자, KB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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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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