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커피 한 잔①] 이병헌 감독 “이성민·신하균, 장르 불문 검증된 배우들”
OSEN 지민경 기자
발행 2018.04.11 09: 15

지난 2015년 첫 장편 상업영화 ‘스물’로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이병헌 감독이 자신의 전매특허 코미디 영화로 돌아왔다.
이병헌 감독의 3년만의 복귀작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은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바람의 전설 석근(이성민 분)과 뒤늦게 바람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매제 봉수(신하균 분), 그리고 SNS와 사랑에 빠진 봉수의 아내 미영(송지효 분) 앞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제니(이엘 분)가 나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꼬이게 되는 상황을 그린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
체코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바람이라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를 이병헌 감독 특유의 대사맛과 배우들의 귀여운 연기로 순화시킨다. 이병헌 감독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내가 할 수 있는 영화라고 처음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편하게 봤던 거고. 그런데 제작사 대표님의 끈질긴 설득에 한 번 더 봤다. 그 때 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나. 저를 설득시켜야 했다. 두 번째 봤을 때 그걸 찾았다. 말도 안 되는 원작의 엔딩을 바꾸고 싶었다. 원작은 상황을 따라가는 코미디였기 때문에 나는 감정을 따라가야지 싶었다. 궁금증, 모험 같기도 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그런 것도 생겼고 엔딩도 바꿔보고 싶었다. 원작의 마지막 엔딩장면이 나쁘게 말하면 막장이지만 공허함이 느껴졌다. 거기에 맞춰서 풀어간다면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작업을 하면서 점점 욕심이 생긴 것 같다. 그만큼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어른들의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는 ‘바람 바람 바람’이지만 실제 영화 속에는 그다지 자극적인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수위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는 말에 이 감독은 “일단 접근 자체가 그런 부담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것을 애써 감추고 불륜의 수위를 조절해서 간다면 이야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 그 쪽에는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감정에 치중했던 것 같다. 부정적인 소재를 코미디로 다룬 다는 것에 대한 부담에 대해서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원작에는 노출도 꽤 있고 과감한 편인데 그런 걸 생각해서 노출 씬을 뺀 건 아니다. 상황이 아니라 감정을 쫓아가다보니까 각색을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 갔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간걸 시각적인 것에 빼앗길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투자자들께서 노출도 있고 섹스코미디로서의 템포, 리듬, 뉘앙스로 생각하셨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닌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의견 충돌이 있었다. 제 생각은 시각적인, 자극적인 것에 내가 만든 감정을 빼앗기기 싫었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 중 하나는 개성 넘치는 네 배우들의 연기 호흡. 이 감독은 모두 다 원하는 캐스팅이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그는 “이성민 씨도 그렇고 신하균 씨도 그렇고 이 캐릭터에 어울리겠다 싶어서 캐스팅한 게 아니라 그 배우 자체가 캐릭터 불문이고 장르 불문이고 너무 검증된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디테일적으로 생각하면 이성민 선배의 목소리나 대사 톤이 너무 좋으시다. 신뢰감과 장난기가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바람기 있는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실제 바람둥이 들이 그렇게 미남은 아니더라.(웃음) 초반에는 배우들이 제 디렉션을 어려워했는데 새로움을 느끼신 것 같다. 대사가 중요한 영화에서 제가 의도하고 캐치하려는 것은 예상에서 조금 벗어난 것들이다. 배우 분들은 상황에 맞는 감정에 맞는 연기를 딱딱해주신다. 베테랑 연기자들이 얼마나 잘하시겠나. 그런데 저는 와서 살짝 다른 소리를 한다. 그건 사실 정확하지만 예측이 가능하다고. 우리 같은 대사와 타이밍, 이런 것들이 중요한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예측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작은 디테일한 차이가 있는데 아주 달라서는 안되겠지만 저기서는 왜 저런 표정이 나오지 왜 저런 리액션이 나오지 하면서 그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궁금해야 다음 씬도 궁금하고 영화를 계속 보게 된다. 기술적으로 화려함이 없는 영화에서 그런 것들이 기술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요구들을 하다 보니까 초반에 살짝 어려워하셨는데 금방 이해해 주시고 이성민 선배는 1회 차에 알겠다고 하셨다. 재미있어 하셨다. 나중에는 연기가 딱딱 나오니까 재미있었다.”
영화에서 특히 돋보이는 캐릭터는 이엘이 연기한 제니다. 영화 속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이지만 이엘만의 신비스러운 이미지와 어우러져 큰 시너지 효과를 냈다.
“정말 어렵다 그 캐릭터가. 제니라는 캐릭터가 이엘 씨만 괴롭힌 것이 아니라. 저는 각색 때부터 편집할 때까지 제니한테 정말 많이 시달렸다. 가장 많이 신경 쓴 캐릭터다. 구차하게 많은 설명이 되어선 안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비밀스러움도 있어야 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너무 체코 원작에서처럼 쿨하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전사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이 행동을 하기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너무 보여줘서도 안되고 어느 정도 선 안에서 보여주고 타협해야 할지 그 캐릭터와 저와의 싸움이었다. 지지 않으려고 제니의 일기를 썼다. 다 정해놨다.”
“굉장히 복잡하고 대사 한마디 미묘한 차이로도 감정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어려운 캐릭터라서 다른 배우분들에게는 회차가 쌓이면서 디렉션을 많이 안하게 되었는데 제니는 끝까지 매달렸다. 배우가 문제가 아니라 제가 틀린 경우도 있고 현장에서 보면 이상해서 또 고치고 수정하고 이엘 씨가 정말 대단한 게 그걸 매번 매 테이크 마다 바꾼다는 게 기술적으로 어마어마한 내공이 필요한 건데 다 하시더라. 배우 덕분에 어려웠지만 수월했다.” /mk3244@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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