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 만난 사람들] '독립구단 창단' 이상일 야구학교장이 꿈꾸는 '기틀'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11.09 06: 45

34년간 머물렀던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이유는 하나. '야구의 기틀을 닦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 KBO사무총장인 이상일 야구학교장의 이야기다.
KBO리그 공식 기록업체 '스포츠투아이'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성남시에 야구학교를 열었다. 기록을 담당하는 스포츠투아이였기에 당시만 해도 의아함이 따르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유소년·엘리트·사회인을 아우르는 야구 아카데미를 표방한 야구학교는 그 의아함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다. 총 700평 규모의 넓은 실내훈련장 위에 메이저리그(MLB)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장비와 훈련 시설을 그대로 구현했다. 특히 스포츠투아이가 보유 중인 PTS/HTS(투구/타구 추적시스템)을 활용해 최고의 훈련 성과를 보장했다. 야구학교를 찾은 이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도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야구 아카데미의 고급 버전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야구학교는 야구의 틀을 바꾸고자 한다. 이상일 교장의 의지가 담긴 방향이다.
이상일 교장은 1983년 KBO에 입사했다. 운영부장, 홍보실장, 사무총장 등을 거치며 2016년까지 34년간 몸담았다. 이상일 교장도 "요즘도 종종 출근길에 KBO 사무실 쪽으로 핸들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라며 입을 열었다.
'내 삶에서 KBO를 빼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이 교장의 KBO 재직 시절 철학이었다. 그런 그가 KBO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나라 야구의 기틀을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상일 교장이 '기틀의 허술함'을 느낀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야구 최고의 순간이었다. 2008베이징올림픽 쿠바와 결승전 9회 1사 만루. 율리에스키 구리엘의 타구가 박진만에서 고영민을 거쳐 이승엽의 미트에 닿는 순간, 그는 아찔함을 느꼈다. 이 교장은 "처음 1분은 하늘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내 '과연 이 성과가 한국야구 수준인 걸까? 우리가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베이징올림픽 이후 지금까지도 KBO리그에는 괴물급 선수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반대로 일본은 오타니 쇼헤이를 중심으로 괴물 신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프라'에서 미국은 물론 일본과 견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KBO 소속으로 프리미어12 대회를 지켜본 이상일 교장은 결국 34년간 다닌 직장을 박차고 야구학교 설립에 참여했다. 이 교장은 "KBO 밖에서도 야구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야구학교는 야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 첫 걸음은 리틀야구단 창단이었다. 중·고교팀 창단도 계획 중이지만 구장 등 요건이 까다로워 잠시 보류 중인 상황. 야구학교의 시선은 독립야구로 향했다. 야구학교는 지난달 '블루팬더스'라는 이름의 독립구단 창단 소식을 알렸다. 오는 10일부터 이틀간 성남 탄천야구장에서 독립구단 선수 트라이아웃을 진행한다.
독립야구단 창단 취지는 분명하다. 학창시절 내내 야구만 해온 이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자는 것. 이 교장은 "고3 수험생들은 대학 입시에 낙방하면 재수를 한다. 취업 준비생들은 숱한 탈락을 거친 뒤 합격한다. 반면, 야구선수들의 기회는 극도로 한정적이다. 고등학생 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면 대학이라는 한 번의 기회만 있다. 대학 졸업 때도 프로의 부름이 없으면 그들의 길은 막막해진다"라고 강조했다.
이상일 교장은 "이번 트라이아웃에 30명의 참가 신청이 들어왔다"라고 기뻐한 뒤 "최대한 프로팀과 많은 경기를 치르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프로 구단의 눈에 우리 선수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라며 미소지었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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