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4년·금융권 취직, 그러나…격투기로 우울증 극복한 늦깎이 킥복서
OSEN 우충원 기자
발행 2017.05.20 08: 25

종합격투가 중엔 말 못 할 사연을 지닌 선수들이 적지 않다. 다들 생활고에 지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종착점은 언제나 케이지 위다. 정든, 마약과도 같은 이 곳을 한 번 발 들인 파이터는 절대 떠나지 못한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최제이(30, 코리안탑팀/㈜성안세이브)는 정반대의 케이스다. 종합격투기를 전혀 몰랐으나 몸 관리를 위해 이 운동을 알게 됐고, 지금까지 이어나가고 있다. 꾸준한 노력 끝에 오는 6월 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리는 'TFC 드림 3'에서 장한솔(25, 노은 주짓수)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른다. 둘 간의 경기는 여성부 아톰급(-48.1kg)매치로 진행된다.
최제이는 산전수전을 겪은 후 뒤늦게 종합격투기에 입문했다. 초등학생 시절 1년,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미국 버지니아에서 유학한 그녀는 숙명여대 인문학부 졸업 후 금융 관련 직종에 취직했으나 과로로 인해 병을 앓게 되면서 일을 그만뒀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원래 살이 찌는 편은 아니었으나 건강 악화로 39kg까지 체중이 줄더라. 회식이 잦았고, 유럽과 미국 주식을 봐야 해서 밤낮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급성 신장염을 앓게 됐다. 40도의 고열로 응급실에 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오전 5시 반에 기상했고, 퇴근은 보통 오후 8시 이후였다. 야근일 경우 자정까지 일하기도 한다. 결국 신체 이상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한동안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건강관리를 위해 크로스핏을 시작, 무에타이를 배우며 몸을 가꿔나갔다. 이후 지인의 추천으로 코리안탑팀에 발을 들였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 시작한 게 크로스핏이다. 그때부터 몸무게를 올리고 병원에 가서 단백질도 보충 받았다. 건강 찾는 걸 목표로 운동하다가 킥복싱이 재밌어보여서 3년 전 무에타이 체육관을 찾았다. 여차저차 선생님들의 소개로 코리안탑팀에 온 지는 1년 정도 됐다.
당시 대표님들은 한 달은 고사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도망칠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근데 어떻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팀의 일원이 돼있더라(웃음). 아이들도 강인해보이지만 다들 순수하고 성품이 곧다. 주장 (김)두환이는 물론 막내들에게 특히 더 고맙다. 사실 내가 제일 막내다. 나이만 먹었지, 경험이 전혀 없지 않나. 남들보다 훨씬 처짐에도 불구하고 누나 대접을 잘해준다. 너무 고맙다"
최제이의 TFC아마리그 전적은 2전 2패다. 평소체중이 49kg이지만 선수가 없어 매번 52kg급 경기에 출전했다. 상대적으로 큰 선수들에게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상대 장한솔은 프라이드 오브 주짓수와 플레이주짓수컵에서 경험을 쌓았고, 청주 생활 체육배에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TFC 아마리그에서 2전 전승을 따냈다. 허송복을 상대로 암바승을 거둔 바 있다.
"스튜디오 촬영 때 먼저 인사를 건넸더니 밝게 잘 받아주셨다. 장한솔은 주짓수에 능하고 난 그라운드에 취약하다.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상대하기 힘든 타입이다. 붙으면 떼어내기 힘들겠지만 TFC 라이트급 톱컨텐더 홍성찬의 비밀 P.T를 받고 있어서 괜찮다(웃음). 비장의 무기들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
최제이는 늦은 나이에 데뷔하는 만큼, 많은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지고 있는 만큼 죽을 각오로 경기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나이가 적지 않다보니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기회를 주신 두 대표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첫 경기가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단 생각을 항상 해왔다. 장한솔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물론 도와준 팀원들을 위해 반드시 이기겠다"
최제이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나 아버지 직업 사정 상 본명이 아닌 미국 이름인 최제이로 케이지에 오른다.
"치고받는 찰나의 순간이 가장 마음이 편해지더라. 보통 여성부는 지루하다고 늘 얘기하는데, 나의 경기는 그렇기 않도록 최대한 화끈한 싸움을 보여드리겠다. 대표님들의 부응에 최대한 보답하고 싶다. 미래의 일 역시 이 운동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직 너무 병아리다. 한 스텝씩 천천히 전진하겠다. 나중 일은 다음에"
한편 'TFC 드림 3'에는 여성부매치가 네 경기나 포진돼있다. '케이지 김연아' 서지연과 킥복싱 챔피언 출신의 허송복이 만나고, '제2의 김지연'을 꿈꾸는 최정윤과 이영주가 맞붙는다. 태권도의 권혜린과 주짓수의 박연화가 스타일 대결을 벌인다. 모든 여성 선수들의 경기 준비 영상은 다음 주에 공개된다.
TFC 넘버시리즈와 아마추어-세미프로리그를 잇는 정식 프로대회인 TFC 드림은 넘버링 이벤트와 동일한 룰로 진행된다. 5분 3라운드를 기본으로 하며, 언더카드는 5분 2라운드(연장 1라운드)로 진행된다. 오후 2시부터 첫 경기가 시작된다. /10bird@osen.co.kr
[사진] TF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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