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최지만, 왜 하필 스모였나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6.09.28 08: 38

2016추석장사씨름대회 둘째 날인 지난 9월 14일 오후 2시께, 이준희(59), 이봉걸(59), 이만기(54), 이승삼(55), 이태현(40) 등 왕년의 씨름 장사들이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합동 팬 사인회를 열었다. 이준희, 이봉걸, 이만기는 민속씨름이 프로화 기치를 내걸고 융성했던 1980~1990년대에 이른바 ‘모래판의 3이(李)’로 천하장사를 지냈던 명 씨름꾼들이다.
이 사인회는 통합씨름협회가 예전에 모래판을 주름잡았던 이들을 앞장세워 씨름의 인기를 되살려 보려는 ‘추억을 파는’ 행사였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씁쓸한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오죽했으면 현역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이 흘러간 옛 장사들을 불러 모아 한 자리에서 팬들과 만나도록 했을까. 그 장면은 쇠락한 씨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9월 중순 이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구단별로 ‘신입선수 신고식’인 이른바 ‘루키 헤이징(Rookie Hazing)’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져 재미난 복장과 눈길 끄는 차림새로 팬들의 웃음과 공감을 자아냈다.

루키 헤이징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경우 1996년에 새 양복이 갈기갈기 찢기는 아주 과격한 신고식을 치렀다. 당시 박찬호는 루키 헤이징의 전통을 이해하지 못해 자신의 양복 훼손에 심한 거부감을 보이며 반발하는 웃지 못 할 소동도 있었다.
올해 메이저리그로 새로 진출했던 한국인 선수들도 그 대열에 동참해 최지만(25. LA 에인절스)은 19일(이하 한국시간), 오승환(3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22일(이하 한국시간), 김현수(28. 볼티모 오리올스)는 27일에 통과의례를 치렀다.
공개된 이들의 의상을 보면, 최지만은 일본 씨름인 스모선수, 오승환은 만화 슈퍼마리오의 루이지, 김현수는 텔레토비 뚜비로 변신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루키 헤이징에서 오승환과 최지만의 변신이 하필이면 일본의 전통이나 문화와 연관된 분장이어서 그네들의 관례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꺼림칙하다. 오승환이 분장한 슈퍼마리오의 루이지는 일본 닌텐도사가 개발한 만화 캐릭터이고, 최지만이 입었던 뒤뚱거리는 비대한 차림새는 일본의 전통 민속경기 스모선수였다.
그 같은 루키 헤이징의 분장은 거부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관례라고는 하지만 특히 최지만이 분장한 스모선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네 씨름이 처한 서글픈 현실과도 겹쳐 불쾌한 인상을 자아냈다.
스모는 스시(초밥), 가부키(일본전통민속극)와 더불어 일본이 3대 문화상품으로 꼽는 일본의 국기(國技)이다. 일본 정부가 거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해외 보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지난 2002년에는 8· 15 해방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도 상륙, 두 차례나 공연을 갖기도 했다.
아직도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의 아픈 과거사로 인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이 많고 역사 정리도 되지 않은 마당이어서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터였다. 최지만의 스모선수 차림은 LA 에인절스의 주축 타자 마이크 트라웃과 선발 제러드 위버의 아이디어로 전해졌다. 최지만은 자신이 한국선수임을 상기시키면서 거부감을 보였지만 그대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승환과 최지만은 일본식 분장을 하고 웃음을 머금은 채 별 생각 없이 그 시간을 흘려보냈을지 모르겠지만 그저 가볍게 웃고 지나치기에는, 메이저리그 구단이나 선수들의 한국 선수들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연결돼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씨름사인회 사진] 통합씨름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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