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악당’ 임상수 감독 “젊은이들 어려운 삶, 우리 사회 문제” [인터뷰]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6.19 08: 00

“X새끼.”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 속 임상수 감독의 대사다. 그는 극 초반 회장(김회장)의 수하 인물로 등장해 똑같은 대사만 반복하다 갑자기 죽는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에 깜짝 출연한 것도 흥미롭지만, 욕만 하다 퇴장하는 것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임 감독은 “과거의 임상수는 죽었다”는 해석을 달았다. 그동안 어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명랑하고 유쾌하고 귀여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렇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연출 임상수, 제작 휠므빠말)은 기성세대에 거침없이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인턴 사원 지누(류승범)와 렉카차 운전수 나미(고준희) 앞 어느 날 갑자기 거액의 돈 가방이 떨어진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돈 가방이 인연이 돼 연인 같은 관계가 된다. 하지만 돈 가방의 주인들이 두 사람을 쫓기 시작하고, 위험천만한 상황들이 벌어지자 두 사람은 진짜 ‘악당’이 되기로 한다.

흔한 범죄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늘 문제작을 만들어온 임 감독이다. 곳곳에 ‘임상수 식 비틀기’를 포진시켰다. 자본에 대한 신랄한 시선이나 블랙코미디 요소는 전작들과 맞닿아 있지만, 좀 더 경쾌하게 풀어냈다. 지누의 시선으로 그려지지만 상황을 끌고 가는 인물은 나미다. 인질이 된 지누를 구하는 자도 나미다. 뒤바뀐 성 역할은 범죄물이나 액션영화에서 보기 드문 설정이다. 우아하지만 천박한 회장(김주혁), 국적 불명의 건달 음부키(양익준) 등 강렬한 캐릭터들이 풍성함을 더한다. 
 
“말하지 말고, 그냥 보라”는 극중 나미의 대사처럼, 임 감독은 “논리적으로 표현된 영화가 아닌, 감정적으로 느끼면 되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젊은 관객들이 통쾌함을 느끼길 바랐다. “젊은이들의 삶이 너무 어려운 것이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영화가 실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절친 악당들’은 제 할 일을 다한 것이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바람난 가족’(2003) ‘그때 그사람들’(2004) ‘하녀’(2010) 등 어른들을 위한 작품을 주로 만든 그가 갑자기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원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는 영화 ‘돈의 맛’(2012) 관객과의 대화(GV) 당시 만났던 한 관객의 이야기를 꺼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관객이었다. 극중 대기업 중간 간부로 설정된 김강우가 보여주는 삶의 고뇌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대기업에 들어가도 삶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런 친구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캐스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그동안 스타의 이미지가 강한 고준희에게 배우로서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줬다. 임 감독에게도 고준희는 일종의 승부수였다. 고준희의 외양이 영화의 스타일리시한 면모와 잘 맞아 떨어졌고, 연기에 대한 ‘헝그리 정신’이 임 감독을 잡아끌었다. 그만큼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나미란 캐릭터를 맞춤옷처럼 소화하는 것도 중요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임 감독은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발산하는 나미 캐릭터를 탐내는 여배우는 많았지만, 조력하는 지누 캐릭터를 원하는 남배우는 드물었다. 이때 손을 잡아준 이가 류승범이었다. 류승범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딸이 있으면 저런 남자와 연애하라고 말하고 싶은” 인물을 완성해 나갔다. “늘 주도하는 남자 주인공을 맡던 류승범이기 때문에, 항상 나미를 배려하고 지지하는 지누가 마냥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임 감독은 말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회장 역의 김주혁도 인상적이다.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인물이다. 나긋한 목소리로 거친 대사를 내뱉는 장면이 실소를 자아낸다. 캐스팅이 진행되지 않아 쩔쩔 매고 있던 찰나에 김주혁이 먼저 출연 의사를 밝혔다. “(김)주혁 씨에게 참 고맙다”는 임 감독은 “본인에게는 위험 부담이 있는 선택이었다. 아마 불안했을 거다. 다행히 VIP 시사에 와서 작품을 직접 본 후 나름 만족하고 갔다”며 후일담을 들려줬다.
이처럼 신선한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안전한 선택을 선호하는 국내 투자배급사의 작품이었다면 불가능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투자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 덕도 있단 뜻이다. 임 감독은 “이십세기폭스 측과도 시나리오를 두고 이견이 있었다”고 너스레를 떤 후 “어떤 투자배급사와 함께 했어도, 이처럼 찍자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나의 절친 악당들’의 성과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정해진 것은 오는 7월 촬영을 시작하는 단편 영화 ‘뱀파이어가 우리 옆집에 산다’였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중국 동영상 사이트 요우쿠가 지원하는 작품이었다.
“어쨌든 이것은 확실하다. 임상수는 죽었다. ‘나의 절친 악당들’처럼 명랑하고 유쾌하고 귀여운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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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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