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제작소] 최진호 대표 "에이핑크, 느려도 탄탄하게 키우고 싶었죠"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4.12.01 09: 45

걸그룹은 청순, 아니면 섹시다. 딱히 바람직해보이지 않지만, 현재 우리 가요계는 그렇다.
주로 청순, 깜찍으로 시작해 섹시로 넘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꽤 많은 걸그룹이 '재미'를 봤다. 그래서 에이핑크의 이번 컴백에 관심이 높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선두주자로 벌써 4년. 에이핑크가 제시할 걸그룹의 그 다음 스텝은 뭘까.
음원차트 정상에 오른 신곡 '러브(LUV)'는 사람들의 궁금증에 대한 아주 명확한 답이 됐다. 분위기를 바꾸되 이미지를 바꾸진 않았다. 콘셉트보다는 감성에 중점을 뒀다. 

 
브라운아이드걸스, 포미닛의 매니저를 거쳐 에이핑크 제작까지 가요계 걸그룹 불패신화로 불리고 있는 에이큐브 최진호 대표는 "후배들이 갈 길은 선배그룹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SES, 핑클 등 성공적인 모델을 연구하면 청순이냐 섹시냐라는 이분법은 충분히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전문직 해볼래?' 제안에 바로 OK
OSEN(이하 O) - 가요계를 대표하는 매니저 출신 제작자 중 한 분이신데요. 매니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최진호 대표(이하 C) - 대학교에서는 부동산 관련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놀았죠. 집안 사람들이 대부분 공부를 잘했는데 전 좀 삐딱한 편이었거든요. 고등학교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하고 싶어했는데 아버지가 보수적이셔서 반대하셨어요. 일단 대학에 가고 나서는,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그러다 한 가수와 친분이 생겼는데, 디보이스라는 그룹의 멤버였어요.
O - 친구 따라 강남가는 스토리인가요?(웃음)
C - 그런 셈이죠. 그 가수를 지금의 큐브엔터테인먼트 홍승성 회장님이 제작했어요.(웃음) 그때만 해도 사무실에 차도 없고, 전화도 없고 그랬죠. 그런데 어느날 가수 형이 아프다고 어디까지 태워달라고 하더라고요. 전 그때 차가 한대 있었어요. 그래서 태워줬는데 현장에서 회장님이 절 보시더니 '너 뭐하는 애니'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너 전문직 안해볼래?'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매니저직을 제안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제 차가 필요하셨던 거 같아요.(웃음) 그런데 저는 그 길로 학교를 그만두고 매니저 세계에 입문했죠.
O - 20년전 얘긴데, 당시 매니저 일은 어땠어요?
C - 제가 본 매니저의 기술은 연예인 옆에서 같이 노는 거였어요.(웃음) 나이트도 많이 다니고, 잘 놀았어요. 그래도 술을 못마시는 체질이라 별 사고 없이, 안힘들게 잘 다녔어요.
O - 지금과 일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
C - 그때는 CD도 안쓰고 릴테잎을 쓸 때였어요. 그때만해도 무대가 쿵쿵 울리면 CD가 튀었거든요. 그래서 그 큰 릴테잎을 갖고 다녀야 하는데, 더울 땐 그게 또 눌어붙어요. 그걸 관리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죠. 군대 다녀오고 계속 매니저를 하면서는, 마냥 즐거웠던 거 같아요.
O - 하지만 쭉 즐거울 순 없었을텐데요.
C - 30대 초반까지 통장 잔고가 0원이었어요.(웃음) 다양한 일을 해보긴 했어요. 프로덕션 회사에서 제작 일도 배워보고, DJ DOC 매니저를 하면서 '런투유'가 대박나는 과정도 보고, 연기자를 데리고 독립을 했다가 망해보기도 하고 그랬죠. 그러다 내가네트워크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2006년에 실장 타이틀을 달고 컴백했어요.
# 제작자,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는 직업  
O - 거기서 브라운아이드걸스가 대박이 났죠.
C - 쉬운 케이스는 아니었어요. 음악방송 출연시키려고 3일간 방송국 밖에 서서 PD 한번 만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나요.  
O - 그래도 결국 잘됐잖아요.
C - 그렇죠. 저는 '러브'가 잘되는 것까지 보고 나왔어요. 고민이 있었죠. 신인개발팀이 없어서 브라운아이드걸스 이후의 내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홍승성 회장님이 JYP엔터테인먼트를 그만두고 독립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감사하게도 저한테 기회를 주시겠다고 해서, '매니지먼트 유학'을 가는 셈 치고 회사를 옮겼어요. 월드스타 비를 만들고 2PM, 원더걸스를 거친 사람은 어떻게 회사를 만들어갈지가 궁금했거든요. 가수가 성공한 그 다음엔, 매니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때부터 고민한 거 같아요. 평생 연예인하고 놀기만 할 순 없잖아요.
O - 그렇게 큐브엔터테인먼트의 시초부터 지켜보게 되신 거군요.
C - 그런 체계를 처음 봤어요. 당시 좀 유명했던 친구가 현아, 그 외엔 모두 연습생이었죠. 당시 큐브 대표실 유리창에선 바로 옆 건물에서 연습생들이 춤 연습하는 게 그대로 보였어요. 그 모습을 보며 '뿌듯하시겠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회장님은 '아니, 부담스러워' 그러시더군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러고보니 제작자는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는 거잖아요. 그 말이 와닿아서 저도 함부러 연예인을 권하지 않아요. 제가 먼저 연예인 해보자고 제안한 게 그동안 3명 밖에 안될 정도로요.
O - 큐브도 밤 늦도록 야근 많이 하는 회사로 유명했죠.
C - 회장님의 평균 퇴근 시간이 새벽 2시였어요. 전 일이 끝나도 일부러 회사에 남았어요. 회장님이 그 시간까지 뭘하시나 너무 궁금했거든요. 사람 다루는 법을 주로 많이 본 것 같아요.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더라고요. 일단 칭찬을 하고, 그 뒤에 자신의 의견을 붙이는 방법. 인상적이었죠.
# 에이핑크, 하얀 우동 같은 걸그룹
O - 그렇게 3년을 잘 배우고, 에이큐브로 독립을 하셨죠. 에이핑크는 당시 흔하지 않았던 청순 걸그룹이었어요. 특이했는데.
C - SES나 핑클을 향한 오마주였죠. 홍승성 회장님이 늘 10년 주기설을 설명해주셨어요. 유행이 돌고 돈다고요. 그래서 예전의 요정 콘셉트가 다시 통할 거라 믿었죠. 그러고보니 차별화하기에도 좋았어요. 당시엔 아이유를 제외하곤 모두 일레트로닉이었잖아요. 모두가 빨간 짬뽕을 할때 나는 하얀 우동을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에이핑크가 시작된 거죠.
O - 그런건 그냥 감으로 정하는 거잖아요. 그죠?
C - 그렇죠. 감을 키우는 수밖에 없어요. 사실 전 유행을 선도하거나, 남들보다 앞서는 감각이 있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누구보다 대중의 눈으로 가수를 봐요. 그런 제 눈에 좋고 편해야 제작을 하는 거고요. 지금도 그래요. 허각의 음악은, 남자들이 술 한잔 하고 노래방에 가서 여자한테 잘 보이고 싶을 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수집해요. 에이핑크는 일반 남자의 눈으로 봤을 때 부담스럽지 않고 좋은 느낌을 표방하죠.
O - 그렇네요. 그런 기준으로 한다면 90년대 걸그룹이 정말 좋은 롤모델일 수밖에 없죠.
C - 그때 그 감성을 가지려고 하고 있어요.
O - 그렇게 차별화가 잘돼서 처음부터 비교적 잘되지 않았나요?
C - 그래도 많이 힘들었어요. 독립한 걸 후회도 많이 하고, 경영도 어려웠고요. 종이컵 하나에도 벌벌 떨었어요. 2011년 1월에 회사를 설립하고, 4월에 에이핑크가 데뷔했죠. 아이들은 큐브에서 연습생활을 했기 때문에 바로 데뷔가 가능했어요. 그리고 9월에 허각의 '헬로'가 나왔죠. 가수들한테 너무 고마운 게, 잘 믿어줬어요. 각이한테 한 얘기는 아직도 기억나요. '이 노래 잘될 거 같아. 나한테 한번 속아봐.' 남들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그 누구보다 대중의 눈으로 볼 수 있다면서 '헬로'를 추천했었죠.
에이핑크도 잘될 수 있다고 믿었어요. 모두가 일레트로닉이었으니까, 매운 걸 많이 먹으면 우유도 먹고 싶잖아요? 꼭 필요한 존재라고 봤죠.
O - 에이핑크의 데뷔일은 저도 기억나요. 서태지-이지아 기사가 터져서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었죠.(웃음) 데뷔일로는 역대 최악으로 꼽히죠.
C - 앞이 캄캄했죠.(웃음) 며칠간이나 검색어가 서태지, 이지아, 에이핑크로 이어졌어요. 저 사건만 아니면 우리가 1위인데.(웃음) 그때만 해도 신인 걸그룹이 데뷔와 동시에 팡 터지는 게 있었는데, 정말 아쉬웠죠. 천천히 익으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비웠어요.
# 느리지만 탄탄하게 크고 싶다
O - 일본 진출도 예상보다 많이 늦었어요. 지난 10월에 첫 곡을 냈죠.
C - 준비는 처음부터 했었어요. 데뷔했을 때부터 일본인과 숙소에서 같이 살게 하고. 한류가 아무리 잘된다 해도, 아직 때가 아닌데 성급하게 진출을 시도하긴 싫었어요.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봤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을 때 도전한 거죠.
O - 에이핑크가 탄탄하게 성장하긴 했지만, 후발주자들이 과감한 섹시 콘셉트로 틀어서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는 사례들을 보면 조금 흔들렸을 것 같기도 해요.
C - 우선, 멤버들이 섹시 콘셉트랑 안어울리고요.(웃음) 청순한 색깔이 조금 답답했을 때는 있었어요. '허쉬' 때였어요.
O - 그 곡의 반응은 다른 곡에 비해 그리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C - 그랬죠. 청순을 탈피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치고 올라가야 한다는 욕심은 있었어요.
O - 유혹적인 코드는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겠어요.
C - 같은 유혹이라도 성숙미로 가면 갔지, 섹시 코드로 가고 싶진 않아요. 요즘 어른들이 SES 핑클을 기억하는 것처럼, 지금 아이들이 커서 '우리 시대 요정으로는 에이핑크가 있었지'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나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데, 굳이 섣불리 바꾸고 싶진 않아요. 창작의 한계가 있어서 힘들 수 있겠지만, 그 답은 선배그룹들이 했던 걸 보면 다 찾을 수 있어요.
O - 선배그룹들이 간 길을 재해석하면 길이 보인다는 거군요.
C - 그렇죠. 답이 어디있겠어요. 훌륭한 선배들이 이미 제시해놨잖아요. 그들이 교과서죠. 오해하는 시선도 있어서 상처를 받곤 하지만, 전 선배그룹들이 먼저 걸어간 길 만큼 훌륭한 교과서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요정 아이콘으로 느리지만 탄탄하게 성장시키고 싶어요.
O - 멤버들의 생각도 같을까요?
C - 멤버들이랑 그런 얘기 많이 했어요. 레이디 가가가 갑자기 얌전해지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이유가 확실한데, 그걸 일부러 바꿀 필요가 있을까. 가끔은 제자리 걸음 같이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너희들이 갑자기 빨간 머리를 한다고 해서 인기가 더 많아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물론 멤버들이 성숙함에 따라 음악도 바뀌긴 해야죠. 이번 컴백에서 무게감을 넣은 것처럼요.
O - '러브'에 대한 멤버들 반응은 어때요?
C - 정말 좋아했어요. 성숙함을 한창 뽐내고 싶을 때잖아요. 사실 이 곡이 '미스터츄'랑 같이 나왔어요. 노래 분위기상 '미스터츄'를 먼저 해야 '러브'를 할 수 있는 거니까, '미스터츄'부터 발표했던 거죠.
# 걸그룹, 왜 꼭 청순 아니면 섹시여야 하나
O - 요즘 걸그룹이 지나치게 청순 아니면 섹시이긴 한데, 에이핑크는 또 다른 길을 찾아낸 것 같아요.
C - 영화에는 멜로도 있고 액션도 있고 코미디도 있는데, 왜 걸그룹은 청순 아니면 섹시 뿐일까요. 물론 에이핑크 안에서도 여러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에요. 유닛이라던가. 하지만 억지로 방향을 틀 것 같진 않아요.
O - 보통 가요기획자들이 걸그룹 제작은 정말 어렵다고들 해요. 멤버들과의 소통 문제도 그렇고. 그런데 걸그룹 불패 신화를 계속 쓰고 계신 비결이 뭘까요.
C - 진짜 없어요.(웃음) 여자와 얘기하는 방법도 이제야 좀 알 거 같은 걸요. 남자 감성으로 봤을 때 어떤 여가수가 통할까를 열심히 연구하는 거지, 정작 멤버들과의 소통은 저도 잘 못했어요. 다행히 멤버들이 워낙 착해서 제 말을 잘 따라준 것 뿐이에요.
O - 그래도 삐져서 꽁해있다거나, 운다거나, 그런 어려운 상황도 있을 거 같은데. 저도 그 나이를 지나왔지만, 정말 못될 때거든요.(웃음)
C - 우리 멤버들은 정말 착한가봐요. 전혀 안그래요. 기본적으로 일하는 걸 워낙 좋아해요. 일할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영광이고 기쁜 일인지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 받기도 했고요. 반대로 저도 멤버들한테 스스럼 없이 말해요. '너희 때문에 회사가 먹고 살아' 라고.
O - 목에 힘들어갈텐데.(웃음)
C - 아니에요.(웃음) 겸손은 중요해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비가 '월드스타' 타이틀을 달고 정말 최고의 위치에 있었을 때, 자기 씨디에 사인해서 각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먼저 인사하는 걸 봤어요. 가수들이 많이 놀라했죠. 그런데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어차피 인사하는 거 조금만 더 숙이자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 같아요.
O - 에이큐브의 다음 스텝은 뭘까요. 보이그룹이겠죠?
C - 남자그룹 연습생들이 있죠. 내년에는 데뷔해야 하는 타이밍이에요. 구상 중이긴 한데, 준비 안됐을 때 나가진 않을 거 같아요. 에이핑크는 이제 공연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요. 허각도 꾸준히 신곡을 선보여드릴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제가 해왔던 그룹을 또 뛰어넘을 수 있는 후배그룹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죠. 내년은 정말 바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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