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베로가 떠난 뒤 김서현은 슬라이더 투수가 됐다

[OSEN=대전, 최규한 기자] 17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렸다. 7회초 마운드에 오른 한화 투수 김서현이 투구를 앞두고 마운드에 글씨를 쓰고 있다. 2023.05.17 / dreamer@osen.co.kr
수베로가 떠난 뒤 김서현은 슬라이더 투수가 됐다
[OSEN=백종인 객원기자] 1-1로 팽팽한 7회 초다. 마운드의 주인이 바뀐다. 홈 팀의 필승조다. ‘이...


[OSEN=백종인 객원기자] 1-1로 팽팽한 7회 초다. 마운드의 주인이 바뀐다. 홈 팀의 필승조다. ‘이 경기는 꼭 잡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17일 대전, 자이언츠-이글스전)

그의 등장에 환호가 터진다. 이글스 파크의 핫한 스타가 분명하다. 퍼포먼스 역시 남다르다. 모자를 가슴에 대고 멋진 의식을 갖춘다. 그리고 마운드 한쪽에 숫자 몇 개를 적는다. 3, 70, 88. 얼마 전 떠난 수베로 감독과 로사도, 케네디 코치의 넘버다.

첫 상대는 전준우다. 초구는 슬라이더(135㎞)가 낮게 빠졌다. 코스는 가운데지만 타자는 흠칫 놀라며 몸을 뺀다. 위협적인 각도로 꺾인다는 뜻이다. 그러자 거푸 같은 공격을 퍼붓는다. 2구째 131㎞짜리를 우두커니 구경만 한다. 3구째(136㎞) 역시 급격하게 휘어진다. 어처구니없는 헛스윙이다.

결국 승부는 뻔하다. 4구째 빠른 볼(156㎞) 하나를 보여줬을 뿐이다. 결정구 역시 슬라이더다. 133㎞에 무너진다. 맥 풀린 스윙으로 K됐다. 1루 쪽 관중석이 뜨거워진다.

유강남을 상대로 한 차례 실투가 나왔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는다. 1사 1루에서 대타 고승민이다. 일단 패스트볼 3개를 보여준다. 카운트 2-1이 되자, 슬라이더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달아 4개가 멋지게 춤춘다. 좌타자도 어쩔 수 없다. 파울-파울 끝에 7구째에 당한다. 하프 스윙이 인정됐다. 스타트한 유강남과 함께 더블 아웃이다. 7회 초가 깔끔하게 지워졌다.

[OSEN=대전, 최규한 기자] 한화가 1위 롯데와 연장 싸움에서 승리하며 2연패를 끊었다. 경기를 마치고 승리한 한화 최원호 감독과 투수 김서현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05.17 / dreamer@osen.co.kr

1이닝을 너끈히 막았다. 서울고 선배를 맞혔지만, 무안타로 잠재웠다. 삼진 2개를 잡아내는 동안 인플레이 타구는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투구다.

주목할 점이 있다. 볼 배합이다. 변화구 비율이 꽤 높았다. 16개의 투구 중 직구는 5개뿐이다. 나머지 11개는 슬라이더였다(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56 ㎞).

이런 현상은 최근 몇 게임 동안 계속됐다. 12일과 14일 SSG전에서도 그랬다. 빠른 볼 비중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대신 슬라이더가 과반을 넘겼다. 굳이 따지자면 점점 기울어지는 추세다. 슬라이더 비중이 53.3%→59.4%→68.8%로 높아진다.

STATIZ 캡처

물론 납득이 간다. 아무래도 상대의 초점은 직구에 맞춰진다. 때문에 150㎞대 중후반의 공이라고 해도 만만하게 던지기 어렵다. 각종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직구 콘택트 비율이 82.4%인 반면 슬라이더는 50%다. 피안타율에서도 차이가 난다. 슬라이더(0.143)에 비해 직구(0.263)가 더 많이 맞았다. OPS도 직구(0.865)가 슬라이더(0.360)에 비해 아주 높다.

그렇기 때문에 스탯을 근거로 하면 구종 변화는 당연한 일이다. 최원호 감독도 칭찬한다. “김서현의 가장 큰 장점은 변화구다. 보통 직구가 흔들릴 때 버틸 수 있는 변화구가 없다는 게 어린 선수들의 문제다. 그런데 김서현은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스트라이크가 되는) 변화구를 갖고 있다.”

심지어 문동주와 비교 평가도 내린다. “동주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투수를 시작한 선수다. 경험이 적어 좋지 않을 때 헤쳐 나가는 능력은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반면 서현이는 중학교 시절부터 좋은 투수였다. 직구 제구가 안 될 때는 곧바로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경험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OSEN DB

하긴 뭐.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떤가.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다. 까짓 159㎞가 아니면 어떤가. 현란한 130㎞에도 타자들이 춤을 춘다. 타이밍을 못 잡아 전전긍긍, 허둥지둥한다. 그게 또 다른 방식으로 압도적인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데도 한 가지. 뭔가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이제 막 데뷔한 루키다. 19살이라는 파릇한 나이다. 무한한 성장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가 가둬지는 안타까움이다. 그 안에 있는 더 대단한 무엇과 헤어지는 것 같은 아쉬움이다.

웬, 올드 스쿨 타령이냐고? 그런 반론을 위해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카를로스 수베로 때의 얘기다. 아시다시피 KBO리그에서 가장 진보적인 야구를 추구했던 인물이다. 그가 지난달 19일 남긴 코멘트다. 김서현의 데뷔전 직후다.

“스프링 캠프 때 훈련하며 그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자꾸 슬라이더를 중심으로 던지려는 모습이었다. 이걸 고치기 위해 2군에 보냈다. 거기서는 직구를 던지게끔 유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2스트라이크 전까지는 직구만 던지라는 미션도 줬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최원호 퓨처스 감독과 박정진 퓨처스 투수 코치를 꼭 언급하고 싶다. 그들이 한 달 만에 이 미션을 완수했다. 캠프 때와는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데뷔전 17개의 중 11개가 빠른 볼이었다)

참 공교롭다. 수베로가 팀을 떠난 건 11일이다. 그전까지 8차례의 등판에서 직구 비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12일 이후 3차례는 슬라이더가 절반을 넘겼다. 그냥 우연이기를 바랄 뿐이다.

/ goorada@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OSEN 페이스북에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클릭!!!]
2023-05-18 11:00

Oh! 모션

HOT NEWS

로딩

OSEN 포토 슬라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