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 축제의 날, 한국 야구는 숙제를 시작했다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23.03.17 17: 00

일본 야구는 축제를 벌였다. 성대한 자축의 행사를 하면서 자신들의 성공을 기뻐하고 의지를 다졌다. 반면, 한국 야구는 철저한 반성의 시간을 다짐하면서 숙제를 얻었다.
지난 16일 일본 야구 대표팀은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 토너먼트 8강전에서 이탈리아를 9-3으로 꺾고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2006, 2009년 대회 우승을 포함해서 5회 연속 WBC 4강에 진출하는 ‘야구 강호’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날 경기 후 일본 대표팀은 경기 후 도쿄돔에서 성대한 4강 진출 자축 행사를 진행했다. 구리야마 감독은 단상에 올라서 이날 도쿄돔에 모인 4만1723명의 관중들 앞에서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일본 대표팀은 WBC 조직위원회가 준비한 전세기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4강에 진출한 일본 오타니가 피아자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2023.03.16/spjj@osen.co.kr

일본의 의욕적이고 다부진 행보는 과거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최정예 멤버를 꾸려서 참가했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 한일전에서 2연패를 했고 노메달의 수모를 겪고 절치부심했다. 2006년 WBC 우승에 도취되었던 일본 야구는 다시 반성했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한국의 열정에 일본은 각성했다.
2009년 WBC 우승, 2013년 WBC 4강 등으로 세계 정상권을 유지했지만 여전히 일본은 앞으로 나아갔다. ‘일본 대표 마케팅위원회’라는 조직을 창설했다. 일본야구기구(NPB)는 일본야구협회와 함께 프로급 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까지 총괄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네이밍을 본격적으로 홍보하고 운영하게 된 시점이었다. 고쿠보 히로키, 이나바 아쓰노리 등 일본 야구계를 주름 잡았던 레전드급 선수들이 전임 감독으로 부임한 것도 2013년부터였다.
4강에 진출한 일본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2023.03.16/spjj@osen.co.kr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명칭이 생기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면서 일본 야구는 강호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비시즌 꾸준히 대표팀을 소집해서 메이저리그 올스타들과 친선경기를 갖고 호주, 네덜란드, 대만, 캐나다 등과 정기적인 평가전을 열면서 국제 경쟁력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새 얼굴들을 시험하고 국제 대회 경험을 쌓았다. 세대교체의 선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2017년 WBC 4강, 2019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우승, 2021년 도쿄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이번 WBC 4강 등 최근 일본의 국제대회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선수들에게 대표팀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자긍심, 자부심이었다. 최고참 다르빗슈 유는 대표팀을 위해 소속팀 샌디에이고의 스프링캠프를 거의 치르지 않고 합류했다. 사실상 마지막 대표팀 무대를 위해 쏟아 붓고 있다.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는 올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보스턴과 5년 90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데뷔 시즌 스프링캠프 대신 대표팀을 택했다. 일본 대표팀은 선수들에게 이만큼 중요한 의미가 됐고, 그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다.
한국 야구 대표팀도 영광의 시대가 있었다. 어쩌면 ‘사무라이 재팬’의 탄생 이전이 한국 야구 최정점의 시기였다. 태극마크는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없는 특권이었고 영광이었다. 엄청난 선수층은 아니었지만 소수정예로 세계 야구를 주름 잡았다. 특출난 재능의 선수들과 함께 한국 야구를 세계 정상권에 우뚝 섰다. 그러나 조금씩 한국은 뒤쳐졌다. 대표팀은 점점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닌 부담스러운 자리가 됐다. 병역 문제 해결이 걸린 아시안게임만 간절하다는 인상을 일반 대중들에게 심어주곤 했다. 본인들의 의도와 생각은 그렇지 않더라도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인식 자체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성적이다. 아시안게임은 금메달을 땄지만 그 외의 대회에서 성과가 없었다. 
대표팀 이강철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2023.03.09 /spjj@osen.co.kr
2015년 프리미어 12 대회 우승을 했지만 2013, 2017년 WBC에서 1라운드 탈락, 2019년 프리미어12 준우승, 그리고 2021년 도쿄올림픽 노메달과 2023년 WBC 또 다시 1라운드 탈락까지. 한국 야구는 세계 야구가 성장하는 사이에 제자리 걸음만 했고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무르게 됐다. 
일본 야구가 축제를 벌인 날, 한국 야구는 숙제를 시작했다. KBO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야구대표팀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과 경기력을 보인 점에 대해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야구 팬들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KBO와 10개 구단은 이번 WBC 대회 결과에 큰 책임을 통감하며, 여러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2023년 제 2차 실행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사안을 깊이 있게 논의했으며 리그 경기력과 국가대표팀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각 단체와 협력하고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해 KBO 리그의 경기력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일본의 실패, 실패에서 부활하고 도약하는 과정을 이제 한국은 본받아야 한다.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꾸준히 대표팀 평가전을 추진하면서 시선을 눈 밖으로 돌려야 한다. 태극마크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기 위한 과정은 이제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반성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 과연 한국 야구는 지금 주어진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까. 과거의 반성도 중요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해졌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12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3차전 체코와의 경기를 가졌다.1회말 1사 3루 한국 이정후의 선제 적시타 때 홈을 밟은 3루주자 박건우가 더그아웃에서 이강철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3.03.12 /spj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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