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호날두에 맺힌 한 씻어 낸 레반도프스키, 이번엔 음바페에[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3.01.12 06: 47

주유는 중국 후한 삼국시대 오의 명장이다. 천하를 집어삼킬 듯 위세를 떨치던 조조에게 처참한 패배의 쓴맛을 안긴 뛰어난 장수다. 삼국이 자웅을 겨룬 적벽대전에서, 오와 촉의 연합군을 이끌고 대첩을 거둠으로써 천하삼분의 정족지세를 도출한 주인공으로서 후세에 회자한다. 주유가 운용한 고육계(苦肉計)-사항계(詐降計)-연환계(連環計)에 제갈량의 신묘한 동남풍이 어우러지면서, 조조가 진두지휘한 위의 수십 만 대군은 하릴없이 스러지며 적벽을 피로 물들였다.
이처럼 대단한 전략가였던 주유였건만, 시대를 잘못 태어났던 듯싶다. 같은 시대에, 더 빼어난 책략가였던 제갈량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후에 나관중은 역작인 『삼국지 연의』에, 주유가 평천하의 웅지를 끝내 이루지 못하고 죽으며 남긴 한탄의 일성을 담아냈다. “오, 하늘이시여! 저를 세상에 내보내며 어찌하여 공명(제갈량의 자)까지 태어나게 하셨나이까?”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바르셀로나)는 당대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는 뛰어난 골잡이다.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5연패(2017-2018~2021-2022시즌)를 비롯해 일곱 번씩이나 등극했을 만큼 ‘전설의 골게터’다. 2020년과 2021년 잇달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하는 세계 최우수선수(World's Best Man Player)와 세계 득점왕(World's Best Top Goal Scorer)에 올랐던 사실이 말해 주듯,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득점 기계(Goal Machine)’다.

그러나 실제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졌다. 같은 시대에, ‘신계의 사나이들’인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가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에 관해서라면 세계 축구사를 새로 써 가는 두 ‘축구신’의 벽 앞에서, 좌절을 곱씹어야 했던 레반도프스키다. 축구 선수 최고 영예인 발롱도르(Ballon d'Or)를 단 한 번도 품에 안지 못한 한을 지닌 데서도 엿볼 수 있는 불운이다. 메시가 7회, 호날두가 5회 각각 수상의 영광을 누렸던 점에 비해 지극히 대조적 어두움이라 할 만하다.
레반도프스키도 절망감에서 비탄의 울부짖음을 토해 냈지 않았나 모르겠다. “오, 하늘이시여! 저를 세상에 내보내며 어찌하여 메시와 호날두를 함께 태어나게 하셨나이까?”
레반도프스키, 21세기 세 번째 10년 주기 세계 최다 득점 골잡이에 우뚝
레반도프스키에게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만년 2인자’의 설움을 떨치고 ‘지존’에 올라섰다. 그토록 버거워만 보였던 메시도 호날두도 뒤로하고 가장 높이 올라갔다. 1988년생, 우리 나이로 서른여섯 살이 된 노익장에게 찾아온 영광이었다.
레반도프스키가 등정한 ‘산’은 21세기 세 번째 10년 주기(2021-2030년) 세계 최다골이다. IFFHS가 집계해 지난 10일(현지 일자) 발표한 이 기간에, 세계 득점왕의 주인공은 늘 2%가 부족해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아야 했던 레반도프스키였다. 아직 세 번째 10년 주기 중 2년밖에 지나지 않았긴 해도, 레반도프스키는 111골을 터뜨려 영예를 안았다(표 참조).
레반도프스키는 2021년 69골과 2022년 42골을 엮어 맨 위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활약한 무대별로 보면, ▲ 리그에서 72골 ▲ 컵대회에서 2골 ▲ 국제 클럽 대항전(ICC = International Club Competitions)에서 22골 ▲ 국가대표팀(NT = National Team) 간 경기(A매치)에서 15골을 각각 뽑아냈다.
IFFHS는 ▲ 각국 리그(NL = National League) ▲ 각국 컵대회(NC = National Cups) ▲ 국제 클럽 대항전 ▲ A매치를 통틀어 골 수를 합산해 순위를 매겼다.
레반도프스키는 2022 카타르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골든 부트(8골) 수상자인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를 4골 차로 제쳐 한결 뜻깊은 영광을 누렸다. 또한, 중요한 길목에서 번번이 걸림돌로 작용하며 영광을 가로챘던 메시와 호날두를 큰 격차로 따돌려 기쁨이 배가됐다. 6위에 자리한 메시(78골)와는 33걸음, 10걸에도 끼지 못한 호날두(14위·63골)와는 물경 48걸음이나 거리를 떨어뜨렸다.
이번 주기에서, 레반도프스키는 2021년 3월 6일 선두에 나선 이래 단 한 번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독주를 이어 가는 기세를 뽐냈다. 스페인 라리가 2022-2023시즌 5라운드 카디스전(9월 10일·누에보 미란디야)에서, 후반 20분 추가골을 뽑아내 1년 253일 만에 가장 먼저 100골 고지를 밟은 바 있는 레반도프스키다.
앞으로 세계 축구계를 휘어잡을 골잡이로 손꼽히는 음바페와 2022-2023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 거센 격랑을 일으키고 있는 ‘괴물’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은 각각 2위(107골)와 3위(95골)에 자리했다. 전문가들의 높은 평가에 걸맞은 놀라운 몸놀림이었다.
‘한국인’ 손흥민과 ‘영원한 짝꿍’으로 불리는 해리 케인(토트넘 홋스퍼)은 5위(79골)에 올라 역시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골게터임을 다시금 입증했다. 메시보다도 한 계단 높은 자리다.
레반도프스키는 다소 불안하다. 음바페가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득점 곡선을 보면 쉽게 내릴 수 있는 전망이다. 레반도프스키는 2021년 엄청난 골 사냥 솜씨(69골)를 자랑했지만, 지난해 페이스가 뚝 떨어졌다(42골). 반면, 음바페는 2021년 51골에서 2022년 56골로 완만하게나마 상승세를 보였다.
레반도프스키가 노익장의 열정을 불살라 올 한 해가 다 가고서도 명예를 지킬 수 있을지, 음바페가 연부역강을 바탕으로 역전을 이룰지 볼 만한 2023년 세계 축구 득점 경쟁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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