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모로코, FIFA 선정 ‘역대 월드컵 4강 이변’에 뽑히다[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2.12.13 06: 25

20년 전, 세계 축구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었다. 2002 한·일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에서 일어난 지명(地鳴) 때문이었다. 진앙은 한국 축구였다. 월드컵 마당에서, 이전까지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던 한국이 단숨에 4강에 뛰어오르며 일으킨 대이변의 충격파에, 세계 축구 판도는 크게 요동쳤다. 변방에서 변죽만 울리던 한국 축구가 세계 중심권으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아시아 축구 최초의 위업이었다.
20년이 흘렀다. 또, 거센 회오리바람이 세계 축구 판도를 뒤흔들었다. 이번엔 아프리카 축구가 형성한 돌개바람이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프리카의 보루인 모로코가 4강에 올라서는 선풍을 일으켰다. 두말할 나위 없이 92년 월드컵 역사상 처음 있는 아프리카 축구의 4강 진입이었다.
“축구공은 둥글다.” 축구계에서 통용되는 진리다. 자연스럽게 파란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래도 모두의 예상을 집어삼키는 대이변은 그만큼 축구의 묘미를 더해 준다. 예측을 뒤엎는 극적 반전에, 팬들은 경악하면서도 더욱 짜릿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긴박감이 넘치는 대회전을 바탕으로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로서 자리매김한 월드컵이 “수십 억 인류를 끌어당기는 마력(魔力)을 지녔다”라고 높게 평가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FIFA도 이 점에 주목했나 보다. 12일(현지 일자) 카타르 월드컵 홈페이지 뉴스난에, 역대 월드컵에서 모두를 놀라게 하며 4강에 진출하는 격랑을 일으킨 6개국을 소개했다. FIFA는 “모로코가 예상을 깨고 준결승전에 올라갔다. 그들의 위업(Exploits)은 최근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며 놀라움을 안겼던 다른 나라들을 떠오르게 한다”라며 이변의 주인공들을 조명했다.
아프리카 축구의 새 지평 연 모로코가 일으킨 대이변은 현재 진행형
FIFA가 되돌아본, 그때 그 시절 이변의 중심에 자리한 팀은 모두 4개 대회 6개국이었다. 1994 미국 대회 때의 스웨덴과 불가리아를 필두로, 1998 프랑스 대회 때의 크로아티아, 2002 한·일 대회 때의 한국과 터키를 모로코와 함께 열거하고 어떻게 파란이 일었는지를 살펴봤다(표 참조).
1994 대회는 여러 국가가 월드컵에 데뷔한 무대로서, 그만치 예상과 어긋나는 경기가 속출해 전문가들을 당황케 했다. 스웨덴과 불가리아가 파란의 앞 물결이 됐다. 두 나라는 그룹 스테이지를 2위로 통과하며 일찌감치 ‘이상한 조짐’을 예고했다.
특히, 불가리아의 기세가 대단했다. 조별 라운드에서, 두 번씩(1978 아르헨티나·1986 멕시코)이나 정상에 올랐던 아르헨티나를 2-0으로 완파했다. 8강전에서도, 3회(1954 스위스·1974 서독·1990 이탈리아) 챔프의 관록에 빛나는 거함 독일을 2-1로 꺾는 초강세를 이어 갔다. ‘선봉장’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득점왕(6골)에 등극하며 ‘불가리아 돌풍’의 중핵으로 맹활약했다.
1998 대회의 화두는 ‘크로아티아 동화’였다. 월드컵 데뷔 무대에서, 크로아티아는 단박에 3위로 뛰어올랐다. 마치 동화 같은 결과였다. 비록 4강전에서, 개최국으로서 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에 1-2로 분패했지만, 3·4위전에서 네덜란드를 2-1로 물리치는 개가를 올렸다. 공격을 이끈 다보르 슈케르는 득점왕(6골)에 오르며 크로아티아 이변의 주역이 됐다. 이변을 일으킨 나라의 에이스 공격수가 최고 골잡이에 자리함은 4년 전과 매한가지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차군단’ 독일은 또다시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4년 전과 마찬가지로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0-3으로 완패했다.
2002 대회에선, 한국과 터키가 지진의 진원지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기세가 용솟음쳤다. 그룹 스테이지를 1위(2승 1무)로 돌파한 형세를 이어 가 대회 첫 2연패(1934 이탈리아·1938 프랑스)를 비롯해 3회(1982 스페인) 우승을 자랑하는 이탈리아를 2-1(연장전 골든골)로 제압했다. 8강전에선, 스페인과 120분간 공방전 끝에 승부차기승(5-3)을 거두는 맹위를 떨쳤다. 비록 4강 독일(0-1)전과 3·4위 터키전(2-3)에서 잇달아 패퇴했어도, 종전까지 단 1승도 올리지 못해 맺혔던 ‘월드컵 한’을 한꺼번에 말끔히 씻어 냈다.
이번 카타르 대회에서, 모로코는 아프리카 축구사를 새로 썼다. 2018 러시아 대회까지 아프리카 국가가 가장 높이 오른 월드컵 봉우리는 8강이었다. 1990 이탈리아 대회 때 카메룬이, 2002 대회 때 세네갈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때 가나가 각각 4강 문턱까지 나간 바 있다. 이번 대회 그룹 스테이지에서, 모로코는 조 1위(2승 1무)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결선 스테이지에선, 스페인(승부차기 3-0)과 포르투갈(1-0)을 연파하며 정상 2보 앞까지 나아갔다.
이번 대회에서, 모로코는 아직 패배를 모른다. 준결승전에서 맞붙는 프랑스가 조별 라운드에서 아프리카 국가인 튀니지에 1패(0-1)를 당한 점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모로코는 4강 팀 가운데 최소 실점을 자랑한다. 골키퍼 야신 부누의 눈부신 선방을 앞세워 단 1실점의 철벽 수비를 자랑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5실점, 크로아티아는 3실점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우승하려면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우선이다.” 축구계 격언이다. 이 맥락에서, 수비력만으로 보자면 모로코가 최강이다. 모로코가 일으킨 거센 파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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