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롱도르 입성 벤제마, 프랑스에도 레알 마드리드에도 최고 영광 안겨[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22.10.21 06: 30

대단하다.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나 보다. 지금쯤이면 퇴색할 법한데, 빛을 잃을 줄 모르는 듯하다. 쌓인 세월의 더께를 바탕으로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는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35)다.
각종 사건 사고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서도 헤어났다. 십여 년 동안 메워야 했던 법적 분쟁의 멍에에 굴할 수 없다는 양 쓰러짐을 거부했다. 그리고 일어섰고 마침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굴레를 벗어던지고 맞이한 순간은 그래서 더 감격적이었지 않나 싶다.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인 발롱도르(Ballon d’or: 황금빛 공)는 극적으로 벤제마에게 다가왔다.
우리 나이로 서른여섯 살, 축구 선수로선 환갑이 지났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시들어 떨어질 만한 시기에, 오히려 만개한 꽃은 탐스러운 열매까지 맺었다. 노인이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갔을까[返老還童·반로환동], 갱소년(更少年)했음이 뚜렷하게 나타난 벤제마다.

34년 10개월! 35세 생일을 딱 두 달 앞둔 지난 18일(현지 일자) 벤제마는 자신의 ‘축구 인생사’에 굵직한 하나의 발자국을 아로새겼다.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발롱도르의 세계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회춘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첫 수상이다.
사실상 최고령 수상 기록 세우며 발롱도르에 첫걸음… ‘인생 극장’의 대단원은 어떻게?
여러모로 뜻깊은 수상에, 카림 벤제마는 더욱 감동의 물결에 빠져들었을 듯싶다. 여러 기록에 윤기를 더했기 때문이다. 개인은 물론, 클럽 나아가 국가의 성가를 드높였으니, 밀려오는 흥분감을 만끽할 만한 수상이다.
먼저, 기록적으로도 노장의 건재를 과시했다. 역대 수상자 가운데, 벤제마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숱한 비난의 질곡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오로지 축구에만 매달린 기나긴 세월이 배어난 땀의 대가를 이제야 비로소 보상받은 셈이다.
1956년 발원한 발롱도르 역사에서, 이 부문 최고령 수상자는 ‘드리블의 마법사’로 불리던 스탠리 매슈스(영국)다. 매슈스는 41세 때 원년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포연 없는 전장’으로 불릴 만큼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뜨거운 각축이 펼쳐지는 현대 축구에선, 앞으로 나오기 힘든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벤제마는 사실상 새로운 기록을 썼다고도 할 만하다. 더욱이 자신의 롤 모델이었던, ‘발롱도르의 지존’인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를 제치고 세운 기록이라 감회가 새롭다. 메시는 지난해 최다 수상(7회)의 기록을 세우며 아울러 이 부문 2위(34세 5개월)에 오른 바 있었다.
무엇보다도 벤제마의 수상은 클럽과 국가의 이름을 휘날린 데서 더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자신의 둥지인 레알 마드리드와 조국인 프랑스에 발롱도르 최다 수상의 영광을 안겼다.
먼저 국가적으로, 벤제마가 발롱도르와 새 연(緣)을 맺음으로써, 프랑스는 최다 수상국 반열에 올라섰다. 종전까지 6회로 5위에 머물렀던 프랑스는 7회 대열에 합류하며 단숨에 1위로 뛰어올랐다. 아르헨티나,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과 공동 선두다(표 참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아르헨티나가 기록한 7회는 오직 메시 한 명이 밟은 발자취다.
단일 클럽으로도, 벤제마는 레알 마드리드에 영광을 안겼다. 지난해까지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에 한 걸음 못 미쳤다. 하필이면 앙숙에 밀려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던 레알 마드리드로선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지는 벤제마의 발롱도르 입성이다. 이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똑같이 12회로 균형을 맞췄다.
리그별로 봤을 때, 1위는 스페인 라리가다. 라리가 으뜸을 다투는 양대 산맥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버티고 있는 덕분에, 비교적 손쉽게 맨 앞(24회)에서 페이스를 이끌고 있다. 2위는 이탈리아 세리에 A(18회)다. 나란히 클럽 부문 3위에 자리한 유벤투스와 AC 밀란(이상 8회)에 힘입어서다. 인터 밀란(2회)도 한몫을 보탰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마당으로 공인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뜻밖에도 4위(6회)에 그쳤다. EPL 최고 명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4회)만을 내세워 선두권을 엿보기엔 힘이 모자랐다. 블랙플과 리버풀이 각각 1회씩 수상자를 배출했다.
벤제마는 굴레의 무게에 억눌려서인지 한때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활약으로 “한물갔다”라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2021-2022시즌 라리가(27골)와 UEFA 챔피언스리그(15골) 무대 득점왕을 석권한 데서 알 수 있듯, 오히려 극성기를 열어 가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가 두 대회 모두 정상에 오르는 데 일등 공신은 물론 벤제마였다.
반전의 클라이맥스로 짜릿한 흥분을 자아내는 벤제마의 ‘인생 극장’은 어떤 대단원을 빚으며 막을 내릴까?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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