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에 사로잡힌 손흥민, ‘돌아감은 지름길’임을 깨달아야[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2.09.02 06: 37

“싸워서 이기기가 어려우면 돌아감으로써 오히려 지름길을 만들고[以迂爲直·이우위직] 불리함으로써 유리함을 만들어야 한다.”(『손자병법』 「군쟁편」)
중국 고대 으뜸의 병법가로 이름을 떨친 손자가 설파한 말이다. 두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기하학적으로 가장 짧은 거리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곡선(迂) 거리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 그렇다면 손자가 강조한 ‘이우위직’ 책략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이 방책의 묘미는 바로 그 점에 있다. 일부러 멀리 돌아가서 적을 안심케 한 뒤 전격적으로 공격해 승리를 쟁취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강조한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와 맥이 닿는 계책이다.

이 모략은 현대에도 유용하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경쟁 세계에서 뜻하는 바를 이루려면 여러 요소의 제약을 뿌리칠 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때 조바심을 내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지혜와 자제력이 필요하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철칙이 지배하는 스포츠 세계에선 더욱 가슴속에 새겨야 할 금언이 바로 이우위직이다. 지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곤혹스러움에 빠진 걸출한 한국인 골잡이 손흥민(30·토트넘 홋스퍼)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한다.
13라운드에서 첫 골 넣은 시즌도 있었음을 거울삼아 차분한 발걸음 옮겨야
EPL 2022-2023시즌 초반부, 손흥민이 어둠 속에서 허덕인다. 지난 시즌 EPL 득점왕에 오르며 맹위를 떨쳤던 용솟음치는 기세는 어딘가로 사라진 듯, 답답한 몸놀림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시즌 역시 강력한 득점왕 후보로 점찍었던 전문가들의 예측을 머쓱하게 하는 극히 초라한 득점력으로 안타까움만을 자아낼 뿐이다.
예상치 못했던 부진이다. 시즌 개막 이래 단 한 번도 골맛을 보지 못했다. 벌써 5경기째 무득점 터널에 갇혀 있다. 지난 시즌 세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리는(경기당 평균 0,66골) 놀라운 골 파워를 뽐내던 골 사냥꾼의 솜씨를 찾기 힘들다. 이러다가 시나브로 득점 감각을 잃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마저 들게 할 정도다.
골이 터지지 않으면서, 플레이 전체적으로도 활기를 잃었다. 5라운드까지 치르고 나타난 평균 평점은 6,63점(이하 후스코어드닷컴 기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 시즌 7.51점에 비하면 거의 1점이 떨어졌다. 팀 내 평점 순위에서도 지난 시즌 1위에서 11위로 추락했다. 심지어 5라운드 어웨이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8월 31일·현지 일자) 평점은 6점대 밑(5,92점)이었다.
손흥민은 2020-2021시즌 비로소 EPL 진출 6시즌 만에 15골 득점 고지를 넘어섰다(17골). 탄력을 받았을까? 2021-2022시즌 처음으로 20골 고지를 정복하며(23골) 득점왕에 올랐다.
이 두 시즌, 초반 씨앗 뿌리기가 잘돼 풍년가를 부를 수 있었다. 2020-2021시즌엔 2라운드 사우샘프턴전에서 물경 4골을 휘몰아쳤고, 2021-2022시즌엔 1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표 참조). 두 경기 모두 손흥민에게 뜻깊었다. 사우샘프턴전에서 EPL 첫 4골을 폭발시켰고,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EPL 입문 첫 시즌 개막전 골을 수놓았다.
명과 암은 갈마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명약과 독약은 복용량에 따라 효용 가치가 엇바뀐다. 이번 시즌 손흥민의 플레이에서도 이런 점이 엿보인다. 어쩌면 이 두 시즌 초반 맹활약이 이번 시즌 손흥민의 조바심을 부채질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서 빨리 이번 시즌 첫 골을 터뜨린 뒤 득점왕 각축전에 뛰어들고 싶은 조급함에 오히려 발목을 잡혔음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을까. 손흥민의 침체에 느슨해질 가능성이 큰 상대 수비수의 심리를 파고들면 그의 장기인 몰아 터뜨리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손흥민은 EPL에 들어선 첫 마당이었던 2015-2016시즌 6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야 마수걸이 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10골 고지에 내리 올라선 2016-2017시즌부터 2019-2020시즌까지만 해도 슬로 스타터였다. 2018-2019시즌엔, 13라운드 첼시전에서 첫 골을 넣었을 만큼 초반부엔 쉽게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고전했다.
이러한 전례를 거울삼아 차분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야 할 듯싶다. 서두르지 않고 돌아감이 지름길이라는 말을 새기고 또 새기며 흐트러진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혀서는 더 낭패를 볼 여지가 많다. 자신이 EPL에서 밟아온 지난 시즌이 입증하는 이우위직의 묘체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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