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경이로운 두산’을 이끄는 김태형 감독, 상황에 맞는 대처…그는 왜 현역 최고 감독인가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1.11.05 10: 17

‘최고’라는 평가는, 다분히 주관적인 인상이나 판단이 작용하기 쉽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증거가 담보된다면 그런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어느 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현재 한국 프로야구판에서 김태형(54) 두산 베어스 감독이야말로 ‘최고 감독’이라고 단언했다.
그 같은 평가를 뒷받침할 만한 실황들을 올해 KBO리그 포스트 시즌에서 김태형 감독은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11월 4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은 김 감독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그 경기 5회 초에 눈길을 끌 만한 장면이 나왔다. 두산 정수빈의 희생번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3피트 라인 위반 여부’에 대한 LG 측의 비디오 판독 요청에 따른 김태형 감독의 후속 행위가 그것이다. 정수빈의 3피트 수비 방해 아웃으로 판정 난 다음 김 감독이 택한, 주심에게 슬그머니 다가가서 “뭣 때문에 그런 것이냐”는 설명 요구는 그의 슬기로운 대처였다.

비디오 판독에 대한 항의라면 감독 퇴장에 해당하므로 교묘하게 돌려서 슬쩍 눙친 것이다. 마치 류지현 LG 감독이 덕아웃을 뛰쳐나와 “감독 퇴장이 아니냐”고 항의할 것에 대비라도 한 듯 그의 ‘우회적으로 상황 짚고, 넘어가기’는 감탄마저 자아내게 했다.
김태형 감독은 과단성과 냉정한 판단력, 유연한 대처능력에다 이젠 7년 연속 가을야구 참여라는 경험치까지 더 얹어 그가 왜 현역 최고의 감독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가를 공인하게 만든 지도자다. 선수 기용 안목이야말로 그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1차 잣대다. 그런 점에서 김태형 감독이 올 시즌에 양석환과 박계범, 강승호 같은 ‘굴러온 선수들’을 활용하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31일)에 최종 순위가 결판날 정도로 치열했던 2021년 KBO리그는 막내 구단 KT 위즈의 창단 7년 만의 1위, 삼성 라이온즈의 부활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개인 의견으론, 두산 베어스의 7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을 가장 놀라운 일로 꼽고 싶다.
그저 빈말이 아니라, 전력 보강은커녕 해마다 중추적인 선수들을 FA로 ‘잃고서도(그렇다 잃은 것이다)’ 대체 선수들로 꾸역꾸역 그 빈자리를 메워가며 어렵사리 일궈낸 성과기에 더욱 그렇다.
부침이 심한 프로야구판에서 감독 부임 이후 7년 동안 계속해서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의 지도력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KBO리그에서 5년 이상 포스트 시즌 진출을 기록한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 왕조 시절의 김응룡 전 감독(1986~1994년, 9년 연속)을 빼놓고는 김태형 감독이 유일하다.
두산이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한 다음 날인 지난 10월 30일, 김태형 감독과 잠깐 통화를 했다. 그때 나눈 간단한 대화 내용이다.
-해마다 대형 선수가 FA로 계속 빠져나갔는데도, 용케 마지막 고비를 잘 넘겼다. 7년 연속 가을야구 참여는 대체 선수와 양석환 같은 선수의 트레이드 성공이라고 봐야겠다.
“(양석환이) 굉장히 해줬다. 중심타선에서 (양)석환이 해준 것도 그렇지만 그가 없었으면 타선의 무게감 같은 게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시즌 중반에 박건우의 2군행 같은 일이 있었다. 기강 바로잡기였나.
“그런 건 아니고, (박)건우가 워낙 투지도 있고 잘 한다. 좀 더 잘해줬으면 했는데 힘들다는 표시를 몇 번 내서…. 다른 선수들도 똑같이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시즌 내내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었다. 마운드가 조마조마하게 흘러간 것 같은데. 유희관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영하를 불펜 돌린 게 주효하지 않았나.
“(이)영하 같은 경우 워낙 좋은 공을 가지고 있다. 선발에서 안 되는 게 본인이 제일 힘들겠지만, 그래서 2군 가서 마음 추스르고 준비시키려고도 했는데 굳이 2군에 보낼 것 아니라 패전이고 뭐고 일단 올려보자는 판단을 했다. 원체 좋은 공이 있고, 자신감 있게 던지니까 승리 조로 들어가게 됐다. 선수 마음을 못 알아주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빨리 대처하는 게 맞다.”
-그 판단은 옳았다. 이른바 ‘선수 타령’을 할 틈조차 없이 숨 가쁘게 돌아갔다.
“‘예전에 팀이 좋았고, 핵심 선수들이 나갔다.’ 그런 걸 말할 게 아니라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팀 형편에 맞게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다. 선수들도 잘 따라줬다.”
-올해 투, 타 핵심 키맨을 양석환과 이영하로 꼽을 수 있는가.
“(양)석환이가 크고 박계범도 정말 잘해줬다. 거의 풀타임을 소화했다. (강)승호하고 (박)계범 둘이 내야에서 감당하는 몫이 굉장히 크다.”
-잘 치니 못 치니 해도 김재환이 4번 타자로 제 임무를 잘 해줬다고 보는데.
“(김)재환이도 그렇고 페르난데스도 제 몫을 충분히 해줬다”
-유격수 자리는 이제 세대교체 과도기로 봐도 되는가. 김재호의 동작이 굼떠졌고 실책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안재석이 타격 재능도 있어 보이고 대체요원으로 활용도가 큰 것으로 보이던데.
“세대교체 과정이다. 김재호가 몸이 정상이고 집중력이 있을 때면 앞쪽 플레이가 최고지만 좋을 때보다는 아무래도 좌우가 좀…. 안재석도 있지만 (박)계범이 내야 전체를 다 볼 수 있어 활용도가 크다. 앞으로 안재석이 주전 유격수를 볼 그런 상황이 와야 한다.”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김재환, 박건우의 거취가 주목된다. 무조건 잡아야 할까.
“내가 얘기할 일은 아니다. 감독이야 (구단이) 무조건 잡아주면 좋겠지만. (만약) 지금 상황에서 둘 다 빠져나간다면, 두산은 앞으로 방향을 다르게 잡아가야 할 수밖에 없다.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는 젊은 선수들을 다잡아서 몇 년 뒤에 정상 바라보는 식으로….”
김태형 감독은 ‘선택과 집중’에 대해 언급했다. 꼭 필요한 선수는 구단이 전력을 기울여 집중해서 잡아주길 바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A급 타자가 다른 팀으로 간 뒤에 데려오는 대체 선수가 동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포스트 시즌이 진행 중이다. 어떤 마음인가.
“사실 마음은 좀 편하다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부담은 없다. (정)수빈이 (허)경민이 마음고생도 좀 있고 지쳐 보였다. (김)재환이도 FA인데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그래도 팀을 위해서 묵묵히 해줘 감독으로선 고마울 따름이다. 선수들이 너무 잘해주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1위 할 때나 지금이나 받는 스트레스는 똑같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는 여느 감독이나 다를 바 없는 듯하다. 포스트 시즌 최종 결과를 예측하는 일은 섣부르다. 어쨌든 두산은 막판에 부쩍 힘을 내서 여기까지 치고 올라왔다.
두산 베어스의 힘은 곧 김태형 감독의 힘이라고 단정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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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태형 감독의 현재와 과거 모습.(두산 베어스 소식지 '곰들의 모임'에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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