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이순철 해설위원, “아들이 야구를 좋아한 만큼 이젠 후회 없이 할 수 있을 것” 비로소 만족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1.10.05 07: 26

“아들아,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이냐 너의 파닥거리는 경험 이전에 나는 이미 너의 중심을 잡는 늑골이 되어 있느니라 (…) 가을날 뜨락 오랜 시간의 질곡은 언제나 습한 훈풍으로 후대의 피를 덥혀주고 우리가 사랑에 힘입고 무럭무럭 자라날 때(…)”-기형도 시인의 시 ‘아버지의 사진’에서 부분 인용.
타격자세는 물론 표정 조차도 흡사하다. 누가 아니랄까 봐, 아버지를 빼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는 우타자였던데 반해 아들은 좌타자라는 점, 그리고 체격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는 이순철(60) 해설위원이고, 아들은 한화 이글스 내야수 이성곤(29)이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라도 자식이 가는 길은 늘 조마조마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자식이 별 탈 없이 순탄하게 제 길을 간다면, 그런 심정이 덜하겠으나 특히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아들이 뒤따라 걷는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성곤은 이제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아직도 확고부동한 것은 아닐지라도 잠재력을 인정받아 뭇 야구팬의 눈길을 끄는 수준으로 올라선 것은 틀림없다. 돌이켜보면 긴 시간이었다. 2014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 경찰청(2015년)과 삼성 라이온즈(2018년)를 거쳐 올해 6월 한화로 이적하기까지, 멀리 돌아왔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그동안 가슴 조이게 했던 아들이 주전의 위치를 확보하고 한화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데 대해 “야구를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야구를 잘못하지요.”라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야구를 좋아서 한만큼 이제는 후회 없이 야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순철 위원은 ‘이제 이성곤이 타격에 제대로 눈을 뜬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여전히 “야구를 좋아하는 만큼 야구를 썩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다. 물론 액면 그대로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아들이 야구를 하면서부터 부모로서 은근한 마음고생을 줄곧 했을 터. “그동안 퓨처스에 있다가 (한화로 트레이드 돼) 1군 무대에서 경기를 하고 있으니까 좋아한 만큼 ‘아, 내 실력이 이거였구나’하고 자기 스스로 느끼고 파악할 것 같다.”는 말에서 마음의 짐을 짐작하게 한다.
이순철 위원은 “워낙 야구를 좋아하는 앤데, (퓨처스에 내내 머물렀다면) 너무 아쉬워하지 않았을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며 거듭 “야구를 좋아하고 좋아해서 했는데 1군 무대에 ‘이성곤이라는 야구선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정도로 미미하게 지내다가 한화로 트레이드 돼 가서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계기로 됐을 것’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아버지의 심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순철 위원이 일부러 아들과 통화하는 일은 없다. 어쩌다가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왜 잘 안되는지’를 물어보기도 하지만 현장 지도자가 있으니 될 수 있으면 깊숙이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그 역시 현장에서 다년간 지도자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자칫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얘기다.
피는 속일 수 없다. 이순철 위원은 “저도 (이성곤의 경기 모습을) 보면서 ‘나하고 비슷하게 생겼구나’ 하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크게 웃었다.
한화는 김태균이 은퇴한 뒤 마땅한 1루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 공백을 이성곤이 훌륭하게 메워나가고 있다. 이성곤은 시즌 중반에 삼성에서 한화로 이적해 적응기를 거친 다음 9월( .295)에 이어 10월 들어 3경기에서 4할1푼7리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당장 올해보다 2022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아버지의 명성에 가려 있던 이성곤이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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