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시집 100년 세월’의 기록 사진집…『오뇌의 무도』에서 『입 속의 검은 잎』까지

‘한국 근·현대 시집 100년 세월’의 기록...



“우연히 백석 시집 「사슴」을 읽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잃었던 고향을 찾아낸 듯한 느낌을 불현듯이 느끼기 때문이다. 시집에 나오는 모든 소재와 정서가 그대로 바로 영서의 것이며 물론 동시에 이 땅 전부의 것일 것이다. 나는 고향을 찾은 느낌에 기쁘고 반갑고 마음이 뛰놀았다. (……) 「사슴」은 나의 고향의 그림일 뿐 아니라 참으로 이 땅의 고향의 일면이다. 그곳에는 귀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목가적 표현이 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은 ‘영서(嶺西)의 기억(記憶)’이라는 글에서 백석 시인의 시집 『사슴』을 읽어본 감상을 그렇게 표현했다. 백석(1912-1996)의 생전 유일한 시집인 『사슴』은 100부 한정판으로 발행됐고, 현재 국내에 10권 남짓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근·현대 시사에서 가장 귀한 시집은?’

지극히 세속적인 물음이겠지만, 대체로 희귀성과 시인의 지명도, 저자의 친필 서명본, 초판본 등을 아울러 판단, 종합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경매 등에서 1억 원 안팎에 낙찰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과 『사슴』(1936년)의 책값이 비싼 것은 잔존 시집이 10권가량밖에 안된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진달래꽃』과 『사슴』은 근대서지학회(회장 오영식) 주최로 지난 4월 한 달간 서울 화봉문고에서 열렸던 ‘한국 근·현대 시집 100년 전시회’ 앞자리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그만큼 귀한 몸이다.


시집 숫자가 몇 권 남아 있지 않아 더욱 귀한 시집이 바로 『조선의 마음』(1924년)이다. 수주 변영로(1897-1961)의 대표작 ‘논개(論介)’가 실려 있는 『조선의 마음』은 발간되자마자 일제에 의해 판금 조치를 당해 현재까지 확인된 시집 숫자가 한 손에 꼽으리만치 찾아보기 힘들다.

변영로는 잡지 『희망』 1952년 8월호에 『조선의 마음』에 수록된 시들을 다시 싣기로 한 것과 관련, 그 까닭을 이렇게 밝혀놓았다.

“조선의 마음은 갑자년(甲子年) 지금으로부터 29년 전에 간행된 나의 첫 시집으로 발행된 당년으로 절판되어버린 외 나에게 남아 있든 1부조차 무슨 곡절로인지 없어져 궁금하던 중 달포 전에 우연히 입수된 차에 다시금 열독하니 여러모로 나의 근작 시보다 서정미나 표현의 기교상 나은 점도 없지 않아 희망 잡지 지면을 통하여 매호 한 페이지씩 재록키로 된 것을 독자께 고하여 둔다”

지난 4월 11일 KBS TV ‘진품명품’ 프로그램에서 근대서지학회가 출품했던 『조선의 마음』은 3000만 원으로 평가됐다. 이른바 시집의 시세로만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애호가들로서는 그런 귀한 시집 실물들을 ‘시집 100년’ 전시회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꺼운 노릇일 터였다.

전시회에 외출했던 시집들을 한눈에 확인해볼 수 있는 사진집 『한국 근현대 시집 100년』이 출간됐다. 한국 근현대 시집 100년의 역사가 비롯된 김억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1921년)부터 요절 시인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1989년)까지, 한국시사(詩史)의 중요한 시집 100권의 내력이 오롯이 실려 있다.

오영식 근대서지학회 회장과 엄동섭 근대서지학회 편집위원이 편찬한 이 도록은 소명출판의 도움을 받아 펴낸 것으로 가로 22, 세로 27cm 크기에 266쪽으로 방대하다.

문학평론가 염무웅(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은 “1921년 오뇌의 무도부터 1970년대의 천상병· 신경림· 김지하를 거쳐 1980년대의 황지우· 기형도에 이르는 시집 100권의 목록을 훑어보면서 깊은 회한에 잠긴다.”면서 “스무남은 살 젊은이로 다시 돌아가 한국 근대시의 고난과 광휘의 역사를 새로 공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뛰는 노릇일까 싶기 때문이다.”고 출간 축사에서 털어놓았다.

김사인 시인은 “한국문학이 걸어온 지난 백년의 고달픔과 자랑스러움을, 나아가 우리 근현대사의 영욕과 백 년의 숙제들을 온 힘으로 다시 한번 짚어보는 계기”라고 출간을 기렸다.

소명출판은 출간에 즈음해 “시집 100년을 회고해 보면 어느 시인은 살아생전에 ‘유고시집’을 내고 말았고, 어느 시인은 첫 시집의 제목을 한 글자, 두 번째 시집은 두 글자로 했다고 하고, 시집의 제목 글씨를 시인이 모두 직접 붓글씨로 쓴 시집도 있고, 출판 기념회를 앞두고 인쇄소 화재로 시집이 모두 잿더미가 된 비운의 시인도 있고, 비켜가지 못하고 압수당한 시인도 적지 않다.”며 “이렇듯 격동기 속에서 간단치 않은 역사를 가진 한국시집 100년의 역사를 어렵게 모아 전시를 기획했고, 또 이렇게 모인 귀중한 책들의 면면을 촬영하고 각 책들의 내력과 역사적 의미를 덧붙여 사진집으로 남기고자 했다”고 출간의 뜻을 밝혔다.


사진집은 차례 부분에 한국시집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끔 연도별 시집의 이름과 이미지를 4쪽에 걸쳐 풀어놓았다. 책 뒤편에는 엄동섭 창현고 국어교사의 ‘『진달래꽃』 초간본의 판본 대비’, 오영식 근대서지학회장의 ‘시집 이야기-장정· 한정판 기타’라는 글을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와는 별개로 도록의 맨 뒤에 ‘근대시집 목록(1921~1950년)’을 수록했다. ‘근대시집’ 목록에는 한국어로 표기된 근대시집(창작, 합동시집, 시선집, 동요동시집, 번역시집) 343권을 발행연도순으로 배열해 놓았다.

이 사진집의 또 다른 특징은 100권의 시집에 곁들여 그 시인의 다른 주요 시집의 원본 이미지도 함께 실어 ‘시인의 연대기’를 짧게나마 훑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를테면, 『진달래꽃』 같은 시집은 3가지 판본(한성도서 A, B, 중앙서림본)의 표지와 판권지를 서로 비교, 검토할 수 있도록 나란히 실어 시집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놓았다.

이 ‘호화판’ 사진집을 통해 좀체 만나보기 어려운 ‘한국 시집 100년의 세월’을 생동감 있게 감상할 수 있다.

글/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이미지)/근대서지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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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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