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허운 KBO 심판장, “심판들 집단 2군행, 불신 누적에 따른 것”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0.05.14 08: 24

허운(61) KBO 심판위원장은 5월 8일 심판위원 5명 한 조를 집단 강등시키는 사상 초유의 조치를 내렸다. 한화 이글스 외야수 이용규(35)가 7일 SK 와이번스전 직후 인터뷰를 통해 “판정의 일관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뒤에 인천 문학구장 심판조를 한꺼번에 퓨처스리그로 내려보낸 것이다.
그 같은 처사를 둘러싸고 KBO 주변에서는 과연 합당한 조치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었다. 즉흥적이고,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평소 KBO 리그 심판들의 판정에 대해 불만을 품었던 많은 누리꾼들은 환영했지만, 한편에선 시즌 개막 3게임 만에 불거진 이용규의 돌출발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 이들도 있었다.
이용규가 비록 한화 구단 주장이긴 하나 작심하고 공개 석상에서 던진 심판 판정 폄하 발언의 적절성에 대해 물음표를 다는 야구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겨우 3게임을 치른 시점에서 ‘명백한 오심이 아닌, 심판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정신 재무장과 경각심을 제고 하는 차원에서 취한’ KBO의 결정이 합당했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선수 개인이 이런 식으로 판정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마땅한가 하는 점이다.
KBO 심판은 해마다 엄격한 고과 심사에 따라 연봉계약을 맺는다. 매 경기 판정 결과를 놓고 평가를 받는다. 그 누적된 결과를 바탕으로 연봉이 결정된다. 따라서 즉흥적, 즉결적인 조치보다는 일정한 기간, 또는 종합적인 평가로 강등이나 승격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물론 명백한 오심을 저지른 심판에게 강등 조치를 내린다는 KBO 심판위원회의 방침은 일리가 있지만.
허운 심판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이번의 집단 강등조치는 특정 심판의 오심이 원인이 아니었다. “준비가 부족한 심판들을 재교육시키는 차원”이었다고 한다. 즉흥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번 파격적인 조치는 자칫 심판의 인격적인 지위를 뒤흔드는 예민한 문제였다. ‘준비 부족’이라는 전제는, 심판위원회 전체의 시즌 대비 소홀이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어찌 보면 리그 뿌리를 뒤흔든 이용규의 발언은, 그 적절성 여부를 떠나 방법이라는 면에서는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KBO리그의 선수들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라는 엄연한 대의기구를 갖고 있다. 만약 3게임만 보고 일관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닌 누적된 심판 불신의 표출이라면, 지난해 시즌이 끝난 다음 선수들의 의견을 수렴, 선수협회가 얼마든지 공론화할 수 있는 문제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렵사리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시즌을 먼저 연 KBO리그(심판, 심판판정)에 대한 ‘이용규의 저격’을 놓고 KBO가 취한 ‘동업자에 대한 존중 주의 환기’ 정도의 무마는 마뜩찮다. 리그를 대표하는 중견 선수의 ‘제 얼굴에 침 뱉는’ 발언에 대해 너무 미온적인 ‘경고’가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이번 사태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지난 11일 허운 심판위원장의 의견과 생각을 전화로 들어봤다.
-시즌 초반에 3게임만 치렀는데 심판 5명을 집단으로 강등시킨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전격 조치 이후 누리꾼들의 환영을 받긴 했으나 여론에 등 떠밀려 즉흥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충분한 훈련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시즌 준비과정에서 누누이 ‘신뢰를 쌓기에 최선을 다 해보자’고 강조했고, 조별로 나름대로 최대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30게임도 아니고, 3게임 만에 선수가 공식 인터뷰 상에서 나와 판정의 일관성 문제를 거론한 것은, 심판 불신과 신뢰감이 완전히 바닥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번 심판조가 실수를 해서 내려간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내려가면 단 한 명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특정 선수의 발언 때문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일관성이 없다는 멘트가 나오니까 정신무장을 다시 해보자는 측면에서 취한 조치다.”
-KBO리그 1군 심판들은 저마다 2군에서 10년 이상 수련을 쌓지 않았나. 혹시 주변의 종용이나 외압은 없었는가.
“다시 말하지만, (심판들이) 준비를 잘해서 시작부터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 내려간 심판조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정신을 차리자는 의미다. 결정 과정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었다. 만약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이 있다면, 나 자신이 결코 안 받아들인다.”
-이용규의 발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인가.
“1.5군에는 준비된 심판이 있다. 누가 봐도 용납이 안 되는 실수를 한다면 바꾼다고 시즌 준비과정에서 누누이 강조했다. 조별로 언제든지 출발신호 나오면 뛰쳐나갈 준비가 다 돼 있다고 봤는데, 3게임 만에 (이런 일이) 터지니까, 정말 준비된 거냐, 우리가 결과적으로 준비과정이 미흡했다고 보고 잘못된 부분이 뭔가를 한 번 짚고 넘어가자, 그런 차원으로 이해를 해주면 고맙겠다.”
-심판들은 계약직이다. 한 시즌 고과를 평가하고, 강등을 시키든가 연봉 삭감하든가, 이를테면 시스템에 의한 평가가 바람직할 텐데, 바람에 흔들린 것이 아닌가.
“이용규가 그래서 그랬다, 그런 차원은 아니다. 선수 때문이 아니라 3게임 만에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만약 심판이 준비를 잘했더라면 (이용규가) 그랬을까. 만약 에러였다면, 당사자를 내려보냈을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다면, 물론 코로나 사태라는 특수상황이 있긴 했지만 해마다 비시즌에 해 온 훈련은 뭔가. 심판위원회가 질타를 받을 일 아니냐. 점검을 제대로 안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소리가 있다.
“8게임에 날수로는 열흘 만에 재교육을 받는다고 금방 잘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정신무장이 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측면에서, 차라리 30게임 같으면 말 안 하는데, 3게임 만에 터졌으니. 점검한다고는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까 한번 다시 점검해보자는….”
-심판의 일관성에 대한 생각은.
“사실 3게임 만에 (심판의) 일관성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 (심판들이) 시즌 개막후 한 바퀴도 안 돌았는데. 아무리 베스트를 다한다는 목표와 마음자세를 가지고 시작해도 해도 통상 심판진이 두 바퀴 이상 돌아야 한다. 선수들도 그렇듯이 심판들도 (시즌 초반에는) 긴장하기 마련이다. 시즌에 들어가면 미세하게 선수들의 투구 각도나 스피드가 훈련 때보다는 조금씩 강하다. 주심도 페이스를 그런데 맞춰가는데 아직 한 바퀴도 안 돌았다. 3게임 만에 이런 얘기 불거진 것은 결국 그동안 불신 누적 때문이다. 심판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고 불신을 해소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짚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비록 한 조가 내려 갔지만 다 같은 심정으로 정신 재무장하자는 얘기다.”
-이용규가 판정 일관성 문제를 제기한 이후 공교롭게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식으로 한화가 (키움전에서) 역전패 포함 3연패를 했다. 일각에선 심판 볼 판정이 한화에 불리했다, 보복 판정 냄새가 난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불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코미디 같은 얘기다. 심판들은 이런 상황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이가 없어서 답변할 가치도 없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5월 10일 고척돔 구장 경기에서 추평호 1루심이 이용규의 플레이에 거푸 오심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로 뒤집혔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그런 것을 놓치는가.
“TV 슬로비디오는 약간 여유가 있어서 시청자들이 보고 얘기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휙 지나가는 플레이다. 그래서 훈련이 중요하다. 시선과 타이밍이 한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위치 선정을 잘못하면 휙 지나가는데, 뭐랄까 그 느낌이 안 좋았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플레이 는 답변해주기 힘들다. 돋보기로 들이대는데, 심판들 어려움이 있다. 어떤 때는 잘 보기도 하고, 못 보기도 하는데, 이른바 심판이 ‘멍 때리다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면’ 펑크 난다. 그런 것은 용서못한다.”
허운 위원장은 이번 조치가 결코 여론에 휘둘린 ‘벌’이 아님을 강조했다. 오로지 심판의 불신 해소와 신뢰 회복의 차원이었다는 것, “그 점을 많은 분들한테 알려달라”는 호소를 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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