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김태형 감독, “대견스러운 이영하, 특별 관리한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9.11.26 10: 12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고 성공을 통해서 책임감을 깨닫는다. 모든 야구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되고,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가를 깨닫게 되며,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된다.” (스티브 라이치 지음, 『메이저리그의 영웅들』, 2006년 정미우 옮김, 한스컨텐츠 발행, 놀란 라이언의 글 가운데서 인용)
두산 베어스가 올해 KBO 정규리그에서 기가 막힌 역전 우승과 아울러 한국시리즈마저 제패한 밑바탕에는 우완 선발투수 이영하(21)와 포수 박세혁(29)의 ‘노고(勞苦)’가 깔려 있다. 여러 선수의 합심(合心)도 합심이겠지만, 김태형 감독이 구태여 “내 마음의 MVP는 박세혁”이라거나 이영하에 대한 고마움을 아끼지 않는 것은 분투에 대한 나름대로 ‘상찬(賞讚)’일 것이다.
김태형 감독은 ‘프리미어12’를 마치고 돌아온 이영하에 대해 ‘당분간 무조건 휴식 후, 특별관리’를 천명했다. 올해 누가 봐도 이영하가 무리한 만큼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이와 관련, “(이영하가) 아직 제구력이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자신감은 굉장히 좋다. 마운드에 선 모습을 보면 궤도에 올랐다고 봐도 되겠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항상 관리를 해줘야 할 선수”라면서 “본인이 스토브리그 동안 어떻게 몸을 단련하고 운동을 해야 하는지를 트레이너 파트와 협의, 중간중간 체크를 하고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루틴’이 제대로 잡혀있지 있지 않아서 ‘특별 관리’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영하가 올해 KBO 리그에서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하리 만치 가장 괄목(刮目)할만한 투수로 급성장한 것은 두 차례의 큰 고비를 겪은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 17승 4패를 거둔 이영하는 한참 잘 나가다가 6월 1일 kt 위즈전에서 ‘아주 형편없는’ 투구를 했다. 4이닝 동안 kt 로하스에게 연타석 홈런을 내주는 등 무려 15안타를 얻어맞고 13자책점을 기록한 것이다. 그날 2회에 이미 8실점을 했지만 김태형 감독은 꿈쩍하지도 않고 이영하를 마운드에 내버려 뒀다. 그로 인해 ‘벌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태형 감독은 그 장면에 대해 “(올 시즌에) 이영하가 초반에 워낙 잘 나가 자책점도 좋았다. (그 경기에서는) 아직 루틴이 없어 오래 던져야겠다고 생각, 공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첫 타자를 상대로 공 스피드가 137킬로미터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너 좀 터져 봐라’하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 다행히 본인이 점수를 많이 내줬지만 열심히 던졌다. 나이 어린 선수가 대충 기분에 따라 던졌으면 아마 지금의 이영하는 없었을 것이다.”고 돌아봤다. 김태형 감독이 일부러 이영하 스스로 그런 어려움을 딛고 깨달을 수 있는 동기부여를 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아픈 만큼’ 성숙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올해 두산 마운드에서 이영하의 존재를 지운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일 터. 김태형 감독은 “후랭코프가 거의 60일 동안 엔트리에서 빠지는 바람에 이영하가 에이스 노릇을 해줬다. 그래서 팀이 안 무너지고 버틸 수 있었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팀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중간에 나가 올린 2승을 빼고 15승을 선발로 거둬주었다. 후랭코프 대신 다 해줬다. 너무 대견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영하의 성공시대’를 활짝 연 것은 9월 19일 SK 와이번스 김광현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생애 첫 9이닝 완투승(3자책점)을 올린 경기였다. 이영하는 그 경기를 계기로 자신감을 더욱 갖게 됐다고 한다. 두산이 SK와의 9게임 차를 뒤엎고 극적으로 리그 1위에 올라선 것은 그 경기를 포함한 이영하의 막판 7연승(8월 17일 롯데전~10월 1일 NC전) 질주가 큰 힘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실패와 성공은 아마도 이영하 야구 인생의 두 변곡점이 될 것이다. 글머리에서 인용했던 메이저리그 개인통산 324승과 역대 최다 탈삼진 (5714개) 기록을 보유한 놀란 라이언(1947~)의 말 그대로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고, 성공을 통해서 책임감을 깨달은’ 게 바로 이영하다.
지난해 4월 승부조작 유혹을 뿌리친 사실을 자진신고, KBO로부터 포상까지 받았던 이영하는 ‘프리미어 12’를 통해 안정감 있는 투구를 과시하며 한결 달라진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김태룡 두산 단장은 “아직까지 힘으로 던지고는 있지만 이영하는 표현은 잘 안 하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내면이 강한 선수다. 김원형 투수코치 얘기를 들어보면 이영하가 인천 SK전 완투승 후 완전히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감독이 키워야 할 투수로 작심하고 계산 하에 (kt전에서) 내버려 둔 것은 얻어맞는 공부도 하고, 스스로 이겨내도록 시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영하는 올해 2월 스프링 트레이닝 때 선동렬 전 국가대표 감독에게서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김태형 감독에 따르면, “이영하가 힘으로 많이 던지기 때문에 선동렬 감독님이 던지기 전에 힘을 빼는 방법으로 20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스텝스로를 가르쳐주었다. 그 지도를 통해 이영하도 많이 느꼈을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선동렬 전 국가대표 감독은 그 인연을 살려 자신의 에세이집 『야구는 선동열』(2019년, 민음인 발행) 안에 ‘이영하를 스텝 앤 스로’ 연속 동작 사진 모델로 세울 수 있었던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선동렬 전 감독은 “귀찮은 모델을 자처해줘 고마웠다. 이 선수가 가진 잠재력과 야구에 대한 열정은 나도 놀랄 정도다. 현재 우리 프로야구에서 귀하다 할 수 있는 우완 정통파 에이스 노릇을 긴 시간 동안 이 선수가 담당해줄 것이라는 데 대해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다.”는 덕담을 던졌다.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이영하를 향한 한국 야구팬들의 기대를 대변하는 ‘강한 희망’이 그 표현 속에 담겨 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