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사 재발견](7)원로 만화가 박기정 화백과 야구 만화의 원조 『황금의 팔』을 찾아서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9.07.01 09: 55

최근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 만화로 알려진 원로만화가 산호(80) 원작 『라이파이』 한 권이 경매 시장에 시작가 3억 원에 출품돼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 만화책은 낙찰되지는 못했다.
근년 들어 ‘귀하신 몸’ 대접을 받는 1950~1960년대 유명 만화가 수천만 원대에 거래된 적은 있으나 만화 낱권의 호가가 억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만화계 일각에서는 이 만화가 초고액에 출품된 것을 놓고 적정가 견해가 엇갈렸다. 특정 만화의 호가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 호사가들끼리 ‘그들 만의 리그’를 벌이는 것에 대해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한국 현대문학작품집 가운데서도 백석(1912~1996) 시인의 생전 유일 시집인 『사슴』(1936년 초판, 100부 한정판)이 지난 2014년에 7000만 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김소월(1902~1934) 시집 『진달래꽃』이 2015년에 역대 최고액인 1억 3000만 원에 경매에서 낙찰된 적이 있긴 하지만 만화책이 이 같은 고가에 출품된 적은 없었다.

어쨌든 1950~1960년대의 인기만화가들의 작품이 그만큼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인 1960년대 중반 이후, 만화를 불량, 저질로 낙인찍어 소각하는 등 천대하는 바람에 압박과 설움에 시달렸던 그 시절 만화가 이제는 ‘부르는 게 값’이 돼버렸다.
스포츠 만화 개척자인 박기정(83) 화백은 본격적인 야구 만화 『황금의 팔』(1964년)을 창작해냈던 원로만화가이기도 하다.
야구 만화라면 흔히 이현세(65)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올리기 쉽다. 1983년에 첫 출간 된 『공포의 외인구단』은 당시 갓 출범(1982년 개막)한 한국 프로야구 인기와 맞물려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야구 만화는 『황금의 팔』 이전에 백산의 『빅토리 야구단』(1962년)과 조원기의 『붉은 배트』(1963년)가 먼저 나왔으나 본격 야구 만화로 『황금의 팔』을 꼽는 이들이 많다.
『황금의 팔』은 경복중·고교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했던 박기정 화백의 경험이 무르녹아 있다. 이 만화도 실물을 보기는 무척 어렵다.
신문기자 출신인 만화평론가 장상용 씨는 “『황금의 팔』 이 순수한 창작 야구 만화로는 아마도 효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본소 만화로 ‘만화 융성기’를 누렸던 1960년대에는 일본 만화 베끼기가 극성을 부렸던 터. 그래서 뚜렷한 스토리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화에 성공한 이 『황금의 팔』을 본격적인 ‘창작 야구 만화의 효시’라고 보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야구 만화는 다른 스포츠 종목을 소재로 삼은 만화보다 그리기가 까다롭다. 바로 복잡다단한 룰(규칙) 때문이다. 그래서 야구선수 경험이 있는 박기정의 『황금의 팔』은 지문이나 대사의 정확도가 다른 야구 만화와는 결을 달리한다. 이현세나 다른 이들의 야구 만화에서 눈에 띄는 야구 규칙의 오류가 박기정의 만화에서는 볼 수 없다.
박기정 화백은 1982년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초대 감독과 MBC 청룡 감독을 역임,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렸던 고 김동엽(1938~1996)의 경복고 2년 선배로 한때 야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같이했다. 김동엽 전 감독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가수 차중락의 형 차중덕과 경복고 동기이자 야구부 동기였다.
박기정 화백은 “내 덩치로 야구로는 성공하기 힘들었다. 뚜렷하게 잘하던 지 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했다. 경기에 나가 라이트필더(우익수) 쪽에 안타를 치고도 발걸음이 느려 1루에서 아웃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야구부를 탈퇴했다.”고 옛일을 돌아봤다. 그리 길지 않았던 야구선수 경험이 훗날 그가 야구 만화를 그리게 된 바탕이 됐다.
그의 야구선수 이력은 ‘동호인야구’로 이어진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경향신문사가 문화인야구대회를 기획, 주최했다. 문화인야구대회에는 만화가협회나 영화배우협회, 음악가협회, 미술가협회, 아동문학가협회, 씨나리오작가협회 등 다양한 문화, 예술인 단체가 참여했고, 정부 측에서도 공보실(문화공보부)이 팀을 꾸려 나왔다.
박기정은 만화가협회의 에이스 투수 노릇을 해냈다. 『경향신문』 1959년 4월 10일 치 예고기사에 따르면 그해 4월 11, 12일 서울운동장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 2회문화인야구대회’는 대한연식야구협회와 경향신문사 주최였다. 당시 만화가협회의 단장은 ‘코주부’ 김용환, 감독은 ‘두꺼비’ 안의섭, 코치는 신동헌이었고 선수로 박기정이 주장, 박기정의 친동생인 박기준을 비롯해 김경언, 정운경, 정한기, 이상호 등 당대 유명 만화가는 물론 ‘감투를 썼던’ 김용환이나 안의섭, 신동헌도 선수를 겸해서 출전했다.
박기정은 1960년 11월 14일에 열렸던 제4회 문화인야구대회에서는 만화가협회 대표 투수로 나가 결승전에서 KBS 팀에 4-6으로 졌는데 그 대회 감투상을 받았다.
박기정 화백은 만주벌판(용정 태생)에서 유소년기를 보내고 해방 직후인 1946년에 귀국,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시대의 거친 파도를 ‘만화’를 매개로 온몸으로 헤쳐 나온 그는 비록 팔순을 넘겼으나 아직도 눈빛이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그의 만화의 주인공들 ‘훈’처럼.
박기정 화백은 어린 시절 만주에서 부유한 집에서 컸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상당히 잘 살았다. 나팔 달린 축음기도 있었다. 어릴 때 형님들이 동경에 유학했고, 집으로 올 때면 야구공 등을 가지고 왔다. 야구는 장비 마련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 덕분에 나중에 야구 하는 친구들을 서울운동장으로 끌고 다니기도 했다.”
그는 “옛날에는 (야구만화를 그리려면) 룰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있어야 된다. 그래서 축구 만화를 그리기가 제일 쉬웠다.”고 회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2009년 6월에 전시했던 ‘한국만화 100년’ 전시회 도록을 보면 축구나 태권도 따위의 만화는 많았으나 야구 만화는 드물었다. 바로 까다로운 규칙 때문이었을 것이다.
『황금의 팔』은 1964년에 첫 출간 됐다. 박기정 화백은 “그 훨씬 전에 책을 냈다”고 기억했으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보유하고 있는 『황금의 팔』 제4권의 발행연도는 1964년 8월 15일이다. 원본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박기정 화백은 “동네 야구가 발전해 일본 원정도 가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독자가 없었는데 나중에는 확 늘어 4년 가까이 30여 편을 발행한 장편이었다.”고 술회했다.
박기정 화백은 1964년을 전후해 아주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그의 대표작인 『흰 구름 검은 구름』(1963년)과 『도전자』, 『폭탄아』(이상 1964년), 『레슬러』(1966년) 등이 그 무렵에 탄생했던 만화들이다.
안타깝게도 박기정 화백의 경기 성남시 보평동 자택에는 그의 책들이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손을 많이 타 한 권 두 권 흩어져버렸고, 2015년 6월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희귀만화 100권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사를 하면서 지인들에게 자신의 책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보관하고 있는 작품이 별로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황금의 팔』 원화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택에서 만난 박기정 화백이 주섬주섬 갈무리해둔 박스 안에서 꺼내 보인 것은 상태가 좋은 『황금의 팔』 원화와 1970년에 『어깨동무에』 연재했던 『떠돌이 복서』 스케치와 원고, 『소년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춤추는 주먹』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만화와 순정만화 『들장미』 제2부 제1권(1962년 3월 26일 발행), 모험만화 『터번』 제9권(1963년 10월 22일 발행) 등이다.
무릇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만화들은 그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황금의 팔』이 출간된 시기는 한국야구사로 볼 때 실업야구가 성인야구의 주류로 대세를 이루었던 때였다.
야구 만화 『주근깨』(1972년)로 데뷔했던 이상무(1946~2016)가 『우정의 마운드』(1977년) 등으로 필명을 날렸던 1970년대는 고교야구가 붐을 이루었던 시대였다.
이현세가 『공포의 외인구단』을 세상에 선보여 흥행 대성공을 이룬 뒤 그 후속편 격인 『제왕(帝王)』(1986)을 내놓아 다시 인기를 끌었고, 허영만(72)이 재일교포 강타자 장훈의 일대기를 그린 『질 수 없다』 (1986년)를 출간한 것도 프로야구의 인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박기정 화백은 원래 1956년 『중앙일보』(현 중앙일보와는 다른 신문)에 4컷 만화 「공수재」로 출발했다. 1963년에 『흰 구름 검은 구름』을 발표하면서 주인공 ‘훈이와 미미’의 캐릭터를 창출해냈고, 1964년에 발표한 『도전자』로 명성을 얻었다.
1978년부터 1999년까지 『중앙일보』에 시사만화와 만평, 캐리커쳐 전문 만화가로 자리 잡았던 박기정 화백은 창작 극만화와 시사만화 양 분야에서 모두 성공한 대표적인 만화가였다.
재일교포 복서 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도전자』는 그의 대륙적인 기질, 만주라는 지정학적인 성장 과정에서 온축된 그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 작품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확실한 캐릭터의 구축, 스토리의 완성도는 다른 스포츠 만화의 추종을 불허한다.
만화 전문기자로 활동했던 장상용 씨는 『만화와 시대정신 1960~1979』에서 “박기정의 만화 『도전자』와 신성일 주연의 『맨발의 청춘』은 무척이나 닮은 꼴이다. 『맨발의 청춘』의 ‘두수’는 사화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 찬 뒷골목 청년이다. 한마디로 반항아다. 『도전자』의 ‘훈이’는 일본에 차별받는 재일교포 청년이 권투를 통해 반항하고 울분을 터트린다.”고 풀이했다.
박기정 화백의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은 역경을 딛고 일어서 끝내 성공을 거두지만 삶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고 곰 삭이는 페이소스가 담겨 있다. 『도전자』는 물론 『황금의 팔』이나 만주 항일투쟁을 그린 『폭탄아』, 『레슬러』 등도 맥락이 같다. 그는 스포츠 만화로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했다.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황금의 팔』 원화=박기정 화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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