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본격 SF 만화 『라이파이』 한 권, 사상 최고가 3억 원에 경매 나와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9.06.20 11: 01

[OSEN=홍윤표 선임기자]‘만화 한 권 값이 무려 3억 원?’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 만화로 알려진 원로 만화가 산호(80. 본명 김철수) 원작 『라이파이』 한 권이 경매 시장에 시작가 3억 원에 출품됐다.
근년 들어 ‘귀하신 몸’ 대접을 받는 1950~1960년대 유명 만화가 수천만 원대에 거래된 적은 있으나 만화 낱권의 호가가 억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매 업체 ‘코베이’의 ‘삶의 흔적 경매전’에 출품된 만화 『라이파이』(통칭)는 단기 4294년(1961년) 남훈사가 발행한 것으로 발행 일자는 없고 책 가격은 300환, 제목은 『녹의여왕과 라이파이』로 돼 있다.
‘코베이’ 측은 이 책과 관련, “한국 최초의 SF 만화이자 토종 수퍼히어로 ‘라이파이’를 탄생시킨 산호 作 『녹의여왕과 라이파이』 19편 1책 영본”으로 제목을 달고 “본 출품물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들도 현재 4부를 통틀어 약 10여 권만 현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라이파이』는 만화가 산호가 스무 살의 나이였던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총 4부작 32권으로 펴냈던 장편 SF 만화로 미국의 수퍼맨이나 배트맨 유형의, 이를테면 ‘한국형 수퍼맨 라이파이’를 창조한 만화 주인공 이름이다.
『라이파이』는 제1부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제2부 『피너 3세와 라이파이』, 제3부 『녹의여왕과 라이파이』, 제4부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로 구성돼 있으나 워낙 귀한 탓에 이미 20여 년 전부터 호사가들 사이에 수천만 원대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파이』 애호가들이 모여 2003년에 ‘라이파이 동호회’를 만들어 작가인 산호 만화가를 모시고 행사를 연 적도 있다.
코베이 측은 “미국 만화산업계의 양대산맥인 DC 코믹스와 마블코믹스에 수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있다면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라이파이가 있다.”면서 “만화산업이 미국에서는 엄청난 산업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대중문화의 당당한 주류로 인정받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만화의 문화적 가치 인식이 낮아 50~60년대에 발행됐던 수많은 만화 작품들이 버려지고 사라졌다.”며 고액출품 배경을 설명하고 『라이파이』의 희귀성을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마블코믹스가 만든 스파이더맨의 만화 초판이 12억 원, 수퍼맨으 초판본이 17억 원에 거래된 사실도 덧붙여 놓았다.
만화계 일각에서는 이 만화가 초고액에 출품된 것에 대해 적정가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 현대문학작품집 가운데서도 백석(1912~1996) 시인의 생전 유일 시집인 『사슴』(1936년 초판, 100부 한정판)이 지난 2014년에 7000만 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김소월(1902~1934) 시집 『진달래꽃』이 2015년에 역대 최고액인 1억 3000만 원에 경매에서 낙찰된 적이 있긴 하지만 만화책이 이 같은 고가에 출품된 적은 없었다.
만화평론가인 장상용 씨는 “라이파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SF 만화의 시초다.”고 전제, “라이파이가 시리즈가 수십 권이 되는데, 제1부 1권도 아닌 중간에 나온 녹의여왕 편 한 권을 3억 원에 매겨놓았다는 것은 과연 시장의 정상적인 원리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라이파이가 그 숫자가 한정돼 있고 가치가 있는 만화인 것은 분명하다. 더 이상 숨어 있는 재고가 없어 소장자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20년 전에 일천, 일천오백만 원에, 10년 전에 오천만 원에 거래됐다는 얘기가 시장에 나돌았지만 10년이 더 지난 지금 3억 원이 정상이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본다”고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장상용 만화평론가는 “그 가격이 과연 어디에서 형성됐느냐 살필 필요가 있다. 한정된 소장자들이 ‘최소한 이 가격이 아니면 내놓지 않겠다’는 짬짜미를 한다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출품된 만화의 가격은 경매업체가 소장자의 의중을 반영해서 매긴 것일 텐데, 과연 합리적인 선인지. 만화계 쪽 전문가들이 모여서 합리적인 선에서 정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만화의 가치가 올랐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 되는 가격이어야 한다. 일부 소장자와 경매처가 자의적으로 정한 선(가격)을 만화계가 수긍할 수 있는지, 너무 과열되는 게 아닌가 그런 부분이 우려스럽다.”면서 “만화가 예전에는 쓰레기 취급을 받다가 지금 보물처럼 대접받는 일은 반길 노릇이지만 마치 부동산처럼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긴다면 만화계 발전에도 저해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경매는 오는 26일 서울 종로 천도교 수운회관 안에 있는 ‘코베이’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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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녹의여왕과 라이파이』 코베이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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