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화가 정현웅, ‘틀을 깬’ 책 그림전의 행복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8.10.20 12: 17

정현웅(1910~1976)은 일제 강점기 서양화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8. 15 해방 이후 ‘월북화가’라는 낙인이 찍혀 잊힌 화가가 됐다.
그랬던 그가 1988년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해금’ 이후 최근 들어 다각도로 재조명을 받으면서 우리네 시야로 성큼 다가섰다. 지난 10월 10일부터 서울 인사동 인사고전문화중심(화봉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화가 정현웅의 책 그림전’은 잡지편집자이자 탁월한 장정, 삽화가로 다재다능했던 정현웅의 숨겨진 얼굴을 확인하는 자리다.
불행하게도 정현웅의 유화작품은 단 한 작품밖에 전해지고 있는 게 없지만 단행본이나 잡지, 신문에 그렸던 그의 작품들(장정과 삽화 등)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 되살아나 그의 참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정현웅의 책 그림전’은 공식적으로는 근대서지학회(회장 전경수) 주최, 정현웅 기념사업회와 ㈜ 화봉문고(회장 여승구), 소명출판(대표 박성모)의 후원으로 열리고 있지만 책 수집가인 오영식 근대서지 편집장의 노고의 성과다.
오영식(전 보성고 국어교사) 근대서지 편집장은 이번 전시회에 즈음해 “화가 정현웅은 아직도 생소한 이름이다. 1910년, 나라를 잃은 시기에 태어나 스무 살 나이가 되기 전부터 조선미전에 입선, 화가의 길에 들어선 후 순수회화와 출판미술의 길을 걷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행길에 올랐던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면서 “헌책을 모으는 고약한 취미 덕택에 정현웅을 만났다”고 실토했다.
이미 2012년에 정현웅의 미술작품집인 『틀을 돌파하는 미술』을 펴낸 적이 있는 그는 그동안 애써 갈무리해둔 정현웅이 그려냈던 단행본이나 잡지의 장정과 삽화 따위 126점을 전시회에 펼쳐놓았다.
이 전시회를 통해 정현웅 ‘그림 성찬’에 한껏 눈요기를 하고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모든 그림들이 좀체 보기 드문 시인, 소설가들의 작품집 표지 장정이나 삽화, 신문연재소설과 만화의 삽화 등이어서 단순히 정현웅의 그림 감상뿐만 아니라 그의 솜씨가 곁들여진 단행본, 잡지, 신문도 덤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현웅의 작품은 월북 소설가인 박태원의 『소설가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이효석의 『벽공무한』, 안회남의 『전원』,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 등 소설집, 한하운의 시집 『한화운 시초(詩抄)』, 만화 『콩쥐팥쥐』나 『수호지 노지심』 등 눈이 어지러우리만치 다양하고 다채롭다.
출판미술에 대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화가 ‘정현웅의 책 그림전’은 10월 24일까지 더 이어진다. 애호가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연락처는 (02)737-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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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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