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이대호는 아무도 걷지 못한 길을 걸었다

[OSEN=부산, 이석우 기자] 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렸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5회말 1사 1루 좌월 2점 홈런을 치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2.10.03 / foto0307@osen.co.kr
[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이대호는 아무도 걷지...
“은퇴 번복할 때까지 숨을 참겠다”(9월 17일 수원 구장)



“은퇴 번복할 때까지 숨을 참겠다”(9월 17일 수원 구장)

“은퇴, 안 대호”(9월 20일 대전구장)

일찍이 은퇴를 선언한 선수에게 피켓을 들고 이토록 간절하고 애틋한 만류의 소리를 합창한 야구팬들이 있었을까. 번복을 안 할 줄 번연히 알면서도.

유행가 가사처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대전에서 보여준 그의 큰 포물선은 그대로 깊은 감동의 발자취로 남게 됐다.

9월 20일은 이대호(40)가 KBO리그 대전구장 마지막 경기를 한 날이었다. 롯데 자이언츠가 한화 이글스에 4-5로 뒤지고 있던 9회 초 1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대호는 강재민 투수를 상대로 왼쪽 펜스를 넘어가는 결승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타구의 향방을 주시하던 이대호는 홈런임을 직감하고 배트를 공중부양 시키는 시원한 ‘배트 플립’을 선사했다. 은퇴하는 해에 날린 만루홈런만 3개.

“세월은 작은 것을 버리고 큰 소식을 남긴다.…”(고은 시인의 시 ‘새해는 산에서 온다’에서 발췌 인용)는 시구처럼, 큰 소식을 잔뜩 남겨놓은 채 무대 전면에서 퇴장하고 있는 그의 그림자가 석양 노을에 길게 끌린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이란 사자성어는 바로 이대호(40.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은퇴를 공언한 프로야구 선수 생활 마지막 해에 이대호는 그야말로 ‘아무도 걷지 못한 길’을 걸었다. 그토록 갈망했던 롯데의 마지막 가을 잔치 참여는 무산됐으나 그의 족적은 선명하게 남았다.

10월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LG 트윈스전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가는 이대호의 마지막 해 행보는 ‘아니, 이럴 수가’ 하는, 경탄의 소리가 절로 나올 법했다.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온 그의 길에서, 해 질 무렵에 그가 자아낸 경이의 기록들은, 여태껏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눈부신 성취다.

2001년부터 시작된 프로야구 인생 22년의 끝자락에서 이대호는 ‘무려’ 타격왕까지 한때 넘볼 지경이었다. 이정후(키움), 피렐라(삼성)와 더불어 리딩히터를 다툴 정도로 그의 ‘남아 있는 힘’은 말 그대로 놀라웠다.

여태껏 한국 프로야구사에 없었고, 앞으로도 도저히 보기 힘든 타격 7관왕(2010년 도루를 뺀 나머지, 타율, 홈런, 안타, 타점, 장타율, 출루율, 득점 등 7개 부문)과 9게임 연속 홈런(2010년)에 빛나는 이대호의 ‘노익장’은 아마도 KBO리그 사상 가장 진기한 광경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대호는 10월 7일 현재 141게임에 나가 타율 3할 3푼 2리(4위), 178안타(3위), 23홈런(공동 5위), 100타점(공동 4위)으로 각종 타격 지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눈부신 기록을 남겼다.

아무도 그의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등 떠밀리듯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율(他意)에 의해 은퇴하던 해의 볼품 없는 기록을 남긴 여느 선수들과는 딴판이다.


참고삼아 은퇴하던 해에 역대 KBO리그에서 위대한 타자로 손꼽혔던 타자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는 소리를 들었던 양준혁은 2010년에 64경기에 나가 타율 2할 3푼 9리의 타율에 1993년부터 2007년까지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명성이 무안하게도 고작 1홈런에 그쳤다.

천하의 이종범도 2011년에는 97경기에 출장, 3홈런, 24타점에 머물렀다. 1994년 3할 9푼 3리로 최정점을 찍으며 4할 타율 달성의 기대에 들뜨게 했던 그였으나 마지막 해에는 2할 7푼 7리에 머물렀다.

연습생 신화를 썼던 장종훈은 2005년에 고작 7게임에 나가 1홈런, 1타점으로 초라했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홈런왕 3연패(1990~1992년), 2년 연속 KBO 리그 MVP(1991, 1992년)가 무색했다.

그나마 아시아의 홈런왕 이승엽은 2017년 타율 2할 8푼에 24홈런을 날려 명성에 크게 흠이 가지 않는 성적을 냈다.

이대호의 기록은 2010년 KBO리그에서 최절정에 올랐다. 그해 리그 MVP와 타격 7관왕에 빛났던 그는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6회 (1루수 2006, 2007, 2011, 2017년, 3루수 2010년, 지명타자 2018년), 타율 1위 3회(2006, 2010, 2011년), 최다안타 1위 2회(2010, 2011년), 홈런 1위 2회 (2006, 2010년), 타점 1위 2회(2006, 2010년) 등의 기록을 아로새겼다.


이대호는 더군다나 일본 무대에서도 혁혁한 업적을 남겨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으로 일본시리즈 우승 2회(2014, 2015년)와 2015년 일본시리즈 MVP로 가장 높은 자리에도 올라봤다. 이대호가 이처럼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과를 올렸으나 KBO리그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을 듯하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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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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