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김태석 속초시 야구소프트볼협회장의 ‘속초 야구 살리기’ 선행(善行)에 대하여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2.06.09 08: 56

강원도 속초시 교동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리 뒤편에 가지런히 펼쳐져 있는 각종 상패, 트로피였다. 김응룡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 등에게서 받은 그 상패들은, 그가 야구 관련 활동으로 얻은 부산물이다. 말 없는 그것들이 그의 이력을 웅변하고 있다.
그는 김태석(52) 속초시 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다. 속초시에서 종합건설회사인 영지건설을 경영하고 있는 그는 이른바 ‘속초 사람’은 아니다. 그런 그가 속초에서 경영인으로, 또 야구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어떤 인연이 작용했다.
김태석 회장은 수원 유신고를 나왔다. 유신고에서 야구선수를 했다. 3루수와 중견수를 맡아봤으나 큰 빛을 보지 못하고 1989년 졸업 뒤에는 선수로서의 진학의 길조차 막히자 야구 경력도 속절없이 끊어졌다. 그리고 군에 입대하기까지, 그는 야구 단절의 아픔을 곱씹으며 가슴 저린 시간을 흘려보냈다.

김 회장이 속초에 자리 잡게 된 것은 대학을 마치고 군 제대(1992년) 후 2년 뒤에 속초의 한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한 게 계기였다. 그는 설계사무소의 일을 경험 삼아 독립, 속초에서 건설회사를 차렸고, 평생 반려자도 속초에서 만나 그대로 눌러살면서 건축업으로 터를 닦았다.
“고교 졸업 후 진학이 안 돼 1년 동안 공부해서 수원과학대(당시 전문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치고 속초에 와서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그대로 눌러앉게 됐다”는 설명은 6년 남짓한 야구선수 생활이 ‘끝난 뒤’의 그의 삶을 간략하게 간추린 것이다.
야구선수를 그만둔 지 30년이나 지난 그는 그 동안 오로지 회사를 키우는 데만 전념했다. 자연스레 야구와는 멀어졌고, 심지어 그 바닥은 외면할 지경이었다. 야구계는, 그로선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 그래서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야구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사업에만 몰두했다.
“(야구선수를 그만둔 뒤) 벌써 세월이 30년이나 흘렀네요. 군 제대 후 여기 와서 처음에는 건축설계사무소 알바로 시작, 급여도 받게 됐으나 IMF 때 월급을 제대로 안 줘 아예 독립해 회사를 차렸지요. 그 무렵 강릉 관동대 건축과에 편입, 건축공부를 한 것도 건축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발판이 됐습니다.”
당연하지만, 김 회장이 객지에서 자리 잡기까지 말할 수 없는 고생과 갖은 노력이 뒤따랐음은 불을 보듯 훤한 노릇이었을 터. 지역에서 건설업을 하다 보니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야구선수 출신들도 있었다. 속초에서 고교를 나온 그들이 건설 쪽 막일도 하는 형편이었고, 예전에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김 회장이 “그런 친구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비로소 야구판에 관심을 되돌리게 됐다.
그는 현재 속초시 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속초시 리틀야구단 단장이다. 비록 야구는 그의 뿌리였지만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터여서 어찌 보면 가욋일에 발 벗고 나선 셈이다.
시작은 운동선수 출신들을 도와주려는 선의에서 비롯됐지만,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김 회장의 ‘속초 야구 살리기’는 ‘알게 모르게’ 더욱 확장돼갔다. 김 회장이 내민 온정의 손길은 속초시 초, 중, 고 야구부와 직접 운영하는 리틀야구단, 심지어는 속초경찰서 야구동아리까지 뻗쳤다.
알려져 있다시피 강원도, 특히 속초의 야구계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우선 자원의 태부족과 빈약한 재정지원의 어려움이다.
김 회장의 ‘속초 야구 살리기’ 작업은 리틀야구단 운영이 그 출발점이다. 그는 2016년부터 리틀야구단을 만들어 단장으로 선수들의 성장을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의 리틀야구단 운영 기본 방침은 여느 팀과는 달리 학부모들의 고정 회비를 받지 않는다. 초, 중, 고교 팀은 물론 심지어 리틀 팀까지 학부모들이 달마다 일정액(80~100만 원)의 회비를 걷어 코치 등 지도자들의 월급을 포함한 운영경비를 조달한다는 점은 어찌 보면 야구계의 공공연한, 그렇지만 부끄러운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재능 있는 자식을 둔 부모라 할지라도 회비 감당이 힘들면 포기하기 마련이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소액의 간식비나 유니폼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 차량 같은 큰 부분을 사비로 지원해오고 있다.
원래 리틀야구단 구성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대회에 참가할 수 있으나 김 회장은 재능 발굴의 차원에서 취미가 있는 초등학교 1년생부터 야구단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를테면 문호를 넓혀 놓았다. 학부모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대신 재능 조기 발굴 측면에서 어린 학생들의 선수 육성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리틀야구단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2000만 원 남짓이다. 현재 속초시 리틀야구단 선수수는 20명 안팎이다.
속초시 야구팀은 김 회장이 운영하는 리틀과 영랑초, 설악중, 설악고로 계단식으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위로 올라갈수록 선수 수급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영랑초등학교는 전체 남학생이 50명 정도고, 야구부 활동을 하는 학생은 9명에 불과해 대회에 나가기도 벅차다. 그래서 김 회장은 리틀야구선수들의 학부모에게 “취미활동을 중학교 1, 2학년까지라도 시켜보자”고 권유하고 있다. 재능이 발견되면 정식 선수로 등록시켜 진학을 돕고 있는 셈이다.
그가 떠안고 있는 속초시 각급 학교 야구 지원은 연간 7000만 원가량 된다. 돈도 돈이지만, 짬을 내 야구에 쏟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6년째 운영하는 리틀야구단 외에 속초시야구소프트볼협회를 이끄는 기간도 오는 2024년까지 8년간으로 예정돼 있다. 단순히 재력이 뒷받침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김 회장은 그런 재정적인 지출에 대해 “집에서 생각도 못 할 것이고, 회사에서도 잘 모른다”며 웃었다. 그는 “건설업을 하다 보면 접대라든지 하는 부분에 돈을 쓰게 마련인데, 쓸데없는 헛돈을 최대한 줄여서 (야구단을) 운영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속초시와 속초시 체육회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사태로 일시 중단했던 제11회 속초시장기 전국리틀야구대회를 주최한다.
올해는 8월 12일부터 22일까지 설악야구장 등지에서 열 예정인데, 실질적인 대회 운영은 속초시야구협회가 맡아 하게 된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속초) 시장들의 의지로 유지해온 대회로 매달 두세 건의 전국단위 리틀야구대회가 열리지만 이 대회가 제일 규모가 크고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특히 여름방학과 휴가철에 열리는 대회여서 참가 팀이 130~140팀에 이르고 학부모들을 포함한 관계자들 2000여 명이 휴가를 겸해 속초로 ‘몰려오는’ 대회여서 속초시 지역 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게 사실이다.
김 회장은 “규모가 크다 보니 일정을 감안, 두 개조로 나뉘어 총 토너먼트로 치르고, 성수기 휴가철이어서 학부모들의 숙박 어려움을 고려해 설악동 숙박협회의 협조를 얻어 합리적인 가격으로 협의, 가급적 설악동에 머무르도록 권장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의 속초 야구 살리기는 상급 학교로 갈수록 선수들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악순환’을 막고 재능 있는 선수를 되도록 속초에서 길러보려는 의지가 그 바탕이다.
김 회장이 오랜 세월 끊어졌던 인연의 끈을 다시 맺은 것은, 이를테면 야구가 그의 숙주(宿主)임을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야구가 다시 그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재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뜻이 뒤따라야 하고 관심과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태석 회장 같은 이야말로 참된 야구인으로 불러 마땅하겠다. 어디, 그와 같은 분 또 없소?
글/사진.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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